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BTS 월드투어 상파울루 취재 이야기
브라질에 도착한지 얼마지않아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업무는 아이돌 BTS의 월드투어 브라질 현장 취재였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아이돌에 관해 문외한이었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나는 마음 한편에 아이돌은 그저 상업성과 대중성으로 상품화된 이들이기에 하나의 아티스트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했다. 음악적 소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얄팍한 수준의 개인적 기준을 세우고 그들을 아티스트와 그저 퍼포먼스 하는 사람으로 나누는 상당히 시건방지고 도전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소위 팬덤 문화로 불리는 분야를 소비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그리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BTS라는 그룹 또한 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수많은 아이돌 중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한 그룹인가 보다 싶었다. 무관심의 영역에 있어서인지 모르겠으나 국내 활동보다는 해외 활동에 더 치중하는 그룹인 듯했기에 이름은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음악을 접할 기회도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아이돌 중에 이들의 이름을 명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2014년 나는 약 한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여행 중 프랑스에서 만났던 소녀와의 대화가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 대화를 하게 된 그녀는 나의 국적이 한국이라는 것을 듣자마자 화색이 돌며 방탄소년단이라는 가수를 아느냐고 물었다. 난 그 그룹명을 듣자마자 먹고 있던 바게트를 뿜을 뻔했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런 작명을 할 수 있는지 유치하게 그지없는 네이밍에 빵 터질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반짝거리며 기대하는 눈빛의 그 소녀를 실망시킬 수 없어 들어보기는 했다며 황급히 다른 바게트 빵을 입에 구겨넣긴 했지만...
그 당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유치하게 짝이 없는 그룹명과 멤버들의 활동명은 누가 지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지만 한국인인 나도 잘 모르는 아이돌을 어떻게 바다 건너 유럽에 있는 이 소녀가 이렇게 세세하게 많이 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긴 했다. 그녀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서 한참을 각 멤버들에 대한 특징과 칭찬을 전해주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그 소녀의 마지막 한 마디만이 남았다.
그들은 분명히 세계적인 가수가 될 거예요.
나중에 제 말이 기억날 거예요.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의 말은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 BTS는 이후로도 줄곧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그 인기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더욱 쌓이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BTS WORLD TOUR LOVE YOURSELF'를 열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들의 음악을 듣고 즐길 정도의 여유는 없었기에 여전히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었다. 이런 상황에 주어진 업무가 BTS 콘서트에 대한 취재였던 것이다.
2019년 5월 BTS의 브라질 콘서트가 열리기 3일 전 콘서트가 열리는 스타디움에 방문했다. 사전에 이곳을 미리 방문한 이유는 벌써부터 많은 팬들이 스타디움 앞에 모여 대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통역을 도와줄 동료 한 명과 그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뭐야?
스타디움 앞에는 어림잡아도 수백 동은 되어 보이는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거의 작은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텐트 앞 거리에는 벌써 거기 있는 수많은 팬들과 한 팀이라도 된 것처럼 친근해 보이는 아저씨들이 다양한 BTS 굿즈들을 깔아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 자체가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그들과의 인터뷰였다. 우리가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고 다가가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아주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시작이 됐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들의 대답 하나하나가 모두 놀라웠다. 그들은 브라질 전역에서 모인 것뿐만 아니라 페루, 볼리비아, 칠레 등 남미권에 속한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10대들이 많다보니 비행 편으로 이동하기 부담스러워 며칠에 걸쳐 버스로 국경을 넘어 이동해 온 친구들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텐트를 치고 머문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약 3달까지 된 친구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당직과 같이 비슷한 개념으로 자리를 비워야 할 시에는 순서를 정해 서로의 텐트를 확인해 주는 나름대로의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텐트 안은 장기 노숙을 위한 각종 생활용품을 비롯해 이불과 매트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그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도 잠시 텐트 안에 누워볼 수 있었고 생각보다는 안락한 느낌에 경험을 위해 하루, 이틀 정도는 머물 수 있을 듯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안락하다 한들 몇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이런 장기 노숙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그들은 모르는 것인지 혹은 이런 '캠핑'을 즐겨 하는 이들이라 그런 것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들 또한 결코 안락하지 않고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에서는 결코 불편한 생활에 대한 불만이나 어려움에 지친 이들의 표정이 아니었다. 되려 모든 이들의 표정이 한껏 들뜨고 행복해 보였으며 이들의 입에서는 BTS를 향한 그리고 자신들의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들만이 나오고 있었다.
BTS를 알게 된 이후에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졌어요. 한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들도 알고 싶어져서 지금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또 한국어도 배우고 있구요.
