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다가 문득 그에게 느낀 따뜻함이라던가 다정함이라던가 하는 기분 좋은 감정들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졌다. 이 사람을 만나기 전에도, 만나고 나서도 왜 사랑에 빠졌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나는 어떤 부분들 때문에 늪처럼 손 쓸 새도 없이 빠져드는 걸까.
우습게도 가장 먼저 떠올린 이유는 '치실을 꼬박꼬박하는 모습이 이쁘다'나 '주방에 들어오기를 주저하지않는다'였다. 이런 세세한 부분보다도 사실 과거와의 명확한 대비가 이끌림을 느끼게 만들지 않았을까도 싶다. 과거의 연애들에서 내가 아쉽다고 느꼈던 부분들을 말 한 마디 언급없이도 채워주는 지금의 그 사람이라 마음 편히 스며드는 중이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는 없어도 내 글 단어마다 새어나오지 않을까 싶어 괜히 간지럽다.
윗 문단에서도 썼다시피 나는 이 사람의 작은 부분들이 좋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거실에서 EDM 노래를 틀고 느끼한 표정으로 내 앞에서 화려한 춤사위를 뽐내는 그를 볼 때, 내가 요리를 한 날이면 어떻게든 지지않고 설거지를 하려하는 모습, 혼자 엉덩이를 씰룩대다 눈이 마주치면 배시시 웃으며 도망갈 때, 내내 바보같다가도 현실적인 상황에 닥치면 야무지게 해결해나가는 모습, 약통에 먹을 영양제를 챙겨다니는 모습, 세차가 취미라며 두, 세시간은 세차만 하는 그를 볼 때, 함께 2만보를 걷던 날 상처가 난 내 발을 보고 짓던 웃픈 표정, 1도짜리 맥주를 소주잔에 홀짝이다 벌겋게 익은 얼굴로 같이 한 잔 하니 좋다며 웃던 얼굴..
기억을 되짚을수록 정말 사소하게 끊임없이 행복했었다. 또 한 번 느꼈다. 우리 둘의 대화에서도 지금처럼만 평생 살고싶다는 얘기를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우리는 누릴 줄 아는 것 같다. 그 또한 감사할 뿐이다.
로또명당에서 인생역전 해보자며 호기롭게 들어서서는 로또 한 장에 스피또 복권 여러 장을 샀었다. 로또는 경험이 있지만 스피또 복권은 긁으면 땡이지 않나, 사실 기대가 없었다. 나에게 긁어보라며 동전을 주길래 무심하게 벅벅 복권 전면을 긁었다.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복권을 긁는지 알려주겠다 한다. 다음 장의 복권을 앞에 내려놓고 그는 MC를 자처했다. 어느 주말 오후에 TV를 틀면 나올 것 같은 사람처럼 쫄깃쫄깃한 진행으로 단 돈 천원짜리의 복권으로 5분을 잡아먹었다. 호오, 복권은 이렇게 긁는 거구나. 그렇게 우리는 복권방에 들어서서 30분 내내 웃고 긁다 나왔다. 5천원의 행복. 이런 일상이 계속되길 바라다가도 그 시간이 정지하길 바라는 모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