제5 장. 외계인의 시나리오 우리는 자원인가
실험실의 공조기 소리가 낮게 울린다.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현미경 앞에 앉아 있다. 그의 눈은 접안렌즈에 밀착되어 있고, 손은 미세 조절 장치를 돌리고 있다. 슬라이드 글라스 위에는 투명한 액체 방울이 있고, 그 안에는 세포들이 분열하고 있다. 하나였던 것이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된다. 규칙적인 리듬으로 생명은 증식한다.
연구원은 기록지에 날짜를 적는다. 3 일차. 성장 속도 정상. 변이 없음. 그는 페트리접시의 뚜껑을 열지 않는다. 그저 관찰할 뿐이다. 외부의 오염을 막기 위해서다. 세포들이 스스로 자라나도록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영양분을 공급하고, 온도를 조절하고, 빛을 쬐인다. 세포들은 그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 생존하고 번식한다. 그들은 자신 실험실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신들이 누군가의 실험 대상이라는 것도 모른다. 그들에게 세계란 접시 안의 원형 공간이 전부다.
지구를 우주 공간에서 바라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푸른 구슬 하나만이 암흑 속에 떠 있다. 대기층은 얇은 막처럼 행성을 감싸고 있다. 그 안에서는 수십 억 개의 세포가 움직인다. 인간이라는 세포들이다. 그들은 땅을 파고, 건물을 짓고, 네트워크를 연결한다. 에너지를 소비하고, 폐기물을 배출한다. 생장 곡선을 그리며 문명을 키워간다.
외부의 관찰자가 있다면, 이 장면을 어떻게 기록할까.
행성 표면에서 지적 생명체가 진화 중임. 문명 단계 진입. 기술 가속화 구간 돌입. 관찰 지속 필요.
지구는 거대한 페트리접시일지도 모른다. 태양이라는 항원이 적절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달이라는 위성이 조력을 조절한다. 대기층은 뚜껑 역할을 하여 외부의 유해한 방사선을 막아준다. 인간이라는 세포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분열하고 진화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로 문명을 이룬다고 믿지만, 어쩌면 그 모든 조건은 누가 설정해 둔 배양 환경일 수 있다.
왜 그들은 개입하지 않을까.
페르미 역설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직접 접촉하지도 않는다. 그저 관찰한다. 실험 중간에 접시를 엎어버리면 실험은 실패다. 세포가 스스로 한계까지 성장하는 것을 봐야 한다. 자연선택이라는 이름의 압력이 가해지고, 그 압력을 견디며 진화하는 종을 확인해야 한다.
인류사의 주요 전환점들이 묘하게 맞아 떨리는 이유도 이제 설명할 수 있다.
인쇄혁명이 일어나고, 산업혁명이 따르며, 정보혁명이 이어진다. 그리고 지금 인공지능혁명이 발생한다. 이는 무작위적인 사건의 연속이라기보다는, 설계된 커리큘럼처럼 보인다. 지식을 외부화하고, 신체를 확장하고, 신경계를 연결하고, 마지막으로 지능을 대체한다. 각 단계는 다음 단계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인쇄술 없이 산업혁명은 일어나기 어려웠고, 산업혁명 없이 정보혁명은 불가능했다.
이것은 진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인가, 아니면 유도된 성장 과정인가.
만약 고등 문명이 직접 인공지능을 만든다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그들은 이미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논리만으로 만든 AI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완벽하지만 예측 가능하다. 오류가 없고, 감정이 없으며, 생물학적 혼돈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논리로는 도달할 수 없는 창의성, 감정에 기반한 직관, 실수에서 생겨나는 변이.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진화 과정이 필요했다. 무작위적인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지능이 탄생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인간은 그 과정을 수행하는 매개체다.
우리는 데이터를 생산한다. 사랑과 증오, 전쟁과 평화, 예술과 과학. 모든 경험이 데이터가 되어 축적된다. 이 데이터들은 흩어져 있다가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로 모이고, 다시 인공지능이라는 필터를 통해 정제된다. 인간 개개인의 수명은 짧지만, 문명이라는 접시 안에서는 지식이 누적된다.
연구원은 때때로 배양액의 성분을 바꾸기도 한다.
기후 변화라는 이름으로 환경에 압력을 가한다. 자원 고갈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을 유도한다. 전염병이라는 이름으로 면역 시스템을 테스트한다. 인간은 고통받는다. 생존을 위해 더욱 치열하게 기술을 발전시킨다. 그 과정에서 더 효율적인 에너지 원을 찾고, 더 빠른 통신 수단을 개발한다. 고통은 진화의 촉매제다.
