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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운 Mar 03. 2023

#4. 가게를 얻는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

20대 직장인이 독립서점을 열기까지

지역상권 및 유동인구 분석은 가게를 구할 때 기초 중의 기초가 아니던가. 지역상권이 활발하며, 유사 점포가 없고 젊은 층 유동인구까지 많다면 100점 중의 100점일 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20점짜리 가게를 구했다. 어쩔 수 없이가 아닌,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서 그곳을 선택했다.


길에서 두 번 꺾어야 들어갈 수 있는 빌라동네, 거기에다가 작은 골목의 모퉁이 가게를 얻었다. 옆가게는 네일숍이고, 치킨집과 중국집 그리고 편의점이 가까이 있다. 이 정도 상권만으로 '활발한' 상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네일숍은 예약제라 낮엔 주로 사람이 없고, 치킨집과 중국집은 배달 전문점이다. 젊은 사람들이 부러 찾아올만한 동네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은 모퉁이 가게라 살짝 꺾인 코너의 유리창이 귀여웠고, 바로 앞에 산이 있어 시야가 시원했으며, 골목이긴 해도 늘 한 두대는 차 댈 여유가 있었고, 동네가 조용했기에 음악을 틀어놓고 책 읽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목이 좋은 가게가 다르리라. 나에겐 조금 더 손님이 많이 올 수 있는 조건 같은 것보다 한 사람이 오더라도 충분히 사유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했고, 그걸 충족시키는 곳이 곧 '목이 좋은' 가게였다.

(심지어 원래는 유리공방이었어서, 유리공방 선생님이 선물이라며 아주 따듯한 느낌의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을 두고 가셨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놓일 자리와 또 엄마와 내가 있을 자리가 충분히 상상되는 곳을 선택하게 되었다. 월세는 35만 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데에 한 달에 35만 원이면 되는 것이다. 35만 원은 두 명이 한 달 내내 카페에 가서 커피와 빵을 먹는 값이고, 요즘 젊은이들은 하나쯤 있는 유명 브랜드의 맨투맨 한 벌 값이며, 갑자기 다시 유행하는 레트로 운동화 세 켤레 값이다.   


난 멋진 카페를 집처럼 사랑하고, 맨투맨은 어쩐지 늘 모자라서 필요하며, 신발은 운동화만 신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을 다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새로 얻은 세계가 소중하고 기뻤다.


빈 가게를 쓸고 닦으며, 넉넉한 마음으로 가구를 골랐다. 여기에선 마음을 놓아버려도 괜찮을 분위기를 더해줄 깊고 진한 가구들 위주로. 실은 인테리어라는 것에 크게 관심 두지 않고 살아왔더랬다. 이사를 자주 하기도 했지만, 집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편하기만 하면 더 이상의 아름다움은 바라지 않고 타협해 버리곤 했으니까. 귀찮은 걸 극도로 싫어하기에 아름다움보다는 늘 편함이 먼저였다.


서점을 꾸리는 데에는 어쩐지 그 귀차니즘이 전혀 발동하지 않았다. 공간 치수를 재고 안에서 봤을 땐 어떨지, 밖에서 봤을 땐 어떨지, 사진으로 봤을 땐 색감이 어떨지, 5cm 높은 곳에 선반을 달지 3cm 내릴지... 공간의 한 뼘 한 뼘을 전부 기꺼이 재가며 게임 속 아바타의 집을 꾸미듯 노는 마음으로 일했다.


반듯하면서 따듯하고, 새것이지만 오랜 세월을 품은듯한 가구들의 자리를 정해주며 이곳에서 우리 재미있게 지내보자고 말했다.


난 사실 나의 독립서점을 가게라 자주 칭하지 않는다. 가게보단 공간이라 부르려 하고 있다.

꼭 무언가를 판매하기 위해선 가꾼 곳이 아닌,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티끌만 한 영감이라도 만들어 내는 그런 공간.


새로운 공간과의 인연이 이제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정리되기 전 공간의 모습, 과연 어떻게 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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