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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Jan 23. 2023

용서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증오에서 연민으로

 오랜만에 새아빠를 봤다. 엄마와 새아빠는 이혼한 지 오래됐고 같이 살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 살아서 엄마가 명절마다 음식을 챙겨 드리곤 한다. 친정엄마와 동생은 일이 있어 나가고 친정집에는 나와 두 아들만 있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 보니 새아빠였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눈 둘 곳을 찾지 못했고 말을 버벅거렸다. 알고 보니 엄마가 챙겨둔 명절음식을 가져가라고 부르신 거였다. 현관문 앞에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받아 들고 바로 가셨는데 십 분 정도 후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오만 원짜리 두 장을 손에 들고 새아빠가 서 계셨다. 아들들 용돈을 주려고 다시 오신 거다. 아들들은 새아빠를 작은 삼촌 아빠 정도로만 알고 있다. 어색한 분위기는 신경 쓰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용돈에 싱글벙글하며 방방 뛰어다녔다.


 새아빠는 일을 거의 하시지 않는데 돈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다. 지인에게 부랴부랴 돈을 꾸었을 수도. 사실 예전의 분노와 미움이 사라진 지는 오래다. 어린 시절을 공포와 불안에 떨며 살게 한 장본인이므로 죽을 때까지 증오할 거라 생각했는데 뜨겁게 타오르는 분노를 무색하게 할 만큼 새아빠는 너무도 빠르게 쇠약해져 갔다. 그리고 지금은 고통의 어린 시절을 보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남편은 새아빠를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안타까워한다. “왜 그렇게 사셨을까? 조금만 잘하셨으면 지금쯤 자식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모셨을 텐데.”

처음에는 남편의 그런 말도 듣기 싫었다. 분노에 휩싸여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혼자서 외롭게 지내셔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행여나 길에서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의 말이 내 마음으로 옮겨왔다. 엄마에게 폭력과 욕설을 쏟아내지만 않으셨다면 이렇게 불편하고 어색하게 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세배도 못 받고 용돈만 쥐어준 채 도망가듯 가시지 않아도 됐을 텐데.


 어린 시절의 상처는 마음속에 각인됐지만 이제는 멀고 먼 기억이다. 여전히 꿈에 괴물로 변한 새아빠가 나오지만 영원히 상처에 묶여 살 수는 없다. 고통의 기억을 강물에 뿌려 멀리멀리 흘려보내고 싶다.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지만 이제는 나를 옭아매는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증오하고 분노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일부가 되었음을 받아 들일수밖에.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만큼 새아빠의 상처를 헤아리며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분에게도 물려받은 상처와 고통이 있었다는 건 분명할 터. 적어도 어린 시절을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보내진 않았음을 가늠해 보다. 엄마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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