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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엄마 Aug 15. 2023

색종이 접기

엘레나 코끼리





길고 길었던 여름방학이 지나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고 처음 맞이하는 방학이었죠. 어린이집 일주일 방학만 경험해 보다가 2주 3일이나 되는 유치원 방학의 매운맛을 보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감자네 가족은 6월에 미리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이번 7월은 감자 아빠가 휴가를 쓰지 못했어요. 덕분에 감자와 저는 뜨거운 모녀의 시간을 보내게 됐죠. 아이와 나누는 대화의 기록으로 동화를 쓰고 있지만.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수다 공격에 기가 빨리더군요. 오죽하면 제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겠어요.

"조용히 좀 해."


집에 있는 시간은 저도 감자도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밖에 나가자니 날이 더워서 야외활동이 어려워 차를 타고 시원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죠. 그런데 실내만 찾아다니려니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어요. 어디를 가야 할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날에는 집에서 영화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종이접기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감자는 요즘 종이 접기에 푹 빠져있어요. 그리고, 접고, 오리고, 붙이고. 소근육이 발달하는 놀이라 색종이를 아낌없이 내주었죠. 그런데 너무 관대했던 걸까요? 감자는 계속해서 새 색종이를 달라고 하더군요. 색종이를 흐릿하게 세네 번 접어 접시를 만들고, 보물상자에 넣고, 또 새 색종이를 접고.


이리 접히고 저리 접힌 채로 상자 속에 들어가는 색종이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몇 번만 더 접으면 꽃이 될 수 있는 색종이가 그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된다는 게. 마치 우리의 삶처럼 보였거든요. 나무를 잘라 종이를 만들고 화려한 을 입은 색종이는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고작 구겨진 종이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테니깐요.


새 색종이를 꺼내달라고 하는 감자에게 말했어요.

"우리 접시 접었던 색종이로 다시 접어보자. 감자가 멋있는 코끼리를 만들어보면 어때?"

감자는 엄마가 접어주는 게 더 멋있다며 저에게 색종이를 건네주었죠. 저는 동영상을 보면서 선이 빳빳한 코끼리를 접어주었답니다. 동화 속 감자처럼 스스로 만든 코끼리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길 바라지만, 아직은 감자가 더 커야겠죠?


남편과 아이가 잠든 새벽. 글을 쓰다가 핸드폰 속 감자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생각했어요. 하루하루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그와 동시에 성인이 된 후의 아이의 모습을 그려보았어요. 우리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지 궁금하지만 정답을 그려놓진 않았어요. 색종이처럼 이런 경험도 해보고 저리도 치여보고 자기만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어른이 되기를. 잔주름이 잡혀있어도 자기만의 멋을 갖고 있는 그런 어른이 되기를. 아! 감자가 엘레나 코끼리 같은 어른이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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