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이람 Nov 27. 2022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1)

아이를 낳고 당분간은 직장에 다니지 않기로 했다. 일단은 아이가 네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까지 고군분투하며 육아하였으므로 좀 쉬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잠도 늘어지게 자고 친구와 만나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짬짬이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가 네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고 나서도 어린이집에 코로나가 유행하거나 전국적으로 확진자 수가 크게 증가하면 몇 주씩, 또 한 번은 세 달을 집에서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내내 집에서 돌보는 것도 아니고 원에 꾸준히 다니는 것도 아닌, 애매한 원생활이 이어졌다. 어쨌든 이전보다 여유가 생기긴 하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하원하기 전까지 집 안에 아무런 소음이 없는, 조용한 시간이 이어졌다. 대개는 문을 열어젖히고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점심을 먹고 좀 노닥거리거나 저녁 준비를 하다 보면 하원 시간이 되곤 했다. 무얼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으면 하루가 그냥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온종일 집 안을 돌본 것 말고는 한 것이 없었다. 나는 이걸 두고서 대개 ‘한 것 없이’ 하루를 보내버렸다고 말하는데 이 말을 들은 지인들은 내 말을 부정했다.


아니야, 네가 한 게 뭐가 없어. 살림도 하고 아이도 돌봤잖아. 그것도 대단한 일이야.


한 것도 없이 하루가 지났다, 나도 의미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면 지인들은 나를 위로하듯 주문처럼 넌 오늘도 성실하게 하루를 보냈다고 대답해주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일단은 이런 말을 중얼거리는 내가 제일 이상한 사람이었다. 계속 중얼거릴 정도로 간절하다면, 하면 되지 않은가. 그러나 하지 않았다. 누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듯 입으로만 중얼거리고 몸은 타성에 젖어서 늘 하던 일만 반복해서 했다. 그것이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있었는데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고만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해야 할 일만 하고 하고 싶은 일은 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오는 죄책감이 있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살면 결국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그래서 지인들의 다정한 말이 와닿지 않았다. 회사를 다닐 때에 아침에 일어나 씻고 출근해 일했던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청소할 뿐이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느낌으로. 하물며 회사에서 일할 때 느꼈던 약간의 만족감조차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실 해결책은 간단하지 않겠는가. 집안일을 후딱 해치우고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그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를 배웠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마침 남편이 아이패드를 사주었기 때문에 기회다 싶어 당장 온라인 수업을 결제했다. 수업마다 상당한 분량의 과제가 있었는데 그걸 하는 시간이 기다려질 만큼 수업이 재미있었다. 앉은자리에서 두세 시간씩 그림을 그렸고, 하다 보니 프로그램을 다루는 데에도 점점 능숙해졌으며 그림도 꽤 볼 만해졌다. 완강한 뒤로는 핀터레스트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찾아 따라 그렸다. 뿌듯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미술 학원을 이 년쯤 다닌 것 말고는 따로 배운 적이 없는데 이렇게나 잘 모사하다니.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남이 찍어 올린 풍경이나 인물을 그려봤자 재미나 있을 뿐이지 내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거기엔 나만의 기술이나 시선이 담겨 있지 않았다. 정말로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다른 방법으로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해야 했다. 차근차근 데생 연습 같은 걸 시작해도 좋았겠다. 생각해봤다. 내가 그 정도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건가? 아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병원에 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