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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Jan 24. 2023

내 안에 감춰놨던 동은이를 꺼내보며

더 글로리를 보고 깨어난 옛 기억들


"그리운 연진에게"




 학폭 피해자라면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고,

 그리워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불현듯 그리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다.


<더 글로리>를 보고 브런치에 나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써도 괜찮을까 여러 번 고민했다. 혹시 가해자였던 사람들이 보게 될까, 또는 이 글 때문에  곁에 남음 람을 잃게 될까 봐 글을 썼다 지웠다.


하지만 내 브런치 첫 글부터 소재가 조울증이었으니 이런 글 하나쯤 더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드라마의 총 리뷰 쓰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기억난 나의 얘기를 조금 써보려 한다. 







간단히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난 초등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 짧게 한 번 왕따를 당했다. 초등학교 때는 집이 식당을 한다는 이유로 3년 가까이 왕따를 당했고, 고등학교 때는 드라마처럼 먼저 왕따를 당하던 아이(그땐 나도 방관자였으니 친구라고 부르기 미안하다.)가 전학을 가버리자 나로 타깃이 바뀌었다.


아, 물론 나는 나를 학폭 피해자라고 하지만 고등학교땐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서 심리적으로 힘든 것이 많았고 신체적 폭력은 없었다. 아마 다른 피해자들보단 형편 나았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는 괴롭힘도 유치한 수준이었고, 주동자가 중간에 전학을 갔고, 나도 나중에 전학을 가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열받는 수준(?)의 왕따였다. (책상을 낙서로 채우고, 우유를 붓고 기타 등등 그런 유치한 정도)



학폭 트라우마는 기간도 기간이지만 수치심과 굴욕감을 얼마나 주냐에 따라 피해자에 세 트라우마를 주기 쉬운데 고등학교 때가 그랬다. 내가 왕따를 당한 기간은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됐으려나? 그래도 동안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왕따가 된 첫날의 교실 냄새까지 아직도 기억한다. 하루아침에 전교생이 나를 모른 척했고, 바로 전날 함께 떡볶이를 먹던 친구들은 대놓고 가까이 오지 말라며 물건을 던지고 욕을 했다.  그래서 속이 상해 눈물이 나서 그냥 엎드려 있으면 한 선생님은 인신공격에 가가운 욕을 하셨다.(과학이었나 사회 쪽 담당과목이었는데 왕따피해자가 생기면 그런 식으로 동조해서 같이 괴롭히던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불행하게 살고 계셨으면 좋겠다.)


초등학교때 당한 괴롭힘이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얼추 어땠을지 자세히 얘기하기 않아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달 넘게 그렇게 시달리니 잠을 못 잤고 밥도 거르기 일쑤였다. 두통을 달고 살다가 동은처럼 보건실에 이틀 내내 찾아가는 바람에 보건선생님께 추궁당하던 끝에 왕따 당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화가 잔뜩 난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곧장 우리 학년 교무실로 찾아가 부장선생님한테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연락을 받고 오셨고,  난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더 글로리>에서 어른이 된 동은이 보건선생님을 카페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옛날 기억이 났다.


'지금 그때 그 선생님을 만난다면 난 어떤 대화를 할까?'


당시 찍어둔 상처사진을 건네고 동은에게  이겼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보건선생님의 말은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때 트라우마에게 이겼으면 좋겠다는 말로 들렸다.  나 말고도 그런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한번 추측해 본다.

그 말이 나올 때 같이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엄청 노력했다.



 아무튼 부모님이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신 이후로 나는 1년 동안 청소년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되었고, 학교에 가기 싫어서 수면제를 모았다가 한 번에 먹고 긴 잠을 자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학교는 담임을 통해 우리 반 학생들에게 왕따는 나쁜 것이라는 짧은 훈계와  '내가 왜 왕따를 당했나'라는 '나의 문제점'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야자 시간에 몰래 가서 전학수속을 받는 데, 담임이 말했다.


" 네가 왕따 당한 이유를 물어봤다. 반장으로서 결단이 없고 우유부단했다더라. 그리고 체육시간에 땀을 많이 흘리는 게 싫었대. 땀 많이 흘리면 병원 좀 가보지 그랬어."


그땐 그 말을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었나 싶다. 지금 성격이었으면 교무실 다 뒤집어엎고도 행패란 행패는 다 부리면서 그게 말이냐며 담임 멱살을 잡았을 텐데ㅎ (오해할까 봐 하는 말인데 나는 땀이 정말 없다;; 액취증은 더더욱)


 

그리고 드라마처럼 왕따를 주도한 가해학생들은 지역 유지의 자제, 선생님들의 지인의 자녀들이라 대학에 가야 하니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그대로 학교에 다녔다. 그냥 피해자인 내가 전학을 가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당시에는 학폭위가 생기기 전이고 학폭문제를 지금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였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얘기에 따르면 내가 그 애들보단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점은 다행이다.  








<더 글로리>를 보면서 나름 통쾌했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밤이 되면 나에 대해 수군대던 교복 입은 여자애들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데, 그럴 때마다 복수는 상상을 했었다.


 상상 중 일부는 드라마 속에서 살아났다.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동은을 보면  안에 나를 이입하게 되고 동은 연진에게 보내는 독백  하나하나에 공감의 감탄을 보낸다.




내 소원이 뭐였는 줄 아니?

나도 언젠가는

너의 이름을 잊고

너의 얼굴을 잊고

어디선가 널 다시 만났을 때

누구더라?

제발 너를 기억조차 못하길


특히 이 대사에 공감이 갔다.

전학을 가서 다시 친구를 사귀고, 대학을 가고, 사회인이 된 지금도 가해자들의 이름을 잊어본 적 없다. 잊히지 않는다. 30대가 된 지금도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전부 기억한다.


학폭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한 사람의 가슴의 흉터를 남긴다. 동은의 몸의 흉터는 그걸 형상화한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은 그래도 학폭위도 생기고 학폭 전담 변호사도 생겼지만 신문기사를 보면 하면 심해졌지 나아진 게 있을까 싶다.  성매매를 시키고, 피떡이 되도록 구타를 하고...



강사 일을 할 때도 나는 일진(?)을 하는 원생이 학폭에 관련되면 가차 없이 행동했었다. 경험상 아이들은 죄책감을 잘 모른다. 친구를 때려서 병원에 입원시켜도 자기가 더 억울하다 말한다.

"맞는 애는 맞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말한다. 내가 왕따당한 이유가 합리적이었을까  난 모르겠다.


 이이들이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정도를 걷게 만드는 것이 어른들의 몫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글로리>는 더 이상의 연진, 사라, 재진, 명오 같은 아이들을 만들지 말자고 말한다.


(피해자로서 파트 2에서 더 큰 사이다가 있었으면 좋겠다. )



오늘도 기도해 본다.

오늘밤에는 가슴에 남은 화상자국에 잠 못 이루는 동은이 없기를. 그리고 피눈물을 흘리던 피해자들의 기도를 듣고 개빡친하느님 대신해서 벌을 내려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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