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메간 Dec 25. 2022

믹스견의 다른 말은 러블리

시고르자브종을 키우면 가끔 서운해집니다

"귀엽다! 얘는 종이 뭐예요?"


우리 강아지를 데리고 공원에 산책을 데리고 나가거나 카페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해는 간다. 비숑이나 푸들, 포메라니안처럼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견종이 아니니 말이다.



우리 개는 흔히들 말하는 시고르자브종. 시골 잡종이다. 그것도 시골 바닷가에서 구조된 들개가 바위틈에 낳아 키우던 새끼 중 하나다. 엄마는 삽살개의 피가 섞인 걸로 추정되나 아빠는 바닷가 동네에 묶여사는 바둑이 중에 하나로 생각되는 데 두 강아지가 골고루 섞여서 다리는 짤막하고 검은 털에 흰털이 군데군데 나있다. 그래서 털이 길었을 때는 스코티쉬테리어가 아니냐는 질문을 듣고, 털을 밀면 슈나우저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에요. 그냥 믹스 강아지예요."라고 답한다. 그러면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아~ 그래요?"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와 "아, 믹스? 잡종?"이라고  방금까지 관심을 보이다가 믹스란 말에 시큰둥하게 인사도 없이 휙 지나가버리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누구도 기분 나쁠 일도 없고 오히려 다에 다시 만나면 강아지도 견주도 서로 아는 척하면서 '개육아 동지'가 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물어본 사람의 기분은 잘 모르겠지만 견주는 상당히 서운해진다. 귀엽다는 이유로 남의 반려동물에 대한 예의도 없이 남의 개를 막 주물럭 대놓고 믹스라는 이유로 갑자기 휙 가버리면 가끔 쫓아가서 우리 개를 맘대로 주물러 대던 것처럼 머리를 마구 헝클어버리고 가던 길을 가고 싶어 진다.




우리 지역이 작은 시단위이고, 거의 농촌지역인데도 강아지를 데리고 공원이나 애견카페에 가면 10마리 중 1마리 믹스가 있을까 말까 할 때가 많다. 미용이 잘 된 비숑과 푸들, 몰티즈 등등 품종견 사이에 뛰노는 우리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우리 개만 시골개 같아서 속으로 괜히 주눅이 든다. (그래서 일부러 옷을 예쁘고 입혀서 다닌다.)




오늘 이 글도 약간 꽁기(?)해진 마음으로 귀가했기에 쓰게 되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당일, 집에 있기 무료했던 견주들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애견카페에 전부 모여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실내 테이블이 꽉 차고, 야외 테이블도 만석이라 나중에 온 손님들은 테이크 아웃잔을 들고 스탠딩으로 서서 놀고 있는 반려견을 돌봐야 할 정도였다. 나도 늦게 도착한 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서서 강아지와 놀아야 했다.



강아지가 탐색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을 때 치와와였나, 푸들의(강아지가 너무 많아 기억은 안 나지만 저 둘 중에 한 마리 견주였다.) 견주 중 한 분이 우리 강아지가 뛰는 걸 보고 익숙한 질문을 하셨다.

 "얘는 슈나우저예요?"

  "아니에요. 그냥 믹스예요."

"아, 그렇구나. 옷 귀여워요!"



여기까진 흐뭇한 대화였다. 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가 10분 정도 지난 후 같은 질문을 그녀에게 했을 때 내 기분이 조금 그랬다.

"쟤 엄청 잘 뛴다. 종이 뭐래? 슈나우저?"

 "아니래. 믹스."

 "아, 잡종? 그럼 시골이니까 시골 잡종이네."

 "야, 시골잡종은 어감이 그렇잖아. 시고르 자브종이라고 해. 매너 있게. "

"잡종을 잡종이라 하는 데, 뭐. 시고르자브종이라고 하면 프랑스 고급개 되는 거야?"



