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증상은 보건실에 오는 케이스 중 “신경계” 분야에서 단연코 1위에요. 어지러움이라는 증상 하나만으로 원인을 찾기는 어려워요. 비단 보건실뿐만 아니라 병원에서도 검사를 한 후 이상이 없다면 다른 과로 전과하여 해당 파트에서 또 검사를 하고, 정상이면 또 다른 과로 가는 식입니다.
가장 먼저 학생의 혈압, 체온, 호흡, 맥박을 측정해요. 이 네 가지를 ‘활력징후’라고 부르며, 의학용어로는 “vital sign”이라고 해요. vital “생명의, 생명유지의 필수적인”이라는 뜻으로, 우리 몸의 중요한 기능인 생명유지 기능을 측정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이에요.
이 학생의 활력징후는 정상이에요.
학생들에게 흔히 의심되는 원인들을 한 가지씩 물어봐요.
“어제 몇 시에 잠들었니?”
“어지럽다는 증상이 있기 바로 전에 어떤 행동을 했니?”
“가지고 있는 질환 있니?”
“현재 먹고 있는 약 있거나, 최근에 안 먹던 약을 새로 먹은 약이 있니?”
중고등학교에서 가장 흔한 원인은 수면 부족이에요. 수면 부족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꼽아요. 첫째는 게임이나 유튜브 보다가 늦게 잠드는 경우이고, 둘째는 수행평가가 몰려있는 기간에 수행평가를 다 하고 자는 경우에요. 이 글을 읽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어? 내 이야기네!” 하고 공감할 거 같아요.
위의 질문에 해당사항이 없으면 마지막에 물어보는 질문은 이것이에요.
“왜 어지럽다고 생각하니?
”몰라요“
1초 만에 대답하지만, 보건쌤은 이 대답에 약간은 진지한 태도로 말해요.
”본인 몸은 본인이 제일 잘 알지. 24시간 생활패턴은 본인이 제일 잘 알지. 잘 생각해 봐~ 평소와 다른 점이 있는지“
그럼 아이들이 가끔 솔직한 말을 꺼내기도 해요.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야기, 오늘 아침에 엄마와 대판 싸운 이야기, 최근 어떤 생각이 계속 나서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이야기, 이성친구와 헤어져서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 등등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가 스물스물 나와요.
“선생님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그럼”
“제가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그럼 나는 마법의 문장을 자연스럽게 말해요.
“선생님은 항상 네 편이야. 그러니 편하게 이야기하면 좋을 거 같아. 말하기 어려우면 지금 하지 않아도 돼.”
이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솔직히 무슨 말일까 걱정되어 침이 꼴깍 넘어가는 걸 겨우 참았어요.
“조용히 야자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문을 여는 소리가 분명 들려서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분명 누가 나를 뒤로 잡아당겨서 쳐다봤는데 뒤에 아무도 없었어요. 버스에서 너무 어지러워서 죽을 거 같은 공포감이 들었어요. 고개를 숙이면 자꾸 옆에서 누가 말을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고개를 숙이지 않고 앞만 보려고 해요. 길을 걸어갈 때도 책상에 앉아 있을 때도 그래요.”
아이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 보였어요. 그 상황을 다시 상기시키며 말하려니 공포감이 밀려오는 듯했어요.
“너무 힘들겠다.”
“네...”
“이렇게 평상시에 힘든데 집에서 잠은 잘 자니?”
“아니요.”
“그럼 잘 때 어떻게 해?”
“불을 켜고 자려고 하는데 거의 잠을 잘 못 자요.”
“에구... 잠도 못 자고 정말 힘들겠다.”
저는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라 저 자신이 답답했어요.
“선생님한테 먼저 이런 솔직한 이야기를 말해줘서 고마워. 그만큼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아. 선생님이 아는 선에서 이런 증상에 대해 설명해 줄게. 착각과 환청이라는 게 있어. 두 개의 차이는 원인이 되는 실제가 있고 없고의 차이지. 예를 들어 볼게. 착각은 실제 뒤에서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라는 원인이 있는데 그걸 내가 다른 소리로 착각하는 거야. 환청은 실제 커튼도 없고 바람 소리도 없고, 아무 원인이 되는 것이 없어. 형석이가 실제로 그런 느낌이 있었을 때 선생님이 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정확히 뭐다!’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을 거 같아. 그리고 이런 증상이 있을 때 정말 실제 소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형석이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 그래서 선생님 생각에는 이와 관련된 증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담사님이나 정신의학과 의사선생님께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할 거 같아.”
그 뒤로 어떻게 되었냐고요?
제가 어머님에게 직접 전화해서 아이의 증상에 대해 차근차근 말씀드렸어요. 처음에 어머님께서 매우 당황스러워 하셨어요. 하지만 저와 함께 어떻게 아이가 잘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으셨어요. 지금은 졸업해서 의젓한 대학생이 되었답니다.
학생의 정신 증상과 관련해서 보호자님께 말씀드리기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에요. 왜냐하면 가끔 저에게 화를 내거나 부정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하지만 형석이 어머님의 경우는 달랐어요.
아이의 증상을 듣고 심각성을 인지하시고 바로 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치료에 전념하셨었어요.
만약 형석이의 어머님께서 “보건선생님이 착각하신 거예요. 제가 아이랑 이야기해 봤는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제대로 알고 말하세요”라고 아이의 증상을 외면하거나 부정했다면 형석이는 무사히 졸업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