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사소한 기쁨
나는 음식에 있어서 꽤 보수적인 편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도전적인 사람이다.
평소에는 늘 먹던 음식, 익숙한 맛을 찾는다.
그렇지만 그 지역에서 꼭 먹어야 하는 특산물이라면?
누가 뭐라 하기 전에 먼저 가서 먹어본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맛에 대한 호기심은 참을 수가 없다.
한 번 꽂히면 오래 가는 편이다.
한 가지 음식에 빠지면 한 달은 기본,
길게는 반년 가까이 그것만 먹는다.
내 입맛은 말하자면 좀 집요한 편이다.
특히 배가 심하게 고플 때는
보수적인 입맛이 튀어나온다.
새로운 메뉴보다는, 예측 가능한 맛을 선택한다.
배고플 땐 모험보다 안정이다.
그때 신중하게 골랐는데 맛이 없으면?
솔직히 좀 짜증나니까...
처음 중국에 갔을 땐 정말 힘들었다.
1년 동안 중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서
거의 투정에 가까운 일상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먼저 중국 음식을 찾고 있었다.
어디에 뭐가 맛있다더라 하면 꼭 찾아가서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나 적응했구나.’
중국에 살 때 한 번은 몽골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기억나는 건 오직 두 가지: 자연과 음식.
몽골 음식은 느끼하고 기름진 편이었는데,
다들 못 먹겠다 할 때 나는 혼자 신나게 배부르게 먹었다.
어릴 적부터 가리는 거 없이 잘 먹었다.
중국 향신료?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젠 그 향이 익숙하다 못해,
향만 맡아도 뭐가 들어갔는지 대충 맞춘다.
덕분에 세계 음식에도 제법 적응력이 생겼다.
(물론 먹어본 나라가 그렇게 많진 않지만…ㅋㅋ)
남편도 내 입맛 따라 같이 향신료를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 집엔 늘 향신료 몇 가지가 구비되어 있다.
신혼여행으로 태국에 갔을 때도,
4박 5일 동안 한식은 단 1도 생각 안 했다.
오직 태국 로컬 음식만 먹었고,
중간에 배탈도 났지만 끝까지 고집했다.
그 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호주에서 살던 시절, 태국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팟타이를 질리도록 먹었다.
놀랍게도, 아직도 질리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간절히 생각난다.
터키 음식도 마찬가지. 여행보다 음식이 더 기억난다.
다른 사람들은 여행 가기 전에 명소부터 찾는다지만,
나는 항상 맛집부터 찾는다.
남편과 나는 입맛이 꽤 다르지만,
한 가지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먹는 스타일은 닮았다.
그래서 다행이다.
코로나 직전엔 훠궈에 빠져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으러 다녔다.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말이다.
결혼하고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땐 정말 맛 없었다.
그런데도 묵묵히 먹어주던 남편에게, 지금도 고맙다.
결혼 12년 차.
이젠 레시피만 보면 웬만한 음식은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도전도 잘 한다. 실패도 자주 한다.
실패하면 두세 번 해보다가 그냥 사 먹는다.
얼마 전에도 도전했다.
집에 있는 재료만 가지고 동파육을 만들어봤다.
결과는… 그냥 간장조림이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성공은 아니었지만, 맛있는 실패였다.
음식 앞에서는 늘 진심이다.
익숙함을 좋아하면서도, 새로운 것에도 열려 있고,
기꺼이 도전하고, 때론 실패하고, 그래도 다시 시도한다.
맛있는 건 놓치기 싫다.
왜냐면, 그건 그냥 한 끼가 아니라,
내 삶의 추억이 되니까.
[중화미각 - 김민호, 이민숙, 송진영 외, 책을 읽고 제 삶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