나는 그들과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아이돌 문화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서두에 언급했던 대로 나는 아이돌 산업이 그저 대중성과 상업성에 치우쳐져 그들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들만을 집중적으로 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산업에 어떤 철학이나 가치관 혹은 숭고한 목적의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수익을 올리기 위한 행위들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어떤 목적 없이 맹목적인 추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에 설사 이들의 의도가 혹은 이 산업을 주도해오는 사람들의 의도가 그것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한들 그 이후 이들이 창출하고 있는 가치는 결코 나 따위가 감히 재단하거나 폄훼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브라질의 경우 공교육에 대한 시스템이 한국과 비교해서는 다소 체계적이지 못한 편이나, 이들은 공교육이 해결하지 못하고 책임져주지 못하는 부분들을 자신의 아이돌과 함께하며 삶을 긍정적으로 재생산해 내고 있었다. 그저 누군가 한 사람에게만 삶을 바꿔줄 선한 영향력을 미치더라도 대단한 일일 진대 BTS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콘서트 당일.
콘서트 문화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별거 아닌 광경일 수도 있겠으나 이런 대규모의 행사에는 몇 번 가보지 않은 나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콘서트장 주변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수많은 인파가 도로를 뒤덮고 있었다. 콘서트가 열리는 스타디움 주위는 그야말로 BTS 월드였다. 다양한 브라질 방송국 취재진들이 길거리에 줄 서 있는 이들을 향해 인터뷰하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브라질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로 된 플래카드들을 들고 있었다. 더 인상 깊었던 점은 10대들로만 가득할 것 같았던 콘서트에는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보호자로 보이는 여러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 한 결과 자녀들이 매일 BTS와 하루를 함께하며 자신들도 자연스럽게 BTS의 음악에 노출되었고, 그들을 통해 자녀들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들을 보고 자신들도 팬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나이, 인종, 성별 모든 것을 초월해 다 함께 BTS를 사랑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지나갈 때마다 그들은 카메라를 향해 엄청난 리액션들을 보여줬다. 아무래도 한국인이 들고 있는 카메라였기에 공연 혹은 한국 방송 관계자로 착각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줄을 서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BTS 굿즈를 손에 들고, BTS 노래를 떼창하고, 길거리에서는 BTS 음악에 맞춰 커버댄스를 추는 광경은 정말 말 그대로 BTS 테마파크에 온 느낌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수를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하는 모습에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공연 시간 1시간 전 스타디움에 들어서니 공연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5만 명의 아미들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떼창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분명 내가 있는 곳은 브라질이고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분명히 다 브라질 사람들인데 공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또박또박 한국어로 완벽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나라의 언어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노래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아무리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감격에 겨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BTS가 등장하기 전까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내내 떼창을 이어나갔다.
팬들은 콘서트가 끝난 이후에도 이들은 콘서트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듯 그룹별로 떼창을 이어나갔다. 브라질은 말 그대로 열정의 나라 그 자체였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어느 곳에서도 몇 달 전부터 콘서트장에 모여 텐트촌을 형성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의 열정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렬했고 콘서트를 포함해 그 전후로도 그 열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세 달이 넘는 이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는 이들, 그리고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울며 떼창을 이어가는 이들을 보며 예전이었다면 정말 광적이며 쓸데없고 그리고 의미 없는 그저 '소모'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그들의 지난 세 달의 시간이 나의 지난 세 달의 시간보다 훨씬 더 질적으로 짙은 농도의 시간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라는 두 가지의 시간대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말 그대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일반적으로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을 의미하며, 카이로스의 시간은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1년 365일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크로노스의 시간이지만 그중에서 생일이나 기념일 등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며 특별한 날이라고 지정하는 시간들은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올해는 새로운 도약의 해 또 변화의 해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의 카이로스의 때를 희망하고 기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이들의 지난 세 달의 지난 시간은 BTS라는 아티스트와 그들의 콘서트로 인해 의미 없이 반복되며 지나가는 크로노스의 시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카이로스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아티스트와 함께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처해진 환경과 여건을 긍정적으로 해결해나가며 성장해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누구도 이들이 길바닥에서 보내는 이 시간의 가치를 그저 폄훼하기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도 카이로스의 시간을 갈망하는 사람이기에 그들이 참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BTS라는 우리나라의 아티스트가 더 많은 이들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을 선사하는 선한 영향력의 아이돌이 될 수 있기를 응원하고 희망하게 되었다.
참고영상1. https://youtu.be/MzixEyTT8c8
참고영상2. https://youtu.be/teCJ1BnzLL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