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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주닝요 Oct 22. 2023

10. 당신은 하루 800원에 행복할 수 있나요?

브라질에서 마주한 행복에 대한 고찰

업무를 마치고 가볍게 동료들과 '치맥'을 하기 위해 나섰다. 브라질에서 '치맥'이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사실 외국 어느 나라든지 닭을 활용한 요리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식 치킨은 유사한 음식이 있을지언정 우리나라에서 먹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동료들의 소개로 알게 된 지인분께서 '한국식 치킨집'을 운영한다고 하시기에 부푼 마음을 안고 치킨집으로 향했다. 


 

브라질 작은 대학가에 위치한 그 치킨집은 크진 않지만 지인 분의 세련된 감각과 정성이 물씬 반영되어 있는 힙한 느낌의 가게였다. 요리라는 본연의 목적에만 충실한 듯 보이는 여타 주변 다른 가게의 인테리어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 치킨집의 상호명 또한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그 치킨집의 상호명은 '크랙치킨'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마약치킨'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마약김밥', '마약치킨' 등의 작명을 하는 것은 그만큼 맛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되지만 브라질에서 이러한 작명을 하는 것이 상당히 도발적이라는 생각에 웃음 짓게 되었다. 하지만 치킨을 먹어보고는 이 도발적 상호명의 자신감이 바로 '맛'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먹어봤던 감자튀김 중에 제일 맛있는 감자튀김까지 함께 제공하고 있어서 그 맛을 더해주었다.


정말 마약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치킨과 감자튀김


"사장님! 이거 진짜 경찰들이 조사하러 와야 되는 거 아니야? 너무 맛있는데? 여기에 뭘 탄 거야?"

"어휴 그렇게라도 노이즈 마케팅되면 좋겠다! 어디 경찰들 안 오나?"


바쁜 와중에도 우리 테이블을 오며 가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지인 분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가게에는 두 명의 브라질 아르바이트생이 있어 부족한 것이 생길 때마다 그들에게 주문을 했는데 그중 한 명의 외모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와! 저기 계시는 알바 분 있잖아요. 콜롬비아 축구선수 로드리게스 하메스 닮았어."

"아 에두아르도? 하메스라는 사람이 잘생겼나? 저 친구 잘생겼지. 일도 곧잘 해요."


레알 마드리드 팬이었고 하메스라는 선수를 좋은 선수로 기억하고 있는 내게는 그가 굉장히 친근하면서도 반갑게 느껴졌다. 또한 그는 장난기가 섞여있는 듯한 앳된 표정이긴 했으나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손님들에게 응대를 해주었다. 


"와 진짜 알바 잘 뽑으셨네요. 저 친구 일 되게 잘하는데요?"

"일 잘하죠? 지금 일하고 있는 친구들 오래되기도 했고 제가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이에요. 브라질은 괜찮은 알바 구하기 진짜 힘든데 애들이 일도 잘하고 착하고, 어휴 근데 내가 저 놈들만 생각하면 가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콜롬비아 축구선수 하메스를 닮은 에두아르도

짧지 않은 시간 함께 해오며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이라고 하는데 지인분께서는 왜 저 친구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틈만 나면 가불을 해달라고 해서 골머리예요. 가불은 해줄 수 있지! 그건 문제가 안되는데 이제 정도 쌓이고 그러다 보니까 그러기 싫은데도 막 잔소리를 하게 되는 거예요. 저 친구들이 인생을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가불 받은 돈으로 소비하는 버릇을 들이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될 거 아니에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브라질에서는 많은 피고용인들이 생활고를 명목으로 가불을 요청하곤 하는데 몇 달치 월급을 가불로 받은 후 도망가는 상황들이 더러 발생하여 고용주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고 했다. 물론 지인 분도 그러한 경험을 했기에 요청 시 정해진 기준 안에서만 가불을 해주지만 문제는 그들이 가불을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맨날 가불을 하냐고 물어봤더니 오늘 친구들이랑 맥주를 마셔야 해서 그런 거라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20대 초라서 아직 어리다지만 그래도 맥주를 마시려고 가불을 하는 건 아니지. 집안 형편이 넉넉한 애들도 아닌데 얘네들은 맥주 한 캔 사 먹을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해맑게 이야기를 하니까 가불을 안 해줄 수도 없고... 휴 나 원참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그제야 그가 골머리를 앓는 이유에 대해서 공감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까지 대책 없이 인생을 살 수 있는 걸까? 생활고로 인한 가불 요구는 백 번이라도 이해를 하겠지만 맥주 한 잔을 사 먹어야 해서 가불을 요구하다니. 그것도 아주 해맑고 당당하게 말이다. 나 또한 에두아르도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브라질 맥주 작은 캔 하나가 3헤알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돈으로 단 돈 800원. 그는 800원만 있어도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금액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에 관해 한참 동안 대화를 빙자한 토론을 하게 됐다. 이런 사고방식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하루 800원에 행복할 수 있냐는 이 극단적인 질문에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브라질 현지인들은 이런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800원이 아니라 8천 원이라도 내가 행복해했을까? 
8만 원을 소비해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체감이 되긴 했을까? 


깊게 고민을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는 800원에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결코 그의 사고방식에 동의를 할 수 없었다. 나 자신도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방식은 너무나도 극단적이었다. 사람은 인생을 살기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기본값으로 소비해야 하는 금액들이 있다. 사람마다 그 기준과 금액에는 다소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금액들이 있고 보통은 그 금액을 제한 나머지 금액에서 나머지 소비들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부득이 삶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 항상 이 계산을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더러 생기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살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관점에서 한 번 그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너무나도 대책 없는 삶이지만 그는 800원에 행복을 확신하고 있었고 그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대책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8만 원에도 행복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0점에서 8점을 받아 8점이나 올랐다며 행복해하는 반면, 100점을 지향하는 나는 80점을 받아 불행해하고 있는 꼴과 다름없었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100점을 지향하며 살아갈 것임에 분명하지만 그 동일 선상에서 나의 행복은 몇 점인지를 고민해 봤을 때 에두아르도가 80점이고 내가 8점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90점, 100점을 받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한다고 생각한다. 100점을 지향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잘했고,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주변 상황과 여건들로 인해 자신을 극도로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물론 에두아르도는 그저 천진난만하게 행복해하며 소비했던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고 반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들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높아지는 삶의 질 점수에 나의 행복 점수도 정말 비례하며 상승하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도 많이 들어봤던 이야기들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고 느껴진다. 물컵에 물이 반쯤 차있는 것을 보고 누구는 '물이 반이나 차있네.'라고 생각하는 반면 누구는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네.'라고 사고한다는 이 흔히 들어봤던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보통은 긍정적인 마인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흔히 인용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통해 지극히도 당연히들 이야기하는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혹자는 물과 관련된 해당 이야기에 물이 반이나 차있다고 사고하는 안일한 태도를 비판하며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음을 빠르게 인지하고 어떻게 하면 나머지 반을 채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과 비교해 모 연예인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많은 공감을 사며 각종 밈(meme)으로 활용되기 하지 않는가? 이런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맞춰 자신의 삶의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하는지를 취사 선택해서 살아가지만 한번 쯤은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보고 점검해보는 것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차원의 이야기이다.


그의 삶의 태도나 방식이 옳으냐 혹은 그르냐의 이야기를 차치하고 나에게 새로운 물음을 제시해 준 그에게 감사했다. 그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면서 한편으론 그가 부러웠고 그의 태도를 조금은 닮고 싶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삶의 태도의 반, 내 삶의 태도 반을 섞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그의 삶 가운데서도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그 미소를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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