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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Jul 09. 2024

40. 나는 더 이상 여행을 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콜롬비아 | 인생그래프, 인생의 가장 낮은 곳에서 2

 '아, 인생 밑바닥이란 곳이 여기구나... 더 이상 추락할 곳이 나에겐 없구나..'


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버스에서 잠든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해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알 수없지만,

그(녀)는 나에게 생애 첫 입원과 죽음의 문턱이라는 경의롭고 아름다운 일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하나도 안 고맙다 이 샹넘아)


척추를 한오백번 접었다 피고 천 번을 씹어 죽여도 시원찮을 강도 놈은 내 카메라 2개와 핸드폰 노트북 등 전기가 흐르는 모든 것과 현금 등을 가져갔고-

(후.. 그때 생각을 하니까 또 열이 받아서 잠시 폭주했다. 죄송.)
내 수중엔 카드와 여권만이 남아있었다.

(ㅎ... 이게 그 유명한 무소유라는 건가..?)


다 털리고 개털이 된 배낭을 허망하게 보고 있는데,

상할 대로 상해서 너덜너덜한 내 마음과는 달리 나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꽤 호전되어 보였는지 의사는 이제 퇴원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죽다 살아났다는데, 깨어보니 개털이었습니다.라는 충격적인 엔딩에(이 드라마 작가 나와!) 멍해져 있던 나는 '퇴원'이라는 말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퇴원'은 다른 말로 '수납'이라 읽을 수 있다.


의료보험이 잘 되어있어 병원비가 대체적으로 저렴한 한국에 비해,

외국은 병원비가 비싼 곳이 많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내가 이 병원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구급차 사용료(?)도 내야 할 수도 있다.


걱정이 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치료비를 가늠할 수조차 없었고, 개털이 된 지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집 생각이 간절하던 그때,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어시스트 카드!'


어시스트 카드에 보험 가입을 하면 여러 가지를 보내주는데, 그중 하나가 명함이었다.

나라별 어시스트 카드 지사 연락처가 적혀있는 명함인데, 나는 이것을 여행 전에 지갑에 넣어뒀었다.

다행히 이 강도 놈은 지갑 안에 현금만 손을 댔지 나머지엔 관심이 없었다.


전화 한 통 써도 되냐고 묻고, 나는 어시스트 카드 콜센터로 전화를 했다.

영어로 몇 마디 한국 담당자를 바꿔달라 했더니, 곧이어 한국어가 가능한 안내원으로 바뀌었다.


나는 상황설명을 했다.

(야간버스에서 강도를 만나 눈 떠 보니 병원이었고, 개털이 되었습니다.)

상황을 전해 들은 담당자는 병원 관계자를 바꿔달라고 했다.

잠시 통화를 하는 듯하더니, 병원 수납 담당자는 다시 나에게 전화를 돌려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병원비 지불 및 기타 사항은 본인들이 처리할 테니 그대로 퇴원해도 된다는 말이 들려왔다.


고마워요 어시스트 카드♡

(이 글은 어시스트카드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싶어 작성한 후기입니다.ㅎ / 5. 아무튼, 예방접종과 보험은 중요한 것이다. 中)

 



생판 모르는 곳에서 죽다 살아났다.

'운전을 하다 과실로 인해 아찔하게 사고가 크게 날뻔했다.'와는 수준이 다른 이야기다.


어린 외국인 남자가 자기네 나라에서 강도를 만나 다 털리고 죽다 살아났다.

그게 안쓰러워 보였는지, 병원 스태프 중 한 명이 나를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도움으로 버스터미널로 왔다.

내가 탔던 버스 회사의 카운터에 갔더니, 다행히 트렁크에 놓아두었던 내 짐이 있었다.

짐을 찾았다.

나를 터미널로 데려다준 그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헤어졌다.

버스터미널에서 나왔다.

어느덧 시간은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 가고 있다.

일단은 쉬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보통이었으면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저렴한 숙소를 찾아 들어갔겠지만, 그때의 나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아무 호텔로 들어갔다.

(그래도 그 와중에 깎아달라 했고, 할인도 받았다 ㅎ)


배낭을 짊어매고 방으로 들어왔다.

문을 걸어 잠근다.

배낭을 한편에 세워두고 자리에 앉았다.

아니, 주저앉았다. 털썩.

하필 앉는다는 것이 벽과 가까운 곳, 벽을 바라보고 앉았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


넋 나간 사람처럼 벽만 바라보고 있는지 어느덧 두 시간이란 시간이 흘렀다.

저녁때가 되었지만 그다지 밥을 먹고 싶진 않았다.

그동안 하릴없이 벽에 벽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이 돌아왔을 뿐, 바스러진 멘털이 회복된 건 아니었다.


세계일주를 하고 오겠다고 호기롭게 집을 떠나온 것이 불과 3개월 전이었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을 이겨내고 남미로 넘어왔다.

이 넓은 대륙의 첫 번째 나라에서 나는 다음 도시를, 다음 나라를 어디로 할까 고민해야 했는데,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이승과 저승이라는 곳의 경계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 망설이다 겨우 이승으로 돌아왔다.


이 넓은 대륙에 내가 아는 사람이 없고,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런 곳에서 나는 죽을 뻔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자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내가 이곳에서 죽어도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으면 누가 실종신고를 할까?

국내가 아니라 해외인데, 실종신고가 될까?

내가 콜롬비아에 왔다고 누구한테 알렸던가?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우리 부모님과 가족과 친구들이 알면 어떻게 될까?

나의 시신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나 있을까?

모든 것이 무서웠다.

너무 겁이 나서, 너무 무서워서



나는 더 이상 여행을 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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