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몇 개월에 한 번씩 거주지를 옮기며 글을 쓰고 발표를 하고 다시 새로운 공간을 찾고 거기에서 뿌리내리고자 애쓰는 일은 분명 고역이다. 게다가 그런 사람이 따지는 것도 많고 까다롭기까지 하다면? 그리고 그게 직업의식을 가지고 평생을 하고 싶은 일에 반드시 동반되는 수고로움이라면? 해도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면? 1년이 지난 지금은 진지하게 전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생 때 꿈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교수였고 그러다 갑자기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외교관으로 꿈이 바뀌었다. 고등학생 때는 진지하게 소설가나 통역 및 번역가를 꿈꿨던 것 같다. 물론 중간중간 다양한 꿈들이 있긴 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진지하게 무엇이 직업의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될 지 생각해본다. 공부와 연구를 평생 하고 싶지만 직업으로는 교수가 되고 싶다. 내가 가진 성향과는 정반대로 노마드적 성격이 강한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졌다는 뜻이다. 나는 커갈수록 한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읽고 쓰고 해석하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교수로 한 곳에 진득하고 불안하지 않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10~15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 과정에는 운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나 하나의 방 한 칸을 온전히 마련하고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내가 매번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묵직하고 꼼꼼하고 구체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져버렸으니 이제 전략이 필요해졌다. 연구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본이고) 온갖 개인사를 잘 관리하며 동시에 에너지를 내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비판과 논쟁을 주고받고, 때로는 취미생활도 공유해야 하는 나와는 너무 다른 성격의 직업... 이렇게 되었으니 더 극단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다. 아주 체계적인 식사(되도록이면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간단한 것으로)와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운동에 익숙해지는 것(예컨대 달리기나 기본적인 근력운동),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최대한 정해두고 같은 일정을 반복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 스스로가 절대 못 참는 것들을 알고 있는 것,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는 것(예컨대 사진, 영화, 책 - 보통 어디에나 예술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향유할 능력이 있으면 되기는 한다) 등등. 그리고 이런 것들을 장소가 바뀔 때마다 빠르게 적용하여 일주일 이내로 적응하는 것. 여행의 유통기한처럼 7일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
핵심은 이렇게 효율성에 기반을 둔 규율이 제대로 지켜지는 일이 드물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고통스러울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뜻하지 않는 일들과 불행, 난관 등은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특히 이제 나는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직접적인 돌봄이 아닌 상황에서는 엄청난 외로움을 온 몸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도.
자주 쓰는 공책 맨 앞 장에 이런 말을 써두었다.
- 아침마다 연구실이든 도서관이든 책상 앞에 다시금 앉아 읽고 쓸 수 있다면, 어디든 다녀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