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표정으로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 여학생이 보건실에 들어왔어요.
“어디가 아파서 왔니?”
“여기...”
왼쪽 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올리기를 꺼려 하듯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러워 보였어요.
칼을 왼쪽 팔 안쪽에 여러 차례 긁은... 자해한 흔적이었어요.
“뭐하다 다쳤니?”
건조하게 질문했어요.
이럴 땐 평소처럼 루틴 질문을 해요. 마음이 아팠지만 티를 내는 것은 이 학생이 부담될 수도 있어요. 가끔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연기가 필요해요.
“고양이한테 할퀴었어요.”
말없이 소독해 주었어요.
오래전 자해해서 이미 딱지가 져있는 상처들과 최근에 자해해서 아직 아물지 않아 불그스름하게 부풀어 오르거나 살짝 벌어진 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혼재해 있었어요.
마치 그 안에 감춰진 아픔이 터져 나오는 듯 했어요.
그 아이의 슬픈 눈을 바라보고 말하자니,
그 아이도 나도 감당이 안 될 거 같아서 상처에 집중하는 척하며
“선생님이, 희수의 상처를 소독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어.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
“.......................”
“힘들면 주위 사람들에게 기대도 돼. 혼자 아파하지 말고... 속이 얼마나 문드러지고 있는지, 속이 얼마나 타들어가는지..”
희수는 몸을 미세하게 파르르 떨며 훌쩍였고,
희수의 교복과 바닥에 눈물이 뚝뚝 두세 방울 떨어졌어요.
저는 그제서야 희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어요.
“.............”
“.............”
저도 눈물이 나올 거 같았지만, 상처 소독을 마무리하려고 마음을 추수렸어요.
희수는 저에게 특별한 아이에요. 중학교 때 같은 중학교에서 학생으로, 저는 보건샘으로 있다가, 희수가 졸업하던 해 저도 그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로 옮겼는데, 둘 다 같은 고등학교로 온 거였어요. 가끔 보건샘이 힘들어 보인다고 지나가는 길에 간식을 주며 힘내라고 응원했던 저에게 정말 고마운 아이죠.
바로 안아서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섣불리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천천히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희수야.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선생님에게 말해도 돼. 그런데 아직 준비가 안되었으면 지금 말하지 않아도 돼.”
희수는 눈물만 뚝뚝 흘릴 뿐 아무 말을 하지 못했어요. 눈물이 멈추지 않고 콧물이 너무 많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갑티슈를 희수 무릎 앞에 올려주었어요.
혹시 보건실에 다른 학생이 갑자기 들어와서 이런 모습을 볼까 봐, 자연스럽게 아이를 파티션으로 가려져있는 침대로 안내했어요. 아이는 자기가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바닥으로 푹 숙이고 제가 안내해 주는 대로 구석으로 갔어요.
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모니터 앞에 앉아 멍하니 있었어요.
마음속에 있는 눈물이 다 쏟아져 나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어요.
잠시 후
“선생님....”
하며 희수가 침대에서 나와 저에게 천천히 걸어왔어요.
눈 주위에 빨갛게 팅팅 부었고, 콧물을 닦느라 딸기코가 되어 있었어요.
“좀 진정됐니?”
“네...”
“그간 우리 희수가 힘든 일이 많았나 봐.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편하게 이야기해도 돼. 희수가 무슨 말을 하든 선생님은 네 편이야.”
“너무 힘들어서 칼로 긁었어요.”
“많이 힘들구나.”
“............”
“선생님한테 지금 다 말하지 않아도 돼. 네가 마음이 편한 게 우선이야.”
“네...저 교실 올라갈게요”
“그래. 상처 잘 아물려면 연고 잘 발라줘야 해. 집에서 하기 힘들면 선생님한테 언제든 와.”
“네. 감사해요.”
어깨가 축 쳐져서 가는 아이의 뒷 모습이 슬프게 느껴졌어요.
아이가 힘들게 입을 열었지만,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걱정되었어요. 다시 보건실에 와서 힘듦을 나눌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 또한 보건쌤이 존재하는 이유 같아요.
제 마음이 전해졌는지,
희수는 이틀 후에 보건실에 다시 왔어요.
똑똑똑.
“선생님....”
“응. 희수 왔구나. 어디 아파서 왔어?”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