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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Sep 20. 2024

나의 오피스대디의 편지

나에게는 꽤 많은 수의 오피스대디들이 있다.

가는 곳마다 아빠를 양산해왔다, 본의 아니게.

아버지가 없이 자란 것도 아닌데 나는 항상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요했나보다. 그 아버지들 사이에는 아버지의 탈을 쓴 쓰레기도 있었고, 정말 내 아버지이길 바랐던 따뜻한 사람도 있었다.


오늘은 new 오피스대디의 편지를 받고 복잡미묘한 감정에 글을 쓴다.

그 분은 아주 절친한 사이의 회사 전 근무부서 상사셨고, 평소 호칭은 '차장님~'이었다.

호칭이 상관없을 정도로 아주 친밀한 사이였기에 이런 일 저런 일..(물론 차장님께서 나로부터 나의 이야기를 주로 꺼내어가시는 편이긴 하지만) 우리 사이에 충분히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가족 이야기는 물론, 내 연애 이야기, 평소 드는 생각과 감정 등등 마치 내 정신의학과 주치의처럼 차장님은 휴게실 쇼파에 마주앉으면 내 속에 있는 모든 찌꺼기들을 긁어내시기 바빴다.

그 휴게실을 나설 때면 늘 시원하고 개운한 마음이었다.


내가 두번째 결혼을 결심하고 그 사실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것 역시 이 차장님과 관련이 있었다.

이 분은 항상 나를 걱정하고 염려한다.

위태로운 아이를 보듯 노심초사하는 것, 하지만 내가 알기 전에 그것을 표정 뒤로 숨기려는 노력까지 내 눈엔 보였다.

나는 그에게 늘 걱정이었기에 나를 떠올리면 걱정이 먼저가 아니길 하는 바람과 그저 잘해나가는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욕심이었다.

내 파혼 후 적나라한 방황을 지켜본 분이라 내 결정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느낄 것이 분명했기에 물리적인 시간만이라도 늦춰보려 했다.

하지만 결혼사실을 숨긴다고, 늦춘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장문의 편지를 손으로 꾹꾹 담고 떨리는 마음까지 함께 포장한 작은 박스를 들고 찾아갔었다.

근무시간에 불쑥 사전 연락도 없이 찾아간 것이라 내심 자리에 안 계시길 몇 번이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대면할 기회를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신은 내가 마주하길 원했나보다.

어디선가 흘러오는 바람에 소식을 들으신건지 의미심장하고도 쌉쌀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이미 나는 그 표정을 본 순간부터 무너져버렸지만 내 임무는 꿋꿋이 수행했다.


"소식 들으셨지요..?"


선수치듯 얘기한 멘트에 아닌 척을 하셨다.

이 또한 배려로 느꼈다.

나한테 말할 기회를 주는 듯한 느낌.


그렇게 물꼬를 튼 대화는 자연히 흘러갔다.

이상하게도 대화는 늘 해왔던 것이라 그런지 부드럽기만 한데 마음 한 켠이 아려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막을 새 없이 뿅하고 나와버린 눈물에 대화 중간중간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내가 당신의 걱정이라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다는 말이 매정하게 들렸다.

그냥 그랬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내가 근무하는 회사로 복귀했다.


1주일이 지난 오늘, 갑작스레 회사 메신저로 나에게 답장의 편지를 주셨다.

어제 주려고 했는데 개인사정으로 조퇴를 하는 바람에 지금 전하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며.hwpx


좋은 말을 해주시려나보다, 했다.

방심한 내 탓이 크다.

첫 줄은 이러했다.


사랑하는 딸에게


평소 이름을 불러주는 다정한 말투의 차장님인지라 내용이 다정한 것이야 예상했지만 ..

딸이라고 하는 건 좀 반칙이었다.

마지막 줄까지 반칙은 끝날 줄 몰랐다.


- 딸바보 아빠가 -


사무실에서 한글 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남들 눈을 피해 읽다가 결국 중간쯤까지 갔을 때 울컥하는 마음이 멈출 줄을 몰라 옥외 흡연장을 다녀왔다.

사실 만감이 교차했다.

그 단어를 쓰기까지 차장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편지를 쓰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이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이 응원을 받아도 되는 걸까.

나 잘할 수 있는 걸까.

...


몇 방울의 감정을 쏟고나서야 편지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한참을 답하지 못하고 마음이 혼란했다.

몇 분쯤 흘렀을까.

결심이 섰다.

내가 행복해지면 되는 것이라, 내가 꼭 행복하고 말겠다고.

이 사랑, 축하, 응원 모두 받고 더이상 걱정이 아니면 되지 않겠냐고.


더욱 과하게 답장을 했다.


" 사랑해용 아빠 ! ❤️ "


평소에도 다나까 말투를 쓰는 나로서는 꽤 오버한 모양새인데, 돌아오는 답은 스스럼없는 아빠의 사랑이었다.


이렇게 나는 한 명의 새로운 오피스대디가 생겼다.

행복하단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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