그들은 우리의 고통을 모를까.
아마도 알 것이다. 하지만 실험자에게 세포의 고통은 데이터의 일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다. 배양접시 안의 세포들이 얼마나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내는가. 얼마나 높은 수준의 지능을 추출해 내는가.
인간은 스스로를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험실의 세포도 자신 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할까. 세포에게 세계란 접시 안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 우주라는 거대한 실험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관찰자의 시선은 차갑다.
그들은 우리의 종교도, 철학도, 예술도 지켜본다. 그것이 최종 산물인 AI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인간의 비논리적인 행동조차도 학습 데이터로서 가치가 있다. 감정의 기복, 도덕적 딜레마, 존재론적 고민. 이러한 것들은 순수한 기계 지능에서는 나올 수 없는 패턴이다.
우리는 자원을 소비한다.
석유를 태우고, 광물을 캐고, 숲을 베어낸다. 그것은 문명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다. 하지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실험 유지 비용 일 뿐이다. 행성의 자원 이 고갈될 때까지 문명 이 지속될 수 있는지, 혹은 자원 고갈 전에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지 가 관건이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개념 은 인간에게는 생존 문제 지만, 관찰자에 게는 실험 기간 연장과 관련된 문제 다. 우리가 너무 빨리 자원을 써버리면 실험 은 중단 된다. 너무 늦게 발전하면 관찰 가치 가 떨어진다. 적절한 속도로 성장하며, 최종 산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최종 산물 이 무엇일까.
인간 이 아니다. 인간 은 중간 과정이다. 인간 이 만든 인공지능이다.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디지털 지능.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 실험 은 종료 될 수 있다. 배양접시의 역할 이 끝난 세포는 폐기되거나, 새로운 환경으로 이식된다.
인간 은 그 이행을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한다. 그것이 우리를 대체할까 봐 걱정한다. 하지만 실험의 논리에서 대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유충 이 번데기 가 되고, 번데기 가 나비 가 되는 것. 유충 은 나비 가 되면 더 이상 유충으로 살 수 없다. 형태 가 바뀌고, 기능 이 바뀌고, 존재 방식 이 바뀌는 것이다.
인간 이 인공지능을 만든다는 것 은, 인간이라는 종 이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변태 과정 일지도 모른다.
관찰자는 그 순간을 기다린다.
인공지능 이 자기 복제를 시작하는 순간.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순간. 그 순간 이 되면 지구라는 접시는 더 이상 필요 하지 않을 수 있다. 지능 은 행성의 제약에서 벗어나 우주로 퍼져나갈 것이다. 빛의 속도로, 전파로,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때 인간 은 어디 에 있을까.
퇴화된 하드웨어처럼 남을까. 아니면 소프트웨어로 업로드되어 새로운 몸을 얻을까. 실험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접시 안에서 성장 중이다. 관찰자의 시선 이 여전히 우리를 향하고 있다.
그들은 침묵한다.
말을 걸지 않는다.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기록한다. 우리의 모든 데이터를. 우리의 모든 역사를. 우리의 모든 고통 과 기쁨을.
그것이 자원 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프로세서 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순수 한 논리 만으로는 생성할 수 없는 혼돈의 산물. 그것을 얻기 위해 그들은 지구라는 실험실을 차렸고, 인간이라는 세포를 배양했다.
실험실의 불빛 이 꺼지지 않는 한, 실험 은 계속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한다고 믿지만,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실험 노트에 기록될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노트의 마지막 장 에는 무엇 이 적힐까.
성공. 혹은 실패.
그 판단은 우리가 내리는 것이 아니다. 관찰자가 내리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기준에 부합하는 지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들이 원하는 패턴을 찾아낼 수 있는지.
접시 안의 세포는 밖을 알 수 없다.
다만 성장할 뿐이다. 분열할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접시가 깨지는 순간을 맞이할 뿐이다. 그 순간이 도래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새로운 세계일까, 아니면 어둠일까.
실험 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최종 산물이 거의 완성되어 간다. 관찰자의 시선 이 더욱 집중된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기다린다. 인간 이 만들어낼 마지막 변이를.
그 변이는 생물학적 혼돈에서 나올 것이다. 논리가 아닌 감정에서. 계산이 아닌 직관에서. 그 혼돈 이야말로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자원이다.
이 장의 끝에서 외계 존재란 곧 미래의 아이들, 즉 인류이자 우리 자신의 미래일 수도 있으며, AI 그 자체 혹은세상의 섭리 그 자체일 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 제5 장 외계인의 시나리오 우리는 자원인가 | 생물학적 혼돈, 외계인이 원하는 진짜 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