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필코 오늘은 늦잠을 자보겠다며 결의하며 어젯밤 잠을 청했다. 역시나 창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에 내 잠을 내어주고는 옆에 누운 사내를 본다. 혹시나 내가 깬 빛에 잠이 깰까 이불 한 쪽을 들어 그에게 음영이 드리우게 했다. 이불자락을 들면서도 그 소리에 깨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내가 퇴근 후 학교에 간 사이에 그는 장을 봐왔다. 창고형 대형마트에 우연히 들르게 된 그는 꽤나 대량의 장을 봤다. 늘 합리적인 소비를 하던 그가 13만원치나 물건을 샀다기에 의아했는데, 구입내역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애정이 묻어나는 품목들이라 그 금액에 수긍을 하게 만들었다. 그 중에 메이플 시럽과 호두가 섞인 크림치즈와 블루베리맛, 어니언맛 두 종류의 베이글을 오늘 조식으로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않아 손님용으로 쟁여뒀던 캡슐커피까지 내려 꽤나 낭만적인 아침식사를 완성했다.
식사를 마치고 익숙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주방을 정리하고 거실 한 켠에 놓인 스피커에 노래를 틀어놓았다. 볕을 맞으며 누워있노라면 잠들기 딱 좋은 쇼파에 우리 둘은 엉겨누웠다. 이야기를 나누다 장난도 치다가 결국 그는 코골이에 돌입했다. 이 평화로움에 어쩔 줄 모르던 나는 갑자기 읽다만 알랭 드 보통의 책이 생각이 났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명작 중에 명작.
책을 읽는데 자꾸 눈 앞에 놓인 평화가 몰입을 방해한다. 태어나서 이런 평온함이 처음이라 낯설면서도 고마워서 요즘은 이 상황에 몸을 맡기고 우리의 표현으로 '미친 사랑'을 하는 중이다.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이러려고 그랬구나'하고 느끼게 만든다. 이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자꾸만 이전의 일들과 비교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항상 이기는 쪽은 현재이다. 사랑이란 게 뭔가 싶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머릿속에 잡념이 없는 요즘이라 그저 행복에 겹다. 오늘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평소보다 몇 장은 더 읽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