여자친구가 눈치를 줘도 눈치 없이 무례하게 고집을 부리던 그 남자... 할 말은 있으나 하지 않겠다. 나는 그 남자의 말속에 숨어 있는 내 강아지를 무시하는 뉘앙스가 느껴껴져서 그냥 그 커플의 주변에서 벗어났다. 강아지를 소개할 때 꼭 종이 필요한가? 예쁜 개, 귀여운 개, 착한 개, 운동 잘하는 개, 사교성 좋은 개. 이거면 안 되는 걸까? 이럴 때마다 입 안이 참 씁쓸하다.




"메간 씨는 좋겠다. 애가 믹스라 미용비가 싸잖아. 우리는 비숑이라 매번 너무 비싸. 아주 돈 잡아먹는 괴물이라니까."

"어머, 얘 너무 예쁘다. 비싸게 주고 샀겠는데? 얼마 주고 데려왔어요? 우린 둘 다 푸들이라 너무 비쌌어."



실제로 사무실에 강아지를 데리고 나갔을 때 들은 얘기다. 품종견을 펫샵에서 사서 키운 건 본인들 선택이면서 품종견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우리 개는 얼마 주고 사 왔다. 이런 얘기하며 믹스견을 은근 싸구려개(?)처럼 말하는 데 나는 그럴 때마다 서운하다.

아마 다른 믹스견을 반려견으로 둔 견주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믹스고, 시골개여도 난 우리 개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엽고, 그래서 나는 서른이 넘고도 애 대신 우리 개를 키우고 산다. 왜 다른 사람들이 내 자식의 혈통과 생김새에 대해 오지랖을 부리는 건지 어떨 땐 내 안의 흑염룡(?)을 깨우고 싶어 진다.


한 달 전쯤엔 우리 동네 유기견센터에서 이찬종 선생님을 모시고 반려견 세미나가 있었다. 거기도 품종견과 믹스의 비율이 7:3 정도 됐던 것 같은데 우연찮게 내 옆자리에 믹스견을 데리고 오신 아주머니가 앉으셨다. 나는 믹스가 반가워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애기 믹스네요? 너무 귀여워요~"

"저희 개는 믹스 아니고 선택받은 개예요~ 믹스라고 하면 듣는 견주랑 강아지 기분이 안 좋아요~"




처음엔 '뭐야, 이 아주머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그다음엔 머릿속에 느낌표 하나가 띵하고 떠올랐다. '선택받은 개'라니. 어떤 의미로 시골 믹스견들은 선택받지 못하면 안 되니까.

 나도 우리 강아지가 강의 도중 내 무릎에 껑충 올라와서 잠들려고 할 때 안아 들어서 꽉 껴안아줬다. 데려온 그날 날 졸졸 쫓아다녀줘서, 그래서 내가 우리 개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나는 그저 믹스견도 사회에서 예쁨 받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언젠가 TV에서 유기견 중에 믹스가 입양이 잘 안 되고, 대형견, 검은 개는 더 입양이 안된다고 본 적이 있다. 근데 실제로 믹스견 보면 예쁘다. 검둥개? 밤에 안 보이지만 밝은데서는 누구보다 눈에 잘 띄고 원색의 옷을 입히면 옷빨이 끝내준다. 또 어느 순간 군데군데 털색이 변해있어서 그 변화를 찾아내는 재미도 있다.



 아, 물론 품종견 키우는 사람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버리고 학대하는 사람도 많은데 어떻게든 잘 키우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저 같은 개육아 동지니까 말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강아지를 꽤 유난스럽게 키운다 하겠지만 세상은 원래 어딘가에 유난인 사람들 투성이다. 난 우리 개와 세상의 모든 믹스견, 시골 강아지들에게 유난이다. 그러니 나같이 유난인 사람들을 위해 믹스견도 예뻐해 주면 좋겠다. 믹스도 다른 품종견만큼 사랑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우리 강아지 멍스타그램을 올리고 릴스를 만들어 올린다. 다른 믹스견, 유기견을 키우는 견주들이 내 피드와 릴스를 보고 용기를 얻어 본인들 강아지를 자랑하고 싶어 진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믹스견 강아지 견주들이 강아지를 자신 있게 뽐내는 그날까지 파이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 직업을 싫어한다고 하면 안 되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