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직장인이 독립서점을 열기까지
가게도 있고, 가구도 있고, 채워진 책도 있다.
서점을 위한 모든 게 준비되었는데 한 가지 아직 채워지지 못한 게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용기.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드리자면,
많은 사람들이 게으르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추진력이 부족하다고 알고 있겠지만, 사실은 그게 원인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 나)은 대부분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일정량의 용기가 차오르면 추진하고 행동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용기가 부족한 원인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완벽주의자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종종 남들 앞에 나서야 하는 순간이 오면,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자연스럽게 구석으로 빠지는 사람이었다. (특히 최악은 회식 때 가야 하는 노래방 혹은 회의시간에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해보라는 순간). 나는 단순히 내가 그저 소극적인 사람이겠거니 생각했으나, 지금의 내가 돌이켜보면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대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리라.
나는 무엇이든 '내 마음에 흡족하게' 세팅된 상황을 좋아했다. 출근할 때의 루틴인 라떼 한 잔이 없으면 일은 손에 안 잡히고 마음은 계속 카페로만 향하고 있었고, 보고서는 초안을 보여주는 것은 어째 찜찜한 마음에 완성본만을 보여주고 싶었으며, 퇴근 후에는 반드시 먼저 씻고 넷플릭스에 볼거리까지 결정하는 완벽한 루틴을 행해야만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내 마음에 쏙 들어맞는 흡족한 상황이어야 그다음단계를 진행할 수 있는 그런 류의 '완벽한' 사람이었다(과거형으로 말하니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 습성을 지니고 있다).
서점도 마찬가지. 가게에는 고르고 고른 가구와 책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멋진 독립서점에 비해서는 아직 한참 모자란 느낌. 이 서점은 굿즈류가 풍부한데 나는 아직 굿즈는 입고 못했는데... 이 서점은 북클럽을 꾸준히 운영하는 데 나는 아직 북클럽은 어떻게 운영하는지 모르는데... 와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며 자꾸 다른 유명 독립서점과 나의 공간을 비교하고만 있었다.
100% 준비되었다는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은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흘렀다. 더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방치해 둔 채로. 그러다 보니 이 상황을 후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 일을 왜 벌렸을까 하며, 친구들한테도 이미 다 말해뒀는데 오픈하자마자 문 닫으면 쪽팔리잖아,라고 자책하면서 말이다.
그때 다시 한번 나의 파트너, 공방지기님이 큰 힘이 되었다. 가끔은 무모할 정도의 용기와 배짱을 타고난 사람이기에, 이 마음을 터놓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사실 걱정된다고, 아무도 안 오면 그 창피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렵다고...
그녀는 그 마음을 부정하지도, 꾸짖지도 혹은 달래주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며 동업자이자 한편으론 어머니의 눈빛으로 따듯하게 바라봐주었다.
그러다 내려준 간단명료한 처방
'우선 인스타에 오픈날짜부터 올려, 그럼 모든 게 해결될 거야'
엄마의 말이라면 청개구리처럼 우선은 부정하고 말 텐데, 이번엔 동업자의 말이기에 우선 듣고 보자라고 마음먹었다.
'0월 00일 coming soon'
인스타에 올린 이 한 줄로 인해,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음을 느끼며 묘한 해방감에 마음은 되려 편안해졌다.
저질러놓고 후회하긴 늦었기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저질러야 한다는 걸 실전으로 여실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