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낳으면 저절로 엄마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웃음)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낮에는 조용하던 아이가 새벽이 되자 낯선 모습으로 돌변하여 두 시간에 한 번씩 울어대는 모습을 보며, '이게 꿈이여 생시여...' 집에 도착한 날이 돼서야 비로소'조리원 천국'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던 그날을...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처음엔 아이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해서 기저귀를 몇 번이나 들춰보기도 했고, 식지 않은 70도의 분유를 아이 입에 갖다 댔다가 으르렁대는 사자의 코털을 제대로 건들기도 했었죠. 아이의 수면패턴을 맞추지 못해서 수개월 동안 밤낮이 바뀐 삶을 살아보기도 했어요. 제가 지금 이렇게 고생을 했다고 유세 떠는 게 아니에요. 이건 지극히 평범한 초보 엄마들의 일상 중 일부를 나열한 얘기예요.
100일의 기적이 있다고 말해주는 선배맘들의 조언을 믿고 기다려봤더니, 정말 100일의 기적이 일어나더라고요. 하. 지. 만! 인생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육아에도 사계절이 존재했어요. 제 경우에는 그렇게 느껴졌어요. 육아에서의 사계절은 몇 개월 간격이 아니에요. 아이가 어릴 때는 몇 개월의 시간차가 있었어요. 하지만 아이가 클수록 한 달, 일주일 그리고 요즘에는... 아이와 보내는 하루 중 등원, 하원, 저녁의 간격으로 사계절을 느끼고 있어요.
아침에 자는 아이를 깨울 때는 더 자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게 사랑스러워요. 졸린 눈을 비비며 눈곱을 떼면서 고사리 손으로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끝낸 후 입을 헹군다며 오그르를 하는 꼬마인간을 보고 있자면 입꼬리가 내려갈 틈이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가 유치원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고 나면 발걸음이 가벼워져요. 사랑하는 내 아이지만 엄마도 개인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참, 누가 만든 말인지 짧은 문장 속에 여러 진리가 담겨 있는 말이에요.
저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착실하게 저를 챙기며 시간을 보내요. 그 '착실함'이란 저에게 어떤 뜻이냐 하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알차게 보낸다는 의미예요. 저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밀려있는 책을 읽고 일상의 기록을 남기죠. 그 기록에는 일기도 있고 에세이도 있어요. 둘 다 쓰고 있지만 둘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일기란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적인 글'이란 뜻으로 정의했어요. 그와 반대로 '공개하고 싶은 글'은 에세이라고 분류하죠. 그리고 그 외에 저는 특별한 글도 쓰고 있어요. 바로 '동화'에요.
특별한 글을 동화라고 지칭한 이유는 그 뮤즈가 '우리 집 꼬마'라서예요. 저의 희로애락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집 꼬마'는 항상 저에게 놀라움을 선사하죠. 그건 아마 저만 그런 게 아닐 거예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우리 애가 혹시 천재인가?' 저 또한 그런 생각을 했던 엄마 중 하나예요. 옹알옹알하던 아이가 어느 날 엄마 아빠를 부르고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걷기 시작하더니 뛰어다니고 이거 저거만 하던 꼬마가 어느새 문장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배에서 어떻게 저런 아이가 태어났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대부분의 부모가 한 번쯤은 우리 아이의 특별함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저 또한 감자('우리 집 꼬마'의 태명으로 지칭할게요.)를 보면서 '천재인가?'라고 생각했던 고슴도치 엄마였어요. 그런데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친구들을 보면 금방 깨닫게 돼요. 아이들은 저마다 고유의 개성이 있더라고요. 우리 아이가 말이 빠르다면 다른 아이는 손재주가 좋고 또 어떤 아이는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아이들마다 본인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죠.
저희 감자의 경우에는 언어발달이 좋은 편이었어요. 지금은 5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데 요즘은 제법 대화가 되더라고요.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순간들이 있어요. 잔소리를 할 때 말대답을 한다던가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테면 이런 얘기를 할 때죠.
"내 뱃속에 무도회장이 있어!"
"개미들이 내 사탕을 기다리고 있나 봐."
"저 2층버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아이의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때 묻지 않은 아이의 순수한 시각에 감동을 받고는 하죠. 그리고 세상을 당연한 듯이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정화하기 위해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돼요. 이거 선순환 아닌가요? 엄마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순수하게 정화되고 아이는 엄마가 이야기를 경청해 주니 행복하고? (웃음)
영유아기에는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있죠? 제가 아이를 키워보니 사실 아이들은 '창의적' 그 자체였습니다.(우리 아이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 그렇더군요) 틀에 박힌 저의 머릿속 그림과는 다르게 메주로 빚어만든 아이의 상상력에 감탄하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아이와 나눴던 대화를 시간에 흘려보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소설책을 좋아해요. 하지만 많이 읽는 책은 동화책이죠. 물론 소리 내서 읽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뭔지 아세요? 아이에게 읽어주던 동화책을 통해서 제가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거예요. 저는 나쁜 어른이었던 걸까요? 분명 학교 다닐 때 매 학년마다 도덕 과목을 들었던 것 같은데 왜 저는 도덕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으로 자란 걸까요. 육아를 하면서 저는 아이를 통해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해요. 순수한 아이의 시각을 통해서 배우는 점도 있지만 동화책을 통해서 다시 되새기게 되는 경우도 많죠.
동화책이란 짧지만 함축적인 교훈이 담긴 이야기예요. 과거에는 알지 못했는데 요즘 들어서 실감하고 있어요. 저는 요즘 아이와 나눈 대화를 동화로 적어보는 중이에요.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해요. 과거 우리 모두는 동심을 갖고 있었죠. 여러분이 동화를 읽으며 어린 시절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