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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생 Oct 30. 2022

대충 아는 삶

 친구와 몽골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였는데 마침 입국 후 코로나 검사도 해제 되고 추석이기도 해서 여행 상품을 찾아봤다고 했다. 검사 해제 발표 시기가 추석에서 멀지 않았기에 당연히 자리가 없었다. 다 지난 마당이고 친구는 가지 못했으며 나는 짐짓 잘난척을 하고 싶은 마음에 원래 보름에는 몽골에 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다시 짐짓, 가려거든 그믐에 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덧붙였다. 예상대로 왜?가 돌아왔다. 오예! 과학얘기 잘난척 시간이다. 몽골이라함은 아무래도 드넓게 펼쳐져 쏟아질 것 같은 별 아니겠냐고. 친구의 긍정. 별을 보기에는 광해가 없을 수록 좋은데 보름달은 너무 밝다고. 아주 보편적인 상식인 듯 말해줬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던것처럼 말했지만 나도 주워들은 얘기였다. 애정해 마지않는 팟캐스트에서 언젠가 들었던 에피소드였다. 지나가는 말 같은 것이었는데 우리가 보름이면 몽골도 보름이라고, 별을 보고 싶다면 보름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상식이 맞긴 하다. 빛이 있는 곳과 빛이 없는 곳 중 별이 더 잘 보일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초등학생도 어둠을 택할 것이다. 다만 여행을 계획할 때 우리는 보통 긴 연휴가 생겼구나, 여행이나 가볼까?, 가보고 싶던 몽골에 가야지, 몽골에 간 김에 밤하늘 별을 잔뜩 봐야지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가려는 곳의 밤하늘 사정까지 고려하는 사람은 천문학에 아주 관심이 있거나 된통 당해본 사람일 것이다. 마음 먹고 미술관에 갔다 휴관이라는 팻말을 보곤 전시라면 휴관일부터 검색하게 된 사람처럼. 성공적인 몽골 여행을 위해 꽤 쓸만한 고려 요소를 알려줬다는 뿌듯함도 잠시, 친구가 물었다. ‘우리가 보름이면 몽골도 보름이야?’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며 어디 가서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너를 보호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친구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듯 관찰자의 위치가 다른데 왜 달의 모습이 같냐고 재차 물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속으로 당황하기 시작했던건.  어? 나라마다 보름달 뜨는 시기가 다를 수도 있나? 분명 팟캐스트에서 무려 천문학 박사님이 우리가 보름이면 몽골도 보름이라고 했는데. 왜곡된 기억이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했다. 그렇다면 혹시 몽골만 우리와 같은 때 보름달이 뜨는 것인가? 내적 혼란이 시작되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시기에 보름달이 뜬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머릿속이 바빠졌다. 몰스킨 다이어리. 뜬금없이 왜 몇 년 전에나 쓰던 몰스킨 다이어리가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2023년에는 다이어리를 잘 써보겠다고 9월부터 사다 모셔둔 탓일까? 아무튼 다이어리 월간 페이지마다 표시되어 있던 달의 위상이 떠올랐다. 정식으로 수입되는 제품이고 우리나라용으로 별도 제작 하지 않는 것 같으니 보름달은 어디서나 보름달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천천히 슈퍼문도 떠올랐다. 우리에게 슈퍼문이 뜬다고 할 때 세계에서 멋지게 찍힌 슈퍼문 사진을 보곤 했었다. 다행히 보름달은 어디에서나 보름달이었다.

