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희는 복통으로 보건실에 자주 와요.
긴장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아랫배에 가스가 많이 차고 소화가 잘 안되는 편이에요.
병원 가서 진료를 받아도 의사선생님께서 딱히 명확한 진단명을 말씀해 주지 않아,
그 뒤로 병원에 잘 가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니 보건쌤도 미희가 복통으로 오면 대증요법으로 처치해 줄 수밖에 없어요.
여기서 말하는 ‘대증요법’이란 원인을 제거할 수 없어도 증상의 억제를 도와주어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을 말해요. 예를 들면, 설사를 하면 지사제를 주고, 소화가 안되면 소화제를 주는 처치를 말하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원인에 대한 치료는 아니에요.
오늘도 미희는 배를 부여잡고
미간을 찌푸리며 보건실에 왔어요.
“선생님, 오늘 배가 좀 많이 아파요.”
“얼마나 아프니?
바로 대답하지 못하더라고요.
”평소보다 더 아프니?”
“네. 너무 아파서 조퇴하고 병원 가고 싶어요.”
복통을 자주 호소하는 학생들이
또 배가 아프다고 보건실에 오면
평소와 같이 큰 문제가 없는 복통이라고 간과하면 안 돼요.
중학생 정도 되면 본인이 의사 표현을 꽤 명확히 하는 편이에요.
본인이 병원 갈 정도로 복통이 심하다고 하니,
간단한 문진을 한 후,
바로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아이 상태를 전달한 후 조퇴를 권했어요.
담임선생님께서는 보건실 전화를 받고 학부모님께 전화를 하겠다고 하셨어요.
그 뒤로, 수많은 아픈 학생들을 봐주고 점심을 먹고
어느덧 5교시 시작하는 종이 울렸어요.
북적이던 아이들의 소리는 어느새 고요해지고
저는 3층 교무실에 가는 길이었어요.
복도 저 끝에서 미희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어요.
“어? 미희야. 아까 조퇴한 거 아니었어?”
내가 말을 걸자마자 미희는 바로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눈물이 그렁거렸어요.
“미희야. 속상한 일이 있었나 보다. 선생님이랑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보건실로 가는 길에 미희는 고개만 푹 숙이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어요.
손가락으로 쿡 찌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저도 더 이상 묻지 않았어요.
보건실에 도착하자마자
미희네 반 5교시 교과 선생님께, 미희가 수업을 듣지 못할 거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어요.
학생이 수업 중간에 화장실 또는 보건실에 간다고 말하고 오지 않으면 교과 선생님이 걱정을 하기 때문에 꼭 알려드려야 해요.
미희는 평소에 자주 복통이 있는지 물어봐도 우물쭈물, 묻는 말에 단답형 대답을 하고, 항상 표정이 어두워 보여서 이참에 상담을 길게 해보자 마음먹었어요.
상담을 하다가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다른 장소에서 이야기를 나눠야 했지요.
보건실 앞에
“보건선생님은 잠시 학교 순회 중! 교무실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응급 시 010-0000-0000으로 전화 주세요.”
팻말을 붙이고 학교 건물을 나왔어요. 혹시라도 보건쌤이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말이에요.
“선생님이랑 좀 걸을까? 선생님도 미희 덕분에 학교 좀 걸어보자.”
미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어요.
“미희야. 선생님이 평소에 미희가 자주 복통이 있어서 걱정됐는데 오늘 왠지 이야기를 하면 좋을 타이밍인 거 같아서 이렇게 나왔어. 미희가 오늘 선생님한테 배 아프다고 조퇴한다고 하고 간 줄 알았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이 어두워 보이네. 그래서 걱정이 돼. 혹시 무슨 일 있는지 말해줄 수 있니? 힘들면 지금 말하지 않아도 돼”
미희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말하기 시작했어요.
“실은 아까 담임선생님이 병원 가야 한다고 엄마한테 전화했었는데...조퇴를 못했어요.”
“그랬구나. 무슨 일 있었어?”
“담임선생님이 엄마 전화를 저에게 바꿔줘서 엄마한테 말했는데 엄마가 욕했어요.”
“에구..속상했겠다”
“네...”
잠시 정적이 흘렀어요.
“미희는 엄마가 미희한테 왜 욕을 했다고 생각하니?”
“엄마가 요즘 안 좋아요. 최근에 엄마가 일하는 곳에서 실직을 당했어요. 그래서 신경질도 많아지시고 우울하기도 해요. 그래서 요즘 자주 저에게 욕하세요.”
저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그냥 걸었어요. 아이를 쳐다보며 측은한 표정을 짓는 것조차 아이에게는 상처가 될 거 같았어요.
미희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리고 아빠랑 사이가 안 좋으세요. 맨날 싸우세요. 그래서 집에 잘 안 들어오세요. 동생이 2명이나 있는데, 제가 첫째라서 제가 배가 아파도, 병원가고 싶어도 많이 참아요. 엄마가 힘든데 저까지 아프다고 하면 엄마가 더 힘들거 같아서요.”
미희의 사연을 듣고, 바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보통 중학생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춘기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미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중3 학생이었는데 이렇게 철이 들었다는 것, 속이 깊다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렁이던 미희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어요. 미희와 같이 부모의 정서적,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힘든 아이들을 만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미희를 만난 날 마음껏 아파하지 못하는 아이가 보건실에서, 보건쌤 앞에서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든 아프면 보건실에 와.”
아이들이 마음껏 아파할 수 있도록 오늘도 보건실의 자리를 지키는 보건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