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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엄마 Oct 05. 2023

꿀벌과 플라스틱

유난히 꽃이 쓴 계절이었어요

나뭇잎이 물들고 무르익은 잎들이 떨어졌어요.

발에 채이는 낙엽이 하나둘씩 길거리를 물들이고 있었죠.


아직 숙제를 마치지 못한 꿀벌 한 마리가 화단 주변을 윙윙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찬공기와 더운 공기가 오락가락하는 탓에 꿀벌은 향기로운 꽃을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바람에 펄럭이는 핑크빛의 고운 꽃잎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윙윙 날아가 꽃향기를 맡아봤어요.

고운 자태와는 다르게 꽃은 쓴 냄새를 내뿜었죠.


꿀벌은 코를 찡그리며 옆에 있는 꽃에게 가 보았어요.

옆에 있던 꽃 역시 쓴 냄새가 났어요.

이러다가는 오늘 수확해야 할 양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 같았어요.


꿀벌은 할 수 없이 쓴 냄새를 풍기는 꽃의 꿀을 채취했어요.

꿀벌은 주변에 있는 다른 쓴 냄새가 나는 꽃의 꿀도 채취해 갔어요.

달콤한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고 모른척해버리면 꽃이 서운해할지도 모르니깐요.


해가 들어가고 차가운 공기가 몰려왔어요.

하루종일 열심히 일한 탓에 꿀벌은 날개가 뻐근하고 졸음이 몰려왔어요.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죠.

은 다급하게 꽃잎에 기대앉아 힘을 줬어요.

끙차! 끙차!

있는 힘껏 힘을 줬지만 배만 더 아플 뿐이었어요.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서둘러 집에 돌아가야겠어.'

꿀벌은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여 벌집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아픈 배를 부여잡고 잠 들었죠.


다음 날이 되었어요.

꿀벌은 다시 일을 하러 나갔어요.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여전히 향기로운 꽃은 찾을 수가 없었어요.


꿀벌은 계속해서 배가 아팠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

몸이 무거워진 꿀벌은 잠시 꽃봉오리에 기대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긴 잠이 들었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비가 내리고 해가 내리쬐기를 반복했지요.

꿀벌의 모습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졌어요.

그리고 꿀벌이 누워있던 자리에는

형형색색의 작은 미세플라스틱 조각만이 남아 반짝이고 있었답니다.




계절이 가을을 잊은 듯하더니, 추석이 지나고 뒤늦게 쌀쌀한 바람이 찾아왔습니다. 꿀벌이 길을 잃은 듯 꽃 주변을 윙윙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글에 대한 고민만 하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찬바람에 겨울이 오기 전 이번 주제에 대한 글을 마치겠다는 각오를 하고 의자에 앉아 각을 잡아보았답니다.


아침 공기는 미지근하고 한낮에는 양산이 필요할 정도로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던 어느 날이었어요. 감자와 산책을 하던 중 길을 잃은 듯 꽃 주변을 윙윙 날아다니는 꿀벌을 보며 감자가 말했죠.

"엄마, 꿀벌이 꽃이 쓴가 봐. 꿀 안 먹고 계속 돌아다녀."

감자는 이리저리 맴도는 꿀벌에게서 식탁 앞에 앉아 반찬투정을 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았나 봅니다.

"꿀벌이 맛있는 꿀을 찾지 못했나 보다 감자야."

감자와 저는 꿀벌을 바라보며 산책길을 계속 걸어갔죠. 그리고 생각해 봤답니다. 감자 말대로 꿀벌이 달콤한 꿀을 찾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요.


저는 이따금씩 벌거벗은 세계사를 다시 보기로 찾아보고는 하는데요. 하루는 해양쓰레기의 심각성에 대한 방송을 보게 되었어요. 기사로만 접해왔던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 그리고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강의는 충격을 넘어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1950년대부터 플라스틱의 상용화가 시작된 이래로 쓰레기가 된 플라스틱은 바다 위에서 해류를 따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되었죠. 오랜 시간이 지나 플라스틱은 한 군데에 모여서 쓰레기 섬을 만들게 되었는데, 해류에 휩쓸 작은 조각으로 잘려나간 플라스틱 조각들은 미세플라스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닷속 생물들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죽어있는 앨버트로스의 배 속에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한가득이었습니다. 플라스틱 조각을 새우로 착각했던 것이지요. 살기 위해 매일 소비하고 있지만 그건 결국 쓰레기를 만드는 독이 되는 행위가 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꽃에서 왜 쓴 냄새가 났을까' 하는 생각의 시작에서 벌거벗은 세계사 속 플라스틱의 역사까지 보게 된 후 이야기의 결론은 미세플라스틱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미세플라스틱을 품고 있는 바닷물이 수증기가 되어 구름 속에 들어가고 그 빗물이 알프스산을 뒤덮었듯이, 빗물이 목마른 꽃을 적셨다면 꿀벌은 알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꽃잎과 꽃가루에 스며든 작은 미세플라스틱 조각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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