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 따뜻한 말 한마디
호의(好意)
: 친절한 마음씨. 또는 좋게 생각하여 주는 마음.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최근에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푼 적이 있는가?
질문을 바꿔보겠다.
최근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푼 적이 있는가?
내가 어린 시절은 호의가 넘쳐나는 세상이었던 것 같다.
곤란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쉽게 도움의 손을 건넬 수 있는 세상
그런 손길을 감사히 받을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그 경험을 또 다른 이에게 베푸는 그런 세상
순수한 세상
그랬던 세상이 어느샌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무관심해지고, 굳이 내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 하는 생각.
순수했던 친절과 호의는 점차 사라지고, 어떤 다른 의도나 범죄를 의심하게 된다.
그런 오해가 싫어 더 이상 친절을, 호의를 베풀지 않게 된다.
나 또한 그러했다.
언젠가 고해성사를 보고 '타인을 위해 선행을 한번 해라.'는 보속*을 받은 적이 있다.
(*보속 : 하느님과 이웃에게 끼친 해를 보상하고 속죄하는 것. 한국에서는 한자어로 도울 補, 속죄할 贖를 사용한다. 가톨릭 교회는 사제를 통하여 고해성사를 한 신자에게 보속을 정해준다. / 출처 : 가톨릭신문)
비록 보속을 위해 한 선행이었지만, 참 기분이 좋았다.
이때를 계기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용기 내어 조금씩 손을 내밀어 보기로 다짐했다.
외국 어느 나라에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종종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한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권상우 님은 부메랑을 던지며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고 외친다.
역사처럼, 유행처럼 그리고 사랑처럼.
언젠가 다시 친절과 호의가 가득한 순수한 세상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마도 Henry는 모를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가 그 당시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얼마나 따뜻했는지.
생각해 보니 이번 여행에서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은 것이 처음이었다.
의외로 여행을 하면서 그곳 현지인과 알고 지내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 여행지에 온 여행자들끼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서로 친해지고 정보교환도 이루어지지만,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그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메데진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었다.
그것과 대비되어 콜롬비아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도시의 야경은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했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역시나 메데진의 공항도 시내와는 꽤나 떨어져 있다.
만약 Henry를 만나지 못했다면, Henry가 제의를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숙소를 구했을까 생각하니 꽤나 아찔했다.
아마 저 야경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오늘 밤 내가 머물 곳이 있기 때문이리라.
(여러분, 그래서 숙소가 중요한 것입니다.)
차로 얼마나 이동했을까?
드디어 도착했다.
밤늦게 찾아간 이방인으로서의 송구스러움과 어색함을 온몸에 두르고 Henry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도착 시간을 미리 전해 들었는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 코코에서 본 듯한 인상 좋은 라틴계의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먼저 나를 맞아주셨다. 이분들이 Henry의 장인 장모이리라.
그 뒤에 피부가 뽀얀 인형 같은 작은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나왔다.
Henry의 아내 Sandra와 딸 Sara다.
감사하게도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 없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특히 Sandra는 마치 자신의 조카를 맞이하는 양 기쁘게 받아들여 주었다.
Sara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다른 인종의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Sandra의 뒤에 숨어서 나를 계속 쳐다본다. (귀여워ㅎ)
아, 그리고 나를 맞이해 준 사람 중에 갓 성인이 된 정도로 보이는 Yesenia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아직도 이 아이와 Henry네 가족의 관계를 잘 모르겠다.(처음엔 조카 정도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여분의 방이 있다던 Henry네 집은(정확하게는 Henry네 처갓집이지만, 편의상 Henry네 집이라 하겠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구조를 하고 있었다.
Henry네 가족들을 처음 만난 그곳은 평수가 엄청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거실과 주방, 두어 개의 방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놀라운 건 그 계단 위로 4개의 층이 더 있는 5층 건물이라는 것.(다만 2층부터는 방의 넓이가 1층보다는 조금 작은 듯하다.)
Sandra는 나를 4층의 한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와이파이도 된다.
간단하게 짐을 풀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우리를 위한 저녁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Henry를 제외하곤 누구도 영어를 할 줄 몰랐기에, 주로 Henry와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Henry가 중간에서 통역을 맡아주었다.
공용어의 부재가 있으면 어떠한가? 우리에게는 바디랭귀지가 있고, 핸드폰 번역기도 있다.
이곳에선 나를 숨길 필요도, 어떠한 가면을 쓸 필요도 없다.
진솔한 나의 모습 그대로를 상대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표정으로, 분위기로, 느낌으로 통하는 것이 있고 친해질 수 있다.
따뜻하고 편안한 보금자리에서, 맛있는 식사가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것을 알게 해 준 저녁시간이다.
저녁을 먹던 중 Henry는 나에게 또 다른 제안을 해왔다.
"kyo, 나는 이번 프로젝트가 끝이 나서 당분간 쉬어. 우린 네가 메데진에 있는 동안 이곳을 너의 집이라 생각하고 계속 머물러줬으면 좋겠어. 나와 Sandra, Sara가 메데진을 안내해 줄게."
...
그날 먹은 저녁은 아주 조금 짠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