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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빈 Sep 13. 2023

교수님 번호 따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글봤다.


'교수님 번호 따려는데 진지하게 어떻게 생각해?'


나는 황당함에 이마를 탁 쳤지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친듯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는 말도 안 되는 미친 생각에 잠시 설득되었다.


생이 교수님을 마음에 품어서 안될게 뭐야? 성년자도 아닌 성인인데 뭐 어떤가. 본인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나쁠 거야 없지. 그렇게 감정이입을 하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냉큼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니지 싶으면서도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호감을 느꼈다면 한 번쯤은 그 마음에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밑에 댓글을 보니 후기남겨져 있었다. 


교수님 번호 딴다던 사람인데 수업 끝나고 학생들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교수님께 남자친구 있는지 여쭤보고 없으시면 번호 좀 주실 수 있냐고 물어봤. 수님이 웃으시며 남편 있다 하시더라. 심지어 아이도 있으시고 엄청 젊어 보이셔서 결혼 안 하셨을 줄 알았는데 충격적이었다.


댓글에는 그 와중에 교수님한테 대시하는 너의 용기는 뭘 해도 될 것 같다는 글이 달렸다. 성패를 떠나 그 용기는 정말 대단히 멋지다. 나는 저런 마음을 품을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다. 하지만 미친 것 같으면서도 도전적인 저 모습이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사실 나에게도 미친듯한 용기를 내뿜었던 기억이 있다. 대학에 다닐 때였다.  물은 홀로 언덕 위에 있어 외딴곳에 떨어져 있었다. 언덕을 내려 길 건너편에는 미대 건물이 있었다. 학식을 먹으러 내려가는 길에는 디자인과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리 과와 달리 남녀가 정답게 다니는 모습이 조화로워 보였다.


중 유독 눈길이 가는 예쁜 람이 있었는데 키가 크 배우 이성경을 닮은 성숙한 외다. 아마 나보다 앞선 선배 학번일 것 같았다. 나는 자꾸 눈길이 갔다. 그만큼 여러 이목을 끄는 매력의 소유자였다. 그 사람이 지나갈 때 우리 학과 동생들은 마치 풀 숲에 숨은 미어캣처럼 넋을 놓고 보았을 정도였다. 는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었다. 또 괜히 그 모습을 동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수업시간에도 속으로 생각했다. 괜히 어설프게 말을 건넸다가 머쓱할 모습을 생각해 보니 상상만 해도 민망했다. 렇지만 별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냥 다짜고짜 인사하면서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과의 지리적 문제로 인해 마주칠 기회조차 흔치 않으니 한 가지 묘책을 떠올렸다. 디자인과 건물에서 학교 정문 방향으로 가는 길에는 작은 주차장이 있었는데 그 뒤에는 흡연부스가 있었다. 나는 담배를 태우는 친구들에게 꼭 그쪽으로 가서 피우자고 했다. 그 길을 동선으로 자주 지나쳐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교 정문 앞을 혼자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 이건 정말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분명히 기회임에 틀림없었으나 발걸음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이쪽 길로 열심히 다녔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용기를 내보고자 했다.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천천히 걸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건 정말 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진짜 용기이다.


나는 가수 어반자카파의 노래 'Get'을 머릿속에 재생하면서 가사를 곱씹었다.


뭘 망설여 바보같이. 답답해 너의 태도.

그냥 좀 해도 돼 한 번쯤 미친 사람처럼

나도 알아 나도 못해. 말하면서 어이없어.

Go get if you wanna get.


그렇게 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내가 뭐라 말을 건넸는지도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충 다른 과 학생인데, 정말 예쁘시고 인기도 많으신 것 같다. 혹시 남자친구 없으시다면 전화번호 좀 알려줄 수 있나요. 뭐 이런 식으로 말을 건넸던 것 같다. 그러더니 돌아오는 답은 ‘@#$%^&’이었다. 뭐라고 말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엄청 어색해하더니 거절도 승낙도 아닌 채로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이 많은 자리도 아니었는데 많이 불편했을까? 공식적인 거절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어쨌든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용기 자체가 멋졌다.


미리 남자친구가 있는지 묻는 일 수 있지만, 뉘앙스가 과한 호감의 표시로 보 더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로서 편하게 다가갔으면 덜 부담스러웠을까 하는 미련이 남는다.


가끔 디자인과 학생들이 지나갈 때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진심으로 다가가려 한 것뿐이었다.


나는 교수님께 연락처를 묻고자 했던 그 마음 개념 없고 무모한 행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누 봐도 미친 짓 같겠지만 그 내면의 순수함은 꾸밈이 없는 마음일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용기 내어 표현하는 것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런 용기가 있는 사람은 뭘 해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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