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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빈 Oct 14. 2023

손수건플러팅을 응원합니다.



로맨스물의 시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오만과 편견'


18세기의 유럽은 결혼에 있어 개인적인 애정은 중요치 않은 시대였다.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조건으로 가문 간의 만남으로 결혼이 이루어졌다.


애정 없는 결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주인공들은 사회의 기준이 아닌 개인의 신념으로 사랑을 찾아가기로 한다. 그 와중에 내 눈길을 끌은 한 장면이 있었다. 다름 아닌 주인공의 여동생이었다.


군인들이 지나는 거리에 찾아간 여동생은 고의로 그들에게 손수건을 던진다. 가장 멋진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인 것 같았다. 혹시나 짧은 순간 눈길이 갔던 누군가가 그 손수건을 잡길 바라는 걸까. 한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 손수건을 받을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이 방법이 최선이었을까?


결국 그 손수건으로 만난 인연은 오해와 불화를 낳는다. 그저 인연을 쉽게 맺고 끊을 수 있었던 가벼운 남자와 얽혀 순수한 마음에 상처받기도 한다. 자유로운 만남이 익숙하지 않던 시기이기에 사랑에 더 서툴고 순수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가끔은 낯선 사람의 강렬한 첫인상에 시선이 사로잡힐 수 있다. 단순한 예쁨과 멋짐을 넘어선 분위기에 이끌려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당연한 감정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던진 손수건은 위험했지만, 어쩌면 본인이 원하는 사랑을 찾기 위한 용기의 플러팅이자 적극적인 액션이 아닐까?


가끔 강남역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거리에 사람들을 보다 보면, 평생 살면서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언젠가 다시 만날 인연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 빨빨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붙여보는 사람이 보인다. 연락처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용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 모습은 용기보다 장난 같은 모습이었다. 왜 가벼운 장난처럼 보였을까? 강남역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계속 새로운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진다. 진심을 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또 다가갈 수 있다. 그런 가벼운 말을 건네는 사람이 스스로 진심을 품을 수 있을까? 마치 불특정 다수의 낯선 이성에게 손수건을 던지는 모습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는 누군가에게 말을 붙여도 리젝 될 수밖에 없다. 진심이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수건을 던진다면 어디서 던져야 할까?


사람이 적은 한정된 공간이어야 한다. 같은 사람과 계속 마주칠 수 있는 실내의 공간이라면 더 좋다. 불특정 다수의 다른 사람이 아닌 한 사람에게 용기를 내서 다가가는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나름 개연성이 느껴지지 않을까? 특정 콘셉트를 가진 카페나, 전시회라면 공통의 관심사까지 만들 수 있어 더 좋다.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에 손수건을 던지는 것이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이성과의 만남이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경험도 비교적 더 많다. 연애관계에 있어 더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겠지만, 더 성숙해질 수 있다. 낯선 이성을 향해 던진 손수건은 잠시 상처를 안겨주었지만 좋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스스로의 사랑을 찾으려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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