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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엄마 Oct 21. 2023

아주 먼 옛날 인간은 네발로 기어 다녔다지요

인간은 왜 두 발로 걸어 다니게 됐을까요?

아주 먼 옛날, 호랑이도 원숭이도 기린도 존재하지 않던 오랜 옛날이었어요.


얼핏 보면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이라고 하기엔 온몸을 털로 감싸고 있는 오손이라는 동물이 있었지요.

거칠고 어리숙한 면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짐승이라고 부르기엔 눈빛이 따뜻한 동물이었어요.


오손은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고 식물의 뿌리를 캐 먹었어요.

목이 마를 때면 숲 속의 물웅덩이에서 고개를 숙여 물을 마셨지요.

물웅덩이에서 다른 동물을 만나면 서로 눈인사를 나눴어요.


그들은 물을 더 많이 마시겠다고 싸울 이유가 없었어요.

그들은 모두 하나라고 생각했고 자연은 그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졌기 때문이에요.


그들의 겉모습은 제각각이었지만 네발로 기어 다닌다는 점은 똑같았어요.

서로 경쟁하지 않고 다투지 않았기에 서둘러 달릴 이유도 없었어요.

그들은 배가 고프면 필요한 만큼 열매를 찾아 먹었고 목이 마르면 물웅덩이의 물로 목을 축이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오손은 아기를 낳게 되었어요.

살결이 보드라운 작고 반짝이는 아기였어요.

오손은 아기의 이름을 도손이라고 지어줬어요.


도손은 참 까다로운 동물이었어요.

오손이 품에 안고 있을 때면 방긋 웃으며 검지손가락을 잡아주곤 했지만,

잠깐이라도 바닥에 눕히면 자지러지게 울어댔어요.


오손은 한시도 쉴틈이 없었어요.

오죽하면 열매를 따먹으러 다녀올 틈도 없었을까요?


어쩔 수 없이 오손은 도손을 한 손에 안고 한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몇 걸음 걷다 쉬고 몇 걸음 걷다 쉬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어요.


네발로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다니려니 아직 말은 할 줄 몰랐던 오손이었지만,

오손은 다리와 허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팠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도손의 입에서 '으앙~'소리와 함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모습을 보면

오손 역시 울고 싶어 지는걸요.

오손은 두 발로 걷는 것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시간이 흘러 도손은 네발로 기어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오손이 어딜 가도 종종 따리 다니기에 바빴죠.


전보다 안아주는 횟수가 줄어서 오손이 두 발로 걸어 다닐 일은 적어졌다 싶었는데 말이죠.

이제 다른 문제가 생겨버렸어요.


도손은 오손의 엄지손가락을 잡고 싶어 했어요.

어딜 가든 도손은 오손의 손을 잡고 다니고 싶어 했죠.

오손과 도손은 네발로 기어 다녀야 하는데 말이죠.


도손은 누워 있을 때는 안아달라고 떼를 쓰더니 이젠 손을 잡아달라고 떼를 썼어요. 

오손은 옆에서 자꾸 떼를 쓰며 울어대는 도손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저 작고 귀여운 도손을 이겨낼 재간도 없었지요.


할 수 없이 오손과 도손은 손을 잡고 걸어보기로 했어요.

한 손은 서로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바닥을 짚고 걸어 다녔지요.

그러다 튼튼한 나뭇가지를 발견해 땅을 짚고 걸어 다녀보기도 했지요.


반복된 훈련 덕이었을까요?

오손과 도손은 어느새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게 익숙해졌어요.

그렇게 둘은 어딜 가든 손을 잡고 다녔지요.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든 오손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요.

도손은 아이를 낳게 되었지요.

도손은 오손이 그랬듯이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가 자랐을 때는 손을 잡아주었어요.

그리고 도손은 어디든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다녔답니다.




호기심이 많은 감자지만, 종종 제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고는 합니다. 예를 들어, "새는 왜 날개가 있어?"라든지 "물고기는 왜 물속에서 살아?"라는 질문을 할 때가 그렇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에둘러 대답을 해주지만 감자의 순수한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질 때면 얄팍한 지식의 한계점에 다다른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는 합니다. "감자야, 나중에 커서 네가 유전학을 전공해 봐. 엄마도 자세히는 몰라."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만물의 모든 이치가 아이의 눈에 '왜'?라고 비치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문명의 시작도 결국엔 '왜?'라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위대한 시작의 출발점은 잊고 당연하듯 살고 있는 저에게 날아든 기습질문들은 이따금씩 영감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었죠. "엄마, 사람은 왜 두 발로 걸어 다녀?"


우리는 왜 두 발로 걸어 다니고 동물은 네발로 기어 다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감자만 궁금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근거로 우리는 교과서에서 직립보행을 배우기도 했으니깐요. 감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교과서에서 봤던 인류의 직립보행에 대해 어설픈 설명과 함께 인터넷에서 인류의 진화과정을 담은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감자의 이해를 돕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감자에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설명해 주는 건 아니다 싶었던 저는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감자야, 엄마가 이야기 하나 해줄게. 왜 우리는 걸어 다니게 됐냐면...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도 원숭이도 기린도 없던 아주 오랜 옛날에. 네발로 기어 다니는 사람이 있었어. 아마 아직은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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