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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이v Oct 31. 2022

D.M.Z.

고성 통일전망대를 다녀와서


화창한 가을날이다. 여느 때와 같이 맑은 가을 하늘이 우릴 반기고 있었다. 간밤에 뒤숭숭한 소식이 들려온 뒤라 화창한 가을날이 더욱 낯설게만 느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 하루가 밝아왔다.


오늘 방문한 곳은 강원도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였다. 말로만 듣던 곳을 실제로 방문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가까운 듯하면서도 은근히 북쪽으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비단 물리적 거리의 문제라기 보단 심적 거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단풍잎이 가을의 절정에 있다는 것을 상기해 주었다.


가는 길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특히 동해안을 따라 쭉 곧은 해안도로가 운전자에게 이곳이 북한을 보러 가는 길이 맞나 의구심이 들게 할 만큼 잘 되어 있었다. 가끔씩 보이는 동해안의 절경과 도로변에 울긋불긋 물든 가로수가 분단 현실과 대조되어 실감 나지 않았다. 어느덧 목적지 근처에 오자 이곳이 민간인 통제 구역인 관계로 관문 소를 통과하기 위해서 개인정보 및 방문자 일지를 기록해야 한다는 이정표가 나왔다. 비로소 대한민국의 끝자락에 왔다는 것이 슬슬 와닿기 시작했다. 이동한 곳은 벌써 관광버스를 포함하여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내에서 간단히 검문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일종의 신고서 같은 것을 작성해야 했다. 또한 약간의 동영상 교육도 받아야 한다고 해서 마치 과거 훈련소 처음 입소할 때 그 통제당한다는 느낌이 조금 났다. 물론, 우리 아이들을 포함하여 같은 목적지를 공유하는 다양한 남녀노소 사람들이 이곳이 관광지라는 점을 수시로 일깨워주고 있긴 했다.


입장권 구매와 간단한 신고서 작성 후 동영상 교육을 받으러 갔다. 딱딱한 의자와 한눈에 보아도 오래된 강당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일부 어른들은 이 교육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서둘러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동영상 교육을 받았다. 같이 따라간 아이들도 낯선 공간과 시간이 마냥 신기한 듯 호기심을 보였다. 비록 길지 않은 동영상이었지만, 생각보다 고성군의 관광지 안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과거 90년대 학교에서 듣던 통일 안보 교육이 주로 나올 줄 알았는데, 몇 번의 정권이 바뀌면서 이 또한 관광 위주로 많이 수정된 느낌이었다. 어쩌면 분단과 번영이라는 대한민국의 모순되고도 복잡한 속내가 동영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듯했다.


차를 몰고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드. 디. 어.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해서 통일전망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D' 자 건물 외에 각종 박물관 시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찬란할 만큼 아름다운 동해바다의 전경이 우측에 펄쳐져 있었다. 이곳이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자연경관이 아름다웠다. 신축 건물이라 그런지 60년 이상의 분단의 아픔이 오히려 추상적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키우는 것으로 생각되는 고양이와 개에 빠져서 마치 여느 동물원처럼 즐거워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북측 땅은 이곳 남쪽 고성군과 큰 차이 없이 보였다. 금강산이라고 멀리 보였으나, 태백산맥의 여느 산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고성군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의 분단도의 분단 군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고성군 주민 중 70% 이상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고, 이미 긴 세월 동안 이산가족 비율이 감소했다는 것이 두 번째로 마음이 아팠다. 이산가족이 감소한 이유가 그들이 다시 만나서가 아님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멀리 북측 초소 및 군사시설이라고 안내되어있었지만 역시나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남측에서 핀 단풍과 북측 땅에 핀 단풍은 똑같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뭔가 북한 땅은 여기와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관을 들렀다. 역사 교과서로만 배우던 1950년에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을 여러 사진 자료로 설명해 둔 곳이었다. 각종 사진들은 한국전쟁이 먼 조상들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한반도의 기적이라 할 만큼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이기에 전쟁 당시의 모습이 마치 다른 후진국에서 벌어진 것 같았다.


우리는 가끔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나, 연이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역시 어느덧 또 다른 일상이 된 듯하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마치 세계사에서 보는듯한 진흙탕 전투를 하고 있다. 이 와중에 또 다른 화약고인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네 일상이 너무나 평온하다는 것이 오히려 섬뜩하다. 항상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살 수는 없지만, 분단국가이며 우리에게도 불행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여러 가슴 아픈 사진들이 있었지만, 특히나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을 비롯하여 국군의 전사자 유해 발굴하는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젖은 참호에서 뒤엉켜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를 전쟁 하면서, 자신들의 이런 고생을 50~60여 년 뒤의 자손들이 어떻게 생각하길 원했을까. 백골은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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