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담 Nov 14. 2024

낙엽처럼 지는 삶

미련없이 가볍게

가을이 깊어 간다. 하늘은 유난히 푸르다. 산들은 형형색색의 옷으로 치장했다. 푸르던 잎들이 퇴색의 기운으로 미련 없이 내려앉는다. 낙엽은 떨어지면서 생을 이야기하고 뒹굴면서 소멸을 증명한다. 사라짐이 낙엽과 같아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무더운 여름 내내 지치지 않고 알을 낳던 꼬꼬들도 겨울나기를 위한 몸 추스리기에 들어갔다. 들판의 논과 밭도 휴경의 시간이다. 비워진 들판에는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농부들만 분주하다. 사색의 계절 가을은 비움의 시간이라 가능한듯하다.


농장으로 향하는 길가에 커다란 감나무가 몇 그루 있다. 무더웠던 여름, 안간힘을 다해 푸른 잎을 매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 고마운 친구다. 예측하기 힘든 혼돈의 기후, 단순하게 삶을 의지해 가는 감나무도 견뎌내기 힘든 건 미찬가지다. 무성했던 잎들의 조락이 예사롭지 않다. 맨땅에 떨어져 뒹구는 탈색과 변색의 조화는 속인의 발치에서 부서진다.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감들은 모든 걸 체념한 듯 무심하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고요하면 고요한 대로 몸을 맡기고 있다. 떨어지는 시간이 빠를지, 삭막한 가지 위를 분주히 오가는 새의 먹이가 되는 게 먼저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감나무는 그마저도 내려놓았다. 새들은 익지 않은 감은 먹지 않는다. 빨리 익기를 바라는 간절함인 듯 감나무 위를 나는 새들은 오늘도 바쁘다.


읍내로 나가는 대로변 가로수는 은행나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이 무렵이었다. 길은 양쪽으로 논들과 꽤 넓은 하천을 사이에 두고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우리를 맞이했다. 바람에 날리는 은행잎을 보며 아내는 탄성을 질렀다. 유난히 노란 은행잎을 좋아하는 아내다. 만삭일 때였다. 밤이 깊어도 태동으로 잠들지 못하던 아내가 갑자기 노란 은행잎이 보고 싶다 했다. 바로 차를 타고 도봉산 초입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늦은 밤, 조금은 차가운 밤공기가 느껴졌지만 은행나무는 밝고 따뜻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반은 잎을 매달고 반은 수북이 노란 융단을 깔아 놓았다. 아내는 신나게 은행잎을 모아 하늘로 흩뿌리며 좋아했다. 그때의 기억이 노란 은행잎처럼 선명하다. 지금 이곳에 은행나무도 우수수 잎을 떨구고 있다. 카퍼레이드 할 때 날리는 꽃가루 같다. 그 사이를 아내와 천천히 지나간다.


농장 주변 커다란 참나무들도 우수수 많은 잎들을 쏟아낸다. 나무의 크기만큼  매달린 잎들은 헤아릴 수 없다. 거목인 참나무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나 보다. 무수히 많은 도토리를 매달았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도토리가 보이지 않는다. 다람쥐의 겨울나기가 걱정이다. 열매를 버리고 생존을 택한 몸부림인지 잎들은 어느 해 보다 무성하다. 쏟아내고 쏟아내도 참나무에 달려 있는 잎들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쌓여 가는 양이 많아 바닥은 어느덧 푹신푹신 해졌다. 참나무 잎은 땅을 기름지게 하는 소중한 양분이 된다. 

연갈색 물이 들어가는 참나무를 배경으로 보이는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다. 낙엽 위에 누워 뒹굴며 양팔을 활짝 펴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 누가 보면 어쩌지라는 소심함으로는 누릴 수 없는 자유다. 


낙엽이 배경이 된 늦가을의 서정 속으로 들어가다 보니 문득 머릿속에 각인되어 오랜 시간 나를 이끈 문장이 떠오른다. "고독과 자유를 사랑하라!"라는 말을 노트에 멋진 글씨체로 휘갈겨 준 친구는 지금 어디에도 없다. 80년대 말,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목로주점에서 술 한잔하자던 그 친구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고교 시절 감히 엄두도 못 내는 대하소설과 고전, 인문학 서적들을 탐독하고 삶의 깊이와 성찰을 보여준 친구는 지금 흔적마저 찾을 수 없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며 함께 걸어도 그 친구는 남달랐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게와 연륜이 느껴진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런 친구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 친구는 나와의 어떤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이십 대의 절정에서 증발해 버렸다. 찾으려 했지만 아무도 친구의 행방을 모른다. 그 친구는 나에게 중용의 도를 가장 잘 실천하고 지켜 갈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부끄럽다. 중용의 끈은 위태위태하고 하루도 고요할 날이 없는 촌부의 날들이 이어진다. 세상의 낙엽들이 삶과 죽음의 편린들을 남김없이 보여 주듯 흩날리는 만추의 시간에 불현듯 낙엽처럼 사라진 친구가 그립다.


다시 아침이 오면 새로운 낙엽들은 먼저 진 낙엽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나는 조심스레 낙엽을 밟으며 하루를 여는 곳으로 간다. 낙엽은 소멸이 아니라 존재의 실체다. 존재는 그렇게 비워내고 바래가며 미련 없이 져야 함을 낙엽을 보며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골 장날엔 있어야 할 게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