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룡사터
여행을 다니며 뜻하지 않게 노숙도 여러 번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참 겁이 없었고, 청춘이라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절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안전했거나(?) 따뜻했는지 모른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취업을 위해 상경했고, 친구 D는 부산에 계속 살고 있었다. 우리는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은 여전했고 여행에 대한 갈망도 그대로였다. 그래서 서울과 부산의 중간쯤에서 만나 여행을 하기로 했다. 경부선 정차역인 구미나 김천 같은 곳에서 만나 인근 명소를 둘러보는 식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 나는 경주에 취재차 갈 일이 생겼고, 우리는 이때다 싶어 경주에서 여행을 하기로 했다. 경주에서 만난 우리는 경주의 유적들을 둘러보다 황룡사터를 찾았다. 경주를 여러 번 갔지만 황룡사터는 처음이었다. 절터에 뭐가 있겠냐 싶었는데 막상 그곳에 가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끝도 없이 넓은 들판에 크고 작은 돌이 박힌 광활한 터는 과거의 번성했던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절터의 매력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우리의 계획은 절에서 다시 한번 자는 것이었다. 절에서의 하룻밤 로망을 송광사에서 실현한 뒤 자신감이 생긴 우리는 저녁을 먹고 숙소를 잡으려다가 비구니 사찰이라는 인근의 한 절로 향했다. 밤 9시가 넘어 숙소를 잡기가 애매한 데다, 비구니 스님이면 우리를 보고 재워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두컴컴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절에 도착했다. 그런데 절 마당에 있던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우리를 보고 짓기 시작했다.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는 개 짖는 소리. 우리는 예상치 못한 개의 출현에 절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그냥 돌아가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때 불이 켜진 절집의 여닫이문이 획하고 열렸다. 그러더니 문 사이로 한 스님이 얼굴을 내밀고는 “누꼬?”하고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인자한 모습의 비구니 스님을 생각했던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앙칼진 목소리의 스님이었다. 밖을 내다보던 스님은 개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던 우리를 발견했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밤이 늦어 숙소를 구하지 못해 절에서 잘 수 있을까 하고 왔다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스님은 “안돼요. 내려가이쏘!”하고 매몰차게 말하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시도하긴 했지만, 예상과 달리 너무나 냉랭한 모습에 우리는 기가 죽었다.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늦은 시간에 어렵게 찾아왔는데 거절을 하더라도 좀 좋게 말할 수는 없었는지, 그동안 만났던 인자한 스님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냉대라 실망도 더 컸다.
어차피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어서 우리는 절에서 내려오며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민박집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은 황룡사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노숙. 아무런 건물도 없이 탁 트인 넓은 터라면 여자 둘이서 밤을 보내도 안전할 것 같았다. 사실 밤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인데, 그런 절터에는 사람도 없겠지 싶었다. 하긴 한밤중에 아무것도 없는 터에 누가 오겠는가. 그때가 5월 즈음이었으니 춥지도 덥지도 않아 밤을 보내기에 날씨도 적당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소주와 안주거리를 사 들고 절터 한가운데로 갔다. 캄캄한 밤이었지만 들판 가운데로 가니 달빛과 별빛에 오히려 환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반반한 바위를 찾아 짐을 풀고 앉았다. 그날 밤 바위에 기대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른다. 한참을 얘기하다 졸리면 스르르 잠이 들고 그렇게 밤을 보냈다. 새벽녘 이슬비가 내려 살짝 한기가 돌 땐, 몸을 밀착해 옷을 덮고 서로의 체온으로 버텼다.
청춘의 밤에는 따뜻한 방도 푹신한 침대도 필요없었다. 따뜻한 영혼을 가진, 마음이 맞는 친구 하나면 족했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 모두 방이고 침대고 베개였다. 절터에 남아 있는 수천 년 전의 성스러운 기운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 같았고, 머리에 기댄 오래된 돌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 후 황룡사터에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었지만, 경주에 갈 일이 생겨도 황룡사터엔 쉽게 발길이 닿지 않았다. 터만 남아 있던 그때와 달리 관광지가 됐다고 하니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궁금했다. 무엇보다도 그때 우리가 기대어 잤던 돌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다 얼마전 경주에 갔다가 우연히 황룡사터를 찾게 됐다. 화창한 봄이라 광활한 터는 푸른 옷을 입고 있었고, 초록 사이사이에 오래된 돌들이 박혀 있었다. 넓은 터의 한쪽에는 황룡사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황룡사역사문화관이 한옥 건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또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라면 청보리밭이 넓게 조성돼 있었고, 보리밭에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청보리밭을 지나 황룡사터 쪽으로 갔다. 황룡사가 있던 터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천년 세월의 이끼가 낀 돌들이 풀과 함께 바람을 맞고 있었다. 20여 년 전과 같은 풍경에 가슴이 다시 뛰었다. 광활하고 황량하고 적막한 절터를 가득 채우는 하늘과 바람. 나를 매혹시킨 절터의 매력은 이런 것이었지.
다만, 돌 사이에는 그때와 달리 표지판이 놓여 있었다. 천년 전 절과 탑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도록 설명이 적혀 있었다. 돌의 위치를 하나하나 헤아려보다 들판에 우뚝 놓인 커다란 돌덩이를 발견했다. 아! 우리가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잔 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설명을 읽어보니, 아뿔싸! 그 돌은 바로 황룡사 구층목탑의 심초석이었다. 탑을 지탱하는 중앙 기둥의 주춧돌이었던 것이다. 그런 중요한 돌인지도 모른 채 그저 바람을 막으려고 제일 큰 돌에 기대어 밤을 보냈던 그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다시 그 돌에 기대어 앉아 꿈쩍하지 않는 세월을 힘껏 들어본다. 잡을 수 없는 시간과 지난 역사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심초석 주변을 서성거리며 시간의 의미를 오래도록 헤아려 볼 뿐. 아무것도 아닌 돌이 초석이 되고 탑이 되어 황량한 들판에 쌓아 올렸을 그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무엇이 되는 사이 지나간 그 모든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