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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엄마 Aug 24. 2023

열감기의 악몽

아빠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저녁이 되었어요.

침대에 누운 감자의 몸이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워졌어요.

엄마는 서둘러 감자의 체온을 재보았죠.

"어떡해! 우리 감자가 열이 나고 있어. 감자아빠! 이리 와봐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감자 몸 좀 만져봐요. 너무 뜨거워요. 이러다가 우리 감자가 찐 감자가 되겠어요."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상한 듯이 말했어요.

"해열제가 어디 있었더라. 감자아빠. 얼른 가서 손수건에 물 좀 묻혀와요."

엄마는 침대에 누워있는 감자에게 해열제를 먹였어요.

감자아빠는 손수건에 찬물을 묻혀와서 감자의 몸을 식혀주었죠.

밤새 엄마 아빠의 정성 어린 간호를 받았지만 감자의 열은 도통 떨어지질 않았어요.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에 감자네 가족은 병원으로 향했어요.

감기가 유행인가 봐요. 병원은 주차장 입구부터 차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어요.


오랜 대기 시간이 지나고 감자는 약을 처방받아 왔어요.

집에 돌아와 처방받은 약을 먹었지만 감자의 열은 내려가지 않았어요.


새벽이 되자 감자의 몸은 더 뜨거워졌어요.

"으.. 엄마.. 너무 추워요... 이불 덮어주세요.."

"안돼, 감자야. 조금만 참아. 양말 신겨 줄게."

옆에서 속상한 듯이 지켜보던 아빠가 말했어요.

"에효.. 우리 감자.. 안 아팠으면 좋겠구먼.. 아빠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엄마가 말했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누워있던 감자도 한마디 했어요.

"맞아요..."

아빠는 씁쓸한 알감자의 미소를 지었답니다.






아이를 키우며 저는 한 번씩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고는 합니다. 그건 제 기억의 일부가 될 때도 있고 어른들에게 전해 들은 얘기가 될 때도 있죠. 어른들에게 들었던 어린 시절의 일화는 제 머리에 박혀 마치 원래부터 기억의 일부였던 것처럼 이미지로 남게 되죠. 그리고 사실 저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있는 편이에요. 제가 6살 때 이야기를 해보자면, 처음 태권도장을 갔던 날이었는데요. 저를 태권도장에 보내고 나가는 고모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었. 창 밖으로 차를 몰고 가는 고모부의 뒤 꽁무니를 보며 계속 울어댔죠. 그때 한 언니가 옆에 와서 저를 달래줬던 덕에 겨우 울음을 그치게 됐어요. 이 얘기를 성인이 된 후 고모부에게 했더니 너 그게 아직도 기억이 나냐며 그땐 왜 그렇게 울었던 거냐고 되려 물으시더군요.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복잡하고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서 저는 유약하고 섬세한 어린이 그리고 성인으로 자라게 됐어요. 그 덕에 남들은 가볍게 지나쳐버릴 일화들이 저에게는 일련의 사건으로 남게 되는 것이죠.


이번에 감자가 감기 앓게 되면서 저는 다시 어린 시절의 일화를 떠올리게 됐어요. 정확한 나이 추정은 되지 않지만 아마도 제가 5살, 6살쯤 됐을 때 일이에요. 엄마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 저의 목에 젖은 손수건을 둘러주고 겨드랑이에 체온계를 껴줬어요. 수온 체온계가 처음 살에 닿을 때는 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차가웠지만, 넋을 놓고 티브이를 보다 보면 어느새 체온계는 저의 체온으로 데워져 있었죠. 그쯤 됐을 때 엄마는 겨드랑이에서 체온계를 빼고 숟가락에 시럽약을 떠 와서 먹여줬어요. 에게 있어 때의 기억은 엄마의 사랑으로 해석되어 남아있습니다. 제가 어디가 아팠고 얼마나 힘들었고 티브이에서 뭐가 나오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지금 제가 알 수 있는 건 다정한 말은 없었지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행동에서 전해지는 사랑 느꼈다는 사실이죠.


사람의 표현 방식은 가정환경에서 나온다고 하던데, 저와 남편은 누구를 닮았는지 자식에 대한 사랑표현이 과할 정도로 풍부한 엄마 아빠예요. 감자가 외동딸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저와 남편은 하루종일 감자에게 '사랑해'를 입에 달고 살죠. 그러니 감자가 열감기 앓는 기간에는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겠어요. 열이 39.7도를 찍는 체온계를 보고는 돌발진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지금이라도 응급실을 가야 하나 부산을 떨었죠. 온몸이 아프다고 기운 없이 말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속상한 마음에 남편이 입을 열었어요.

"아빠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

저 또한 아픈 감자를 보며 대신 아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남편이 도맡겠다면 말리고 싶진 않더라고요(웃음). 코로나를 세 번 겪어보고 열감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러게..."

감자도 동의하는 눈치였어요.

"맞아..."

남편은 어이없음과 섭섭함과 정말 대신 아파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속상함이 섞인 실소를 터뜨렸어요.


여름감기와 지독한 싸움을 끝내고 감자는 5일 만에 컨디션을 회복하게 됐어요. 이렇게 일상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우리 감자가 언제 아팠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쯤 다시 고열의 행군이 시작되겠죠. 아프지 않고 자라기를 바라지만, 아이의 고열은 어찌 보면 엄마의 사랑을 저장할 수 있는 추억의 한 조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추억의 조각처럼. 엄마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넜던 기억과 엄마가 자주 입는 티셔츠에서 나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던 엄마 냄새, 그리고 옷 끝자락의 부드럽지도 뻣뻣하지도 않았던 촉감처럼. 감자가 성인이 됐을 때 엄마에 대한 기억 마음 한편을 훈훈하게 워주고 고열이라는 단어가 아프지 않게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응원이 있으니 이것쯤이야 금방 이겨낼 수 있어!라고 당당하게 털어낼 수 있는 건강한 성인이 되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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