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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Mar 10. 2023

나를 가득 채워줄 사람

꿈속에서 난 언제나 피해자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걸까?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아빠는 없었고, 엄마는 오빠와 날 차별하셨고, 외가나 친가나 딸이라 대우를 못 받았다.

외가에서는 돌아가신 외삼촌 자식들을 떠받들며 모든 애정과 관심을 쏟아부으셨는데, 친가에서는 아빠가 돌아가시자 바로 내쳐졌다.

친할머니에게는 아빠 외에도 다른 아들이 둘이나 더 있었고, 죽은 자식에게는 미래가 없으니 그 아들의 가족도 필요 없어지신 거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돈을 버셔야 했기 때문에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에게 나를 보내셨다.

그때 난 버려진 기분이었다.

2년 후 엄마와 다시 살게 되었지만 나는 계속 두려웠다.

또 버려질까 봐.


엄마는 나를 버리지 않았지만 사랑도 주지 않았다.

늘 엄마에게 혼날 것을 걱정했고 오빠와 차별받은 기억밖에 없다.

분명 엄마는 나도 사랑하셨을 텐데.

어렴풋이 ’우리 공주‘라는 말을 하셨던 기억이 나기는 한다.

하지만 난 구박 떼기 공주였다.

그래서 동화 속 다른 공주보다 유독 신데렐라를 좋아했나 보다.


학교에서도 난 버림받았다.

아빠가 없어서, 가난해서, 발표를 못해서, 예쁘지 않아서.

선생님과 친구들 관심 밖에 날 이유들은 많았고, 초등학교 시절 교실은 차갑고 외롭고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20대는 싫어도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은 있다.

특히 아무 걱정 없고, 생각 없는 초등학교 시절로.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하나 막막했다.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눈빛을 보내는 친구들, 나 같은 거 관심도 없는 선생님들, 안전하지 않은 집.

차라리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유치원 때부터 학창 시절 내내 좋아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그 시절을 버텼다.

학교에 갈 이유, 살아야 할 이유를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버텼다.

중학생 때까지는 줄곧 짝사랑만 했고, 마음속으로 애정을 쏟아부으며 내일을 꿈꿀 수 있었다.

그 사랑마저 없었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었고,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줄 쉼터도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말이 내가 살아갈 이유 같았다.

관심받고 사랑받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나를 가득 채우지 못했다.

그 사람의 사랑이 부족해서 내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피해자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제 그만 억울하고 싶다.

나의 불행이 환경이나 다른 사람 탓 같고, 어린 시절 상처에 사로잡혀 꿈속에서 서럽게 울부짖는다.

아무리 대성통곡을 해도 나의 등을 토닥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울고 있는 나를 두고 그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갈 뿐이다.


나에게도 나를 ‘추앙’ 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일까?

나를 가득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한 걸까?


하지만 나의 현실에서 그런 사람은 없다.

오직 나 자신 밖에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될 것 같다.

내가 나를 ‘추앙’하는 일은.

그래도 한 번쯤은 가득 채워보고 싶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꿈을 품고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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