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돈’에서 ‘정체성’으로
“나에게 업(業)은 없었다.”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내 삶의 정리.
나는 지금도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여전히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지금도 ‘혼돈’ 속을 걷는 중이다.
하지만 그 혼돈의 시간들이 모여
내 삶의 결대로 나를 설명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 도망치듯 떠났던 15살과 16살 사이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우리는 방 2 칸집으로 이사했고,
매일같이 엄마의 푸념과 잔소리가 이어졌다.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스스로를 ‘공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 단정 지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가 혼자 계시던 중국으로 무작정 떠났다.
그게 내가 삶을 직접 한 첫 번째 선택이었다.
- 20대의 나는 늘 ‘이도저도 아닌 상태’였다.
스물한 살, 중국 대학을 준비하다가 엄마의 말에 한국 대학을 선택했다.
스물두 살, 다시 한국에 돌아와선 한국 문화에 적응하느라 고통스러웠다.
스물네 살, 미래를 고민하다가 남편의 구애에 휴학 중 결혼했다.
스물여섯 살, 호주로 떠났지만 1년 만에 돌아왔다.
스물일곱 살, 아이가 생겼고,
스물여덟 살, 둘째까지 생기며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어느새 ‘아내’이자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없었다.
- 우울함 속에서 점점 가라앉던 시기
둘째 출산 후, 나는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가장 사랑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사업 실패와 대인 기피, 자기혐오가 겹쳤다.
세상에 혼자 던져진 것 같았다.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던 날이 많았다.
- 교회에서 다시 찾은 숨.
서른 살, 교회를 다시 나가며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둘째와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서른한 살, 아이들의 아토피 때문에
직접 원인을 찾아내려 애썼고,
아이들을 잘 케어하고자 감정 코칭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나는 여전히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정체성 탐색’
코로나 시기, 나는 집에만 머물며
‘나’는 없고 ‘엄마’만 존재하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서른세 살,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도 내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중국어를 붙잡았다.
‘번역’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영상번역을 배우기 시작했다.
전자책에 내 이름이 실리기도 했다.
‘나’를 다시 꺼내기 시작한 시기였다.
- 아직도 갈팡질팡
서른네 살, 공부도 일도 놓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일을 그만두고 영상번역 강의를 들으며 고시생처럼 살았다.
잠시 멈췄을 때도 마음은 여전히 바빴다.
서른다섯 살, 번역 공부를 그만두었다.
3년을 공들인 공부를 이제 그만 내려놓았다.
다시 ‘내’가 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 나는 정말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엄마로서의 나,
일하는 나,
그리고 온전한 나.
이 세 가지가 헷갈리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 속에서
나는 늘 누군가의 요청, 외부의 상황, 흐름에 반응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스스로 묻고 있다.
- 끝나지 않은 탐색, 그러나 이제는 방향이 있다.
나는 아직도 두렵다.
사회 경험도 부족하고,
모은 자격증은 많지만 자신감은 없다.
하지만 나를 찾으려는 노력만큼은 계속되고 있다.
그게 중요하다.
도장 깨기처럼 이것저것 해보면서도,
마음속 깊은 데서 묻는다.
“나는, 정말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는, 정말 무엇이 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