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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운 Mar 23. 2023

#7. 팔로워 한 명에 웃고 또 울고

20대 직장인이 독립서점을 열기까지

오픈 예정일까지 당당하게 인스타그램에 걸어두었으니, 본격 마케팅에 나서야 할 터.


외진 동네에 간판조차 없는 구석탱이 서점은, SNS 마케팅이 선택이 아닌 필수다. SNS 마케팅이라 함은, 회사에서 내가 매일같이 밥벌이를 위해 하고 있는 전문분야 아닌가! 오픈의 두려움에 쭈글쭈글해진 호일같던 마음이 조금 펴진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담당하던 SNS는 '내 새끼'가 아닌 '남의 새끼'였다. 회사의 자본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팔로워를 관리하고, 광고도 진행하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한 번도 설레었던 적이 없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개념이 무색하리만치, 그 SNS의 팔로워 중 그 누구와도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 새끼'는 과연 달랐다, 태어난 준 것만으로도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프로필 사진 한 장, 소개문구 한 줄 걸어두었는데도 앞으로 이 녀석을 잘 돌보고 키워주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만 단위 팔로워가 넘어가는 유명 서점들도 전부 처음으로 콘텐츠를 올렸을 순간이 있었으리라. 그때의 두려움과 설렘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고, 휴대폰을 마주한 얼굴은 모두 같은 표정일 테다. 나는 대단히 멋진 사진 스킬도, 홍보할 만한 많은 친구도 없었다. 내가 미래 팔로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얕은 감성을 곁들인 진정성뿐이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무엇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기에, 아예 우왕좌왕 준비하던 모습부터 보여주고 싶었다.

공간이 정리되기도 전의 난장판인 가게 모습부터, (지금 보면 유치할 정도지만) 처음 만든 굿즈, 가구 달랑 한 개 들어왔을 때 나름대로 배치해 본모습 등...  멋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내가 진심으로 이 과정을 얼마나 즐기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애초에 SNS를 하는 행위를 찌질한 내가 나름대로 나의 제일 쿨해보이는 순간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라 여겼기에, 낯간지러워 잘하지 못했다. 개인 SNS는 그저 카톡은 모르지만 어쨌든 알고는 지낼 정도의 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었을 뿐.


그래서 본격적으로 서점 계정에 콘텐츠를 올릴 땐 정말 하나에 한 시간이 걸렸다. 비슷비슷한 사진 서른 장 중 간신히 서너 장을 골라내고, 크롭도 하고 노출도 줄여보고 대비도 바꿔보고, '느낌'있도록 별 짓을 다했다.

글을 쓸 때면, ~습니다 와 ~해요 중 무엇으로 문장을 끝낼지, 감성과 느끼함을 구분 못하고 오버스럽게 글이 써지진 않았는지 몇 번이고 검열하느라 일고 여덟 줄 쓰는데도 몇 십 분이 걸리고 말았다. 그래도 결코 내가 하지 않을, 할 수 없는 글은 쓰지 않고자 다짐했다. 그게 대단히 멋진 문장이 될지라도.


그렇게 하나, 둘.. 아홉, 열.. 열다섯까지 콘텐츠가 세상에 나왔다. 아직 오픈 전인 서점 계정에도 그 쭈굴함을 가엾이 여긴 성인 같은 분들이 팔로우를 해주셨더랬다. 매일 한 개씩 꾸준히 올리니 나의 사진과 글을 '구독'해주는 분들이 생겼다. 팔로우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뱅킹앱에 돈 들어왔다는 알림처럼 눈에 불을 켜고 팔로우 알림을 확인했다.


와 이 분은 매일 독서기록을 올리시는구나, 와 여기는 이 책을 낸 출판사구나... 주로 책과 관련된 분들이 팔로우를 많이 해주셨다. 책으로 연결되는 마음에 공감대가 생겨서 그랬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그러면서 팔로우해 준 분들은 어떻게 알고 팔로우를 해주셨을까 인사이트를 찾아보기도 하고, 그분들은 무얼 하고 살며 책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그분들의 피드를 구경하기도 했다. 타인의 삶에 진심으로 궁금함이 생기다니, 스스로가 타인 같아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이 보잘것없는 계정을 구독해 주시는 분들이 모이고 모여 100명이 된 날, 나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포효에 가깝게 외쳤다.

"100명이야!!!!!"


나와 공방지기의 친구 각 2명씩을 제외한다면 무려 96명의 타인이 이 계정의 콘텐츠를 꾸준히 보겠노라 서약해 주다니! 1분에 한 번씩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그 기쁨에 얼른 콘텐츠를 하나 올렸는데, 팔로워는 100이라는 완전한 숫자에서 99라는 미결의 숫자로 변해있었다.


그때 느낀 억울함, 서러움, 분노, 인류애 멸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정도다.

"누구야!! 누가 취소한 거야!!" 서글픔을 감추려 더 크게 포효했다.


씩씩대며 벌게져 있는 내 얼굴을 보더니, 짝꿍이 괜찮다고 곧 다시 100명이 될 거라고 장담했다. 나는 그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지만, 이내 다시 100명이 되는 게 아닌가? 마음은 곧 진정됐지만, 반영구적인 상처는 가슴에 남아 오래고 잊히지 않았다(한참 뒤 글을 쓰는 이 순간 까지도...)


훗날 알고 보니 다시 늘어난 그 한 명은, 짝꿍이 급히 만든 가계정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속상해하던 내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나 몰래 벌인 선의의 유령 팔로우였다.


그만큼 진심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이 이 소박한 서점의 어떤 모습에, 이 서툰 글의 어떤 이야기에 끌려 '구독'이라는 정기적인 기다림을 포함하는 행위를 행하여 주었을까.  


+1과 -1의 사이에서 난 울고 또 웃으며, 숫자로 가리워졌던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한번쯤 사유해 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건 꽤 멋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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