 친구의 궁금증을 나는 풀어줄 수 없었다. 그저 여기서 보름달이 뜨면 저기서도 보름달이 뜬다고, 그게 맞다고 말 하는 게 전부였다. 우리는 문과생들 이었다. 물론 학창시절 이미 다 배웠겠지만 우리는 배운 것을 다 기억하는 그런 인간미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나는 이 카페에 이과생이 있지는 않을까? 혹은 문이과 상관 없이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슬쩍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당당하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웃겨보일 것 같았다. 다행히 착한 내 친구는 나를 더 곤란하게 하지 않았다. 언제나 칭찬이 후한 내 친구들은 내가 오예! 과학얘기 하며 떠드는 것을 아니꼬와 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준다. 20년도 더 넘은 그 친구들에게 나는 내가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척 굴어왔는데 고작 이런 것도 잘 모른다니. 무엇보다 탐구심은 친구에게 더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단 한번도 지역마다 달의 모습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진적이 없었다. 눈을 한쪽식 번갈아 감기만 해도 사물의 위치가 변하니까 위치에 따라 달의 모습이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게 더 자연스럽고 합당한 생각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그저 우리가 보름달이면 몽골도 보름달이라는 말에 당연하겠지라며 수긍했다. 그런가? 왜? 라는 물음을 가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과학이란 모름지기 ‘그게 왜 당연해?’라며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내가 꽤나 과학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 오래 관심을 갖고 취미로 여기면서도 지구의 위성인 달의 상변화조차 원리를 모르고 설명할 수 없었다. 대강과 대충의 말로는 이런 것일까? 친구들과 식당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대화를 하면서도 나는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실체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날의 어스름과 풍경이 아주 오래 이따금 기억날 것 같다.

 과학은 내게 취미다. 나는 전공자가 아니다. 이 사실은 나를 뻔뻔하게 만든다. 10년 가까이 과학 팟캐스트를 듣고 그보다 더 전부터 조금씩 관심을 가진 사람이 수준이 이정도라면 과학은 내게 맞지 않는 것이려니 하며 떠날만도 하건만 나는 자존심도 없이 다시 과학의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그러니까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라 버스에서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역시나 대충이 문제였다. 대충 검색해 대충 이해한 방식으로 대충 이런 것 같다며 나는 또 창피한줄도 모르고 말했다. 설명은 버스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와중에도 이어졌다.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나의 부끄러운 풍경을. 왜냐하면 그건 다 틀린 말이었으니까.

  달 위상의 변화는 달의 공전 때문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했던 것인데 엉뚱하게 생각했던 것은 월식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하루하루 변화하는 달의 모습과 짧은 시간 내에 위상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월식을 설명할 두 가지가 다 필요했다. 왼쪽 오른쪽 구분이 그렇게 어렵고 머릿속으로 도형을 돌리지 못하는 나는 그 두 가지를 반대로 생각했다. 우주의 공간은, 끈이론이 맞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가 보기에는 3차원이라 지구와 달의 공전은 같은 평면 위가 아니다. 그러니까 레코드판 가운데에 태양이 있고 그 표면 위 어느 지점에서 지구가 돌고 있다면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궤도는 레코드판 표면이 아니라 레코드판을 뚫고 들어갔다가 허공으로 올라왔다가 하는 형태일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를 기준으로 태양(백도)과 달(황도)의 각도 차이가 월식을 만든 것이었다. 그날 친구의 의문과 추측은 대부분 합당하고 옳았는데, 모든 곳에서 달이 동일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보름달만 동일하게 달이 원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지구는 둥글고 대한민국 반대편에 있는 나라라고 해서 머리가 땅에 붙어있는 것은 아니니까 거꾸로 선 토끼가 절구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보름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충격적이었는데 달이 차고 기우는 방향이 남반구냐 북반구냐에 따라 반대라고 했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이러한 상식을 갖고 사는 걸까? 그래도 과학이 취미라 생각하고 관심을 많이 두었다 생각했는데 지구를 돌고 있는 달에 대해서도 이토록이나 아는 것이 없다니. 10년 가까이 들어온 팟캐스트에서도 분명 한 두번쯤은 이야기 했을 것이다. 의기소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밝혔듯이 나는 뻔뻔하다. 과학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버릴 수 없다. 과학이 내게 부끄러움과 겸손이라는 배움마저 준 것이다,라고 합리화 시키며 넘어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

 아주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상사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자주 말했었는데 그것은 주로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과학에서도 통용되는 것 같다. 세상에 당연히 그런 것은 없다. 다 이유가 있고 원리가 숨겨져 있다. 귀찮다고 대충 넘어가지 말아야지.

 친구에게는 네 말이 맞았다고 다시 이야기 해 줘야한다. 뒤늦게 합류한 다른 친구에게까지 틀린 이야기를 자랑스레 했으니 다음번에 만났을 때 내 무지와 함께 이야기 해야겠다. 내가 과학은 잘 몰라도 좋은 친구들은 잘 만나서 내가 틀렸다는 사실보다는 새로 알아온 것에 대해 더 집중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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