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빈 Sep 01. 2023

모쏠 공대남은 자존심을 내려 놓아라



나는 20살에 군대에 갔다. 멋모를 시기에 빨리 군대를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22살 3월이 되는 해에 전역을 했는데, 전역과 함께 새 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스물 이후의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학교에서 갓 스무 살 새내기와 다르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면 보통 대학의 캠퍼스 라이프를 꿈꾼다. 나도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한 번쯤 꿈꿔보고 싶었다.


20대는 한창 연애에 대해 고민이 많아질 시기이다. 겨우 이성 만날 방법 따위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하느냐고 하겠지만 20대 시기 이보다 중요한 고민거리는 없다. 아마 인생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30대를 앞둔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한 고민을 한다. 만약 20대에 도태된 채로 30대가 되면 훨씬 더 심각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만남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더 어려웠다.


그 당시 학교동기들에게는 연애는커녕, 새로운 사람을 만날 방법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남중 남고, 공대까지 나와서 주변에 이성 만날 기회가 거의 전무후무 친구들이었다. 참 불쌍한 친구들이다. 아 물론 나도 포함이다. 나도 스스로가 딱하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대에 다니던 친구가 맨날 이 친구, 저 친구 같이 술 마시고 놀았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면 종종 현타가 오곤 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시간을 보내면 상황이 달라질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진짜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 도태남이 되기 십상이다.


동생들은 그래도 군대도 다녀온 나를 엄청 따라줬던 것 같다. 갓 스물에게는 한 살의 차이가 엄청 크게 느껴진다. 마치 스물과 스물하나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서른과 서른하나의 차이는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갓 스물과 다름없었던 나지만 다른 동생들은 한참 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심 스무 살 동생들에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특히 이성문제에 있어서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대단한 연애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놈이었다. 그런데 뭔 놈의 자존심 때문에 더 능숙하고 경험이 많은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뭔가 나서서 동기들에게 닥친 이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모쏠 공대남들이 어떻게 사람을 만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 이성을 만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주변사람에게 소개받는 것이다. 그러나 택도 없는 이야기다. 가장 일반적이지만 우리에겐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애초에 주변에 이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성이 없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누구를 소개해줄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종종 주변에 잊을만하면 여소해 달라고 조르는 '여소충'들이 주변에 있다. 사실 매력이 충분한 사람이면 진작 누군가 이어줬을 것이다. 이 놈은 자존심도 없나 싶었다. 나는 자존심이 세서 그렇게 조르는 건 못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대단했던 것 같다.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있을 마다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 아닌가? 그만큼 멘탈이 센 것이다. 능동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꾸준히 밀어붙이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이 들고 보니 그런 사람을 리스펙 한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낼 줄 알아야된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감은 넘쳤지만, 자존심도 센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근자감이었을 수 있겠다. 자존심이 세면 자신감도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자존심 상할 일이 있을 수 있더라도 그 두려움은 깨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자존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자존심 상하는 일에 여의치 않는다. 나에겐 그런 자존감이 필요했다.


그렇다. 가진 것도 없는 놈이 자존심도 세면 진짜 답도 없는 거다. 차라리 여소해 달라고 징징 조르는 게 훨씬 낫다. 안 그래도 소개 한 명 받을 사람도 없는데 자존심도 세면 어떡하겠는가?


스스로의 젊청춘이 아깝다면 당장 다음 학기에는 옆 학과 교양과목이라도 신청하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다 못해 근처에 지나가는 타 과 학생에게 말이라도 걸어볼 용기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 말고도 자존심을 내려놔야 되는 상황은 언제든지 또 있다. 동아리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든, 술집에서 헌팅을 하든, 길거리에서 이상형을 만나 번호를 물어보더라도 자존심 상할 수 있는 상황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는 MBTI가 I에요'라고 변명을 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정말 소심해서 시작이 어려운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I성향이 있는 사람은 에너지가 내적으로 향하는 성향일 뿐 말 못 하고 소심한 성향이 아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낼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진정한 자존감 높은 남자가 되는 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