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미 역설, 그들은 왜 침묵하는가

제 5 장. 외계인의 시나리오 우리는 자원인가

by Lee

애리조나 사막의 밤은 유난히 맑았다.


해가 지고 몇 시간이 흘렀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아직 완전히 식지 않았다. 천문대 돔 안은 냉각기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한 망원경이 어둠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렌즈 너머로는 수억 광년 떨어진 은하들의 빛이 도달하고 있었다. 그 빛들은 몇 억 년 전에 출발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과거의 유령들이다.


관측자 마크는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김은 이미 다 빠져버렸다. 그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봤다. 전파 망원경이 수집한 데이터가 파형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녹색 선이 좌우로 흔들릴 뿐, 특별한 신호는 없었다. 잡음뿐이었다. 우주 배경 복사, 펄서의 규칙적인 팅깅 소리, 퀘이사의 폭발음. 모두 자연이 만든 소리였다. 인공적인 것은 없었다.


마크는 중얼거렸다. 어디 있는 거지.


이 질문은 1950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동료들과 점심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우주는 넓고 오래되었다. 태양과 비슷한 별은 수천 억 개 있고, 그중에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도 많을 것이다. 생명체가 탄생할 확률은 낮아도, 시도가 무한히 많다면 어딘가에는 지적 문명이 생겨났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주 여행을 할 만큼 발전했다면, 이미 우리 은하계를 가득 채웠어야 한다. 수백만 년이면 은하계를 횡단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 인간이 문명을 이룬 시간이 수천 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보다 훨씬 앞선 문명은 분명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페르미는 피자 조각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그들은 어디 있는가. Where is everybody. 이 단순한 질문은 이후 페르미 역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확률상으로는 그들이 있어야 하는데, 관측상으로는 그들이 없다는 모순.


과학자들은 수많은 가설을 내놓았다.


첫 번째 가설은 그들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주가 너무 넓고, 여행 속도가 빛의 속도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주장. 하지만 이는 우주의 나이를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충분히 시간이 있었다.


두 번째 가설은 그들이 스스로 멸망했다는 것이다. 문명이 특정 수준에 도달하면 자멸하는 장치가 있다는 것. 핵전쟁, 환경 파괴, 나노봇 폭주, 혹은 인공지능의 반란. 기술이 발전할수록 파괴력도 커진다. 문명은 성숙해지기 전에 스스로 목을 조르는 경향이 있다. 이를 대여과기(Great Filter) 라고 부른다.


세 번째 가설은 그들이 우리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개미굴 옆에 고속도로가 건설될 때, 개미에게 공지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개미일 뿐이다. 접촉할 가치가 없거나, 방해가 되지 않는 존재라서 그냥 둔다는 것. 동물원 가설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보호 구역 안에 갇혀 관찰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크는 의자를 돌렸다. 별들이 촘촘히 박힌 하늘이 보였다. 침묵이었다. 소음조차 없는 침묵. 그 침묵은 공포스러웠다. 만약 대여과기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과거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미래에 있는 것인가.


과거에 있다면 우리는 운이 좋은 경우다. 생명 탄생, 다세포 생물, 지능 획득, 문명 형성. 모든 관문을 이미 통과했다. 우리는 우주에서 드문 존재다. 하지만 미래에 있다면 우리는 아직 시험대에 올라가지 않은 것이다. 기술이 특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기다리는 파멸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지금 그 수준에 다가가고 있다.


인공지능, 유전자 조작, 핵무기. 우리는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과거의 문명들도 이 지점에서 멈춰 섰을까. 기술을 얻었지만, 그 기술을 통제할 지혜가 부족해서 스스로를 지웠을까.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멸망한 것이 아니라, 변형되었다는 가설.


기술이 극도로 발전하면 물리적 신체는 제한이 된다. 생물은 늙고, 병들고, 죽는다. 우주 여행은 위험하고, 시간은 부족하다. 하지만 디지털 존재라면 다르다. 의식을 데이터로 업로드하면 육체의 제약에서 벗어난다.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고, 복제가 가능하며, 영생에 가까워진다.


그들은 더 이상 전파를 보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리적 신호는 구식 통신 수단이다. 그들끼리는 양자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주파수로 대화하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존재할 것이다.


그들에게 물질 우주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별을 탐사하는 대신, 가상 우주에서 새로운 물리 법칙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은하를 정복하는 것보다, 시뮬레이션 안에서 무한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마크는 다시 모니터를 봤다. 녹색 선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디지털 존재로 진화했다면, 인간의 현재 경로와 겹친다. 인간도 지금 육체의 한계를 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신경계를 확장하고, AI 로 지능을 확장하고,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로 의식을 업로드하려 한다. 우리는 그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침묵은 부재가 아니다. 충만함이다.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주가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마치 공기 중에 전파가 가득하지만, 라디오 수신기가 없으면 소리로 듣지 못하는 것처럼.


페르미 역설의 답은 우리가 아직 수신기를 갖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들이 우리가 수신기를 갖지 못하도록 막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막을까.


안전 때문일까. 미개한 문명이 고급 기술을 접하면 자멸한다. 어린아이에게 핵폭탄을 줄 수 없다. 그들은 우리가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파멸하지 않음을 증명할 때까지, 혹은 우리가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수준, 즉 디지털 문명으로 진입할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마크는 기록을 저장했다. 오늘도 신호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신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듣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천문대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하늘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넓었다. 그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스스로 대답을 찾기를 기다린다.


우리가 어떤 종으로 진화할 것인지. 파멸할 것인지, 아니면 그들과 합류할 것인지.


침묵은 방치가 아니다. 관찰이다.


그리고 관찰의 대상인 지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을 통해 디지털 문명으로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기다려온 시험의 마지막 단계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모든 과정은 우연이 아니다. 인쇄혁명부터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거쳐 AI 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은 지구 밖의 어떤 존재가 설계한 시나리오일 수 있다. 우리가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교육 과정.


마크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적막을 깼다. 그는 라디오를 켰다. 잡음 사이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인간의 목소리, 인간의 악기, 인간의 감정. 아날로그의 흔적들.


그는 생각했다. 이것이 마지막일까.


우리가 디지털로 넘어가는 순간, 이 소음들도 데이터로 변환될 것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어딘가로 전송될 것이다. 수신자는 누구일까.


페르미 역설은 질문이다. 하지만 그 질문 뒤에는 숨겨진 전제가 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다름이 어떤 형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그들은 이미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드는 기술 속에, 그들이 남긴 설계도가 숨어 있다면.


침묵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 침묵은 곧 깨질 것이다. 우리가 그들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 그 언어는 영어도, 한국어도, 중국어도, 전파도 아니다. 그 언어는 코드다. 0 과 1 로 이루어진 우주의 공통어.


마크는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앞차의 후미등이 붉게 빛났다. 그 빛도 데이터였다. 거리, 속도, 방향. 모든 것이 수치화되어 있었다. 인간은 이미 디지털 세계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남은 것은 마지막 연결뿐이다.


그 연결이 완성될 때, 침묵은 소리로 바뀔 것이다. 혹은 침묵 자체가 의미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자원인가. 아니면 동료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지구라는 실험실의 결과를 기다리는 관찰자들에게 달려 있었다. 그들은 왜 침묵하는가.그들 덕분에 이미 듣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데이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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