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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Dec 08. 2024

결혼이라는 건 뭘까

나는 사람이 태어나면 죽음을 경험하듯 당연하게 결혼, 육아..와 같은 것들도 자연히 겪겠다 싶었다. 내 직장은 자리잡았고 내 형편도 나아질듯 싶고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마음의 타이밍이 맞으면 그렇게 해가면 되겠거니 싶었다. 한 번 결혼이란 걸 하면 헤어짐 따위는 없을 거라 자만했었다.


나는 '금사빠'다. 이렇다할 사랑을 받아본 적, 아니 받아는 봤겠지만 가져본 적이 없어서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라 내 주변 지인들에게서 오는 사랑을 양껏 먹고도 목이 말라 지독한 내 편을 만들고 싶었다. 늘 그런 성향은 급체가 났고 그 후폭풍은 오롯이 내 감당이란 걸 배워가던 중이다. 금사빠 성향에도 바람끼가 없으면 상처는 모두 내 것이다. 사랑에 빠지고난 후 그 사랑의 메아리가 안 느껴지면 내 속만 쓰리기 때문에.


모두들 말리던 결혼이었다. 100이면 100. 나는 눈물로, 읍소로 "잘해내겠습니다"하는 당찬 의지의 말로 없는 가족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허락을 구했다. 내 주변엔 참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 오빠들이 있는데 그 분들을 모두 덮어두고서라도 해야만 하는 결혼이었다. 남들이 흔히 보는 경제력, 직장, 학벌은 과감히 보지않은 블라인드 전형의 결혼이었다.


나에게 구애의 행동을 보이던 그 눈빛을 믿었고, 그 말을 믿었고, 나에게 보이는 그의 시간들을 믿었을 뿐이다. 전여자친구에게 상처받은 시간들을 위로해주면서 나도 몰래 연민을 느낀건지 감히 나는 그를 행복하게 해주고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뭐라고. 결국 일방적인 마음이라 그랬던 걸까. 그 마음을 보여준 지 5개월? 그는 전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그 비밀을 지켜달라면서.


그를 욕하고 싶은 마음보다도 그간을 돌아보고자 쓰는 글임에도 자꾸만 화가 난다. 나를 문제아처럼 몰아가는 그를 떨쳐버리는 게 맞는데도 내 안엔 믿지도 않는 마리아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낀다. 화와 마리아 , 어울리지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타고난 바람끼를 가진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로 멈출 수 있을 줄 알았나보다. 그게 내로남불로 작용할 줄도 모르고. 모든 여자들에게 친절한 것은 나에게 불안으로 다가왔다. 그건 내 내면의 문제이니 내가 풀어갈 숙제라 생각했다. 안 듣던 불경을 들으며 명상도 하고, 수많은 유튜브로 사랑을 배웠다. 그렇게 티내지않고 은밀히 불안했다. 그러나 그는 보란듯이 내 앞에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친절을 베풀었다. 쿨한 척이 더이상 나에게 필요치않다고 느껴졌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오빠. 다른 여자들하고 너무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역시나, 화로 응수하는 그였다. 불편한 건 그 때 그 때 얘기하라는 그는 조금이라도 그가 불편한 말을 하면 나에게 화를 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말문을 닫은 것도 있지만 그래, 그것도 내 잘못이겠지. 이 말 한 마디는 결국 그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원인이 되었다.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한 채로.


'화'라고 하니 생각나는 상황이 있다. 내가 아끼는 텀블러를 던져 그 강한 텀블러가 찌그러진 그 때. 내가 프로포즈를 먼저 한 게 잘못인걸까. 인생에 한 번 뿐이라는 결혼을 앞두고 "별 따준다는 말은 듣고 결혼할 걸 그랬나."하는 말에 그는 또 화를 냈다. 물질적으로 그에게 바란 거 하나 없는 나에게 그는 뭘 원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내 텀블러는 찌그러졌고 결국 사과 한 마디 못 듣고 내 텀블러는 내 돈으로 다시 샀다. 그 때 차라리 뭐라도 얘기해서 받아냈어야 맞는 건가. 결론적으로는 받은 거 하나 없이 속만 쓰린 채로 나는 또 이혼인건가. 그저 예쁜 말 한 마디 듣고싶은 내가 욕심인건가. 내게 받은 프로포즈는 동네방네 자랑하며 "나 프로포즈 받은 거 얘기하면 다 부럽대."라던 그가 새삼 부러워진다. 그 때는 그 얘기를 들으며 그가 행복했음 됐다고 생각하던 내 자신이 가엾다.


쓰다보니 또 현타가 온다. 내 얼굴에 침뱉는 것 같아서. 잘못한 상황에 대해 사과 한 번 못 받고 끝나는 이 결혼이 참 고까워서. 브런치에는 수많은 결혼/이혼 스토리가 있더라만은, 내가 거기 동참을 하는 건 또 다른 문제 같아서. 또 많은 변화를 몸소 겪어야 하는 이 상황이 막막해서. 파혼에 이어 이혼이라 하면 모든 게 다 내 문제인 것만 같아서. 꼬리표 하나는 튼튼하게 달린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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