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우 Oct 14. 2024

교실이 싫어서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

보건실에 있으면

꾀병환자를 가릴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생겨요.

    

농구, 축구를 좋아하는 스포츠 맨이라면, 2~3일에 걸쳐 1번은 5교시 종이 치고 정확히 1분 안에 보건실에 들려요. 너무 좋아하는 축구를 점심밥도 굶어가며 점심시간 내내 하다가 5교시 시작 종이 쳤는데 지금 들어가면 수업 지각이니깐 보건실에 들려서 치료받았다는 확인증을 가져가기 위함이죠. 물론 진짜 찰과상이 있어서 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언제 다쳤는지 물어보면 30분 전에 다쳤다고 해요. 왜 다치자마자 오지 않고 5교시 시작하고 보건실에 왔냐고 물어보면, 축구를 멈출 수가 없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앞으로도 5교시 수업 시작했는데 수업 늦을 것 같으면 보건실 들렀다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굳어질 수 있어요. 학생이 수업 시작하고 중간에 들어오면 선생님도 수업하다 말고 출석체크하는데 수업이 잠시 멈추게 되고, 수업에 늦으면 본인으로 인해 수업 시작이 지연되어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에 방해가 되요. 이런 종류의 꾀병은 아이 본인에게도 이롭지 않으니 치료해 주고 다음부터는 다치자마자 와~라고 말해준답니다.     


보건실에 오는 꾀병환자들 중에는 특정 시간에 반복해서 보건실에 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월요일 3교시, 수요일 5교시가 시작되면 두통, 복통을 번갈아 호소하며 보건실에서 쉬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 이런 경우는 조금 더 아이를 살펴보고는 해요. 특정 교과 시간이 듣기 힘들어서 보건실에 온 경우인데, 고등학생이라면 선택교과에서 마주치기 싫은 친구가 있거나 어떤 이유로든 교실에 있는 게 괴로운 학생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어디 아파서 왔니?”

“머리가 아파요.”     

열도 없고, 수면 부족도 아니고, 딱히 명확하지 않았지만, 학생이 두통이 자주 있는 편이라고 두통약을 달라고 해서 줬어요. 중고등학생 중에 편두통이 있는 학생들이 꽤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한 학생이 약을 먹는 척하는 거예요. 제가 앉아 있는 책상과 정수기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있어 학생들이 먹는 게 눈으로 확인이 가능해요. 보통 아파서 약을 먹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약을 받으면 잘 먹죠. 그런데 이 학생은 먹는 척하면서 약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물만 먹고 나가더라고요.      

보건실을 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당장 물어보고 싶었지만, 분명 다시 보건실에 올 거 같았어요. 제가 바로 물어보면 학생이 당황할 수도 있고, 평소 저와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니어서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며칠 후, 그 학생이 다시 왔어요. 또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솔직히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이 며칠 전에 네가 두통으로 왔을 때 두통약을 받아서 땅에 떨어뜨리는 것을 봤어. 보통 약을 실수로 떨어뜨리면 선생님에게 다시 약을 달라고 하던데, 희철이는 선생님에게 다시 약을 달라는 말은 안하고 물만 먹고 나가더라고. 왜 그랬는지 궁금한데 말해줄 수 있니?”


희철이가 잠시 머뭇거렸어요.     


“실은...아빠가 약을 먹지 말라고 했어요”

“아빠가 약을 먹지 말라는 게 무슨 뜻일까?”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를 쳐다보고 있는 건 성급한 성격을 가진 저에게는 큰 노력을 들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 더 재촉할 수 없었어요. 그저 아이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기다려줄 뿐이었죠. 그 뒤로 아이는 보건실에 와서 약을 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마음속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았어요. 그저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일만 해 주었을 뿐인데 아이는 더 이상 두통약을 찾지 않았을뿐더러, 점차 표정이 밝아졌답니다.     


우리가 흔히 ‘꾀병’이라고 하면 안 아픈데 아픈척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정확한 ‘꾀병’의 뜻을 찾아보면, ‘거짓으로 병을 앓는 체하는 짓’이라고 나와요.

그럼 의학적인 용어로 ‘꾀병’이라는 단어가 있을까요? 병원에서는 ‘꾀병’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비슷한 단어를 찾자면 신체증상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의학적으로 꾀병은 외부적인 이득을 획득하기 위해 과장된 증상을 의도하는 상태를 말해요.    

 

보건실에 오는 아이들은 꾀병으로 보이는 증상을 통해 저마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료받고 싶어 해요. 몸에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 마음에는 저마다의 말못할 상처를 안고 있죠. 급한 성격을 가진 보건샘이 아이들의 머뭇거리는 대답을 기다릴 수 있게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랍니다. 몸의 상처를 치료할 때는 즉각적으로, 바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때는 저마다 아이들만의 속도를 인정해 줘야 하거든요. 너무 성급하지도 않게, 하지만 너무 늦지도 않게 말이에요.     


아이가 꾀병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가장 좋은 처방은 가만히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는 일이랍니다. 아이의 마음속 이야기를 듣는데 내어준 시간만큼 마음의 상처는 아물어 갈 테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매달 생리통으로 너무 힘들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