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
80년대. 그 시절 아이들의 최고 음식은 당연 짜장면이었다. 졸업장을 가슴에 품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중국집에 들어가 먹는 짜장면 한 그릇. 그 맛은 이루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실로 생애 최고의 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 짜장면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비록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유행가 노래가사의 슬픔이 있기는 하지만 밥 세끼 챙겨 먹는 것조차 힘들던 시절 그것은 내 부모에게는 남루한 가장의 권위를 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음식이요 자식들에게는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말 그대로 우리들의 소울 푸드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한국인들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짜장면이 한 때 수난을 당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짜장면”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우리가 여태껏 일상생활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해 왔던 “짜장면”이 쌍지읒의 “짜장면”으로 불리면 안 되고 홑 지읒 “자”를 써 “자장면”이라 불러야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혹 서럽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해 왔던 “짜장면”이 왜 “짜장면”으로 불리면 안 된다는 것인지 그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장면”이라고 하는 홑 지읒 발음이 무엇을 근거로 해서 표준 발음이라고 하는 것인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우리 부모가 평생 써왔고 나와 내 자식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짜장면”이 왜 “짜장면”이라고 불리면 안 되고 꼭 “자장면”으로만 발음해야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짜장면”과 “자장면”의 발음 논쟁은 2011년 끝이 났다. 국립 국어연구원에서 “짜장면”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다. 참으로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복수 표준어. 그 간단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도 질겼던 다툼을 그처럼 쉽게 마무리 지어버릴 수 있다니. 나는 그 말할 수 없는 규칙의 단순함에 그저 할 말을 잊고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짜장면” 과 같은 발음 논쟁은 우리 사회에 더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도 잠시, 짜장면으로 한숨 돌렸던 사회적 안심은 금세 깨어져 버렸다. 그와 같은 일이 다시 한번 벌어진 것이다. 바로 “효과”라는 단어로 말이다.
요즘 TV 시청을 하고 있으면 아나운서들이 유독 “효과”라는 발음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효과”의 뒷 글자 “과”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쌍 기역 발음인 “꽈”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십수 년 전이었다. 공무원 채용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시험에는 국어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나는 늦은 나이에 팔자에도 없이 난데없는 국어 공부를 해야 했다. 그때 내가 본 국어 수험서에는, 우리나라 언어인 한글에는 한국인의 신체적 특징과 한글의 고유한 언어 구조로 된소리 발음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고 되어있었다.
한국인의 신체적 특징과 한글이라는 언어구조. 그렇다면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한글을 사용할 때 발생되는 된소리 발음 현상은 지극히 당연스러운 일이라는 뜻이 된다. 즉 이는 “효과”를 된소리 발음인 “효꽈” 로 발음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모든 사람들이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는 “효꽈”를 꼭 “효과”로 발음하라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수험서에는 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었다. 그것은 된소리를 사용하면 언어가 탁해지고 생각이 거칠어져 사회가 각박해진다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들로 되도록이면 된소리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수험서에서 말하는 사회적 부작용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또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지도 말이다.
나는 국립 국어연구원에서 무슨 기준으로 한글 표준 맞춤법을 정하는지 잘 모른다. 1443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창제하며 짜장면과 효꽈를 자장면과 효과라고 발음하라고 한 것인지 그것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보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여러 학자들이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심도 깊은 연구와 사고를 통해 표준어를 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했던 짜장면이 결국 표준어로 인정된 것을 보면 언어의 법칙은 영구불변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니 효과라는 단어 또한 효꽈의 쌍기역으로 발음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만약 국립 국어연구원에서 표준어를 제정하는 그 기준들이 불변의 법칙이었다면 짜장면은 영원히 자장면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변한 것은 세월밖에 없고 짜장면이라는 세 글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이기에 말이다.
이를 볼 때 표준어가 아니었던 짜장면이 세월이 지나 표준어가 되었다는 것은 애당초 우리가 발음하고 있었던 짜장면이라는 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반증이 된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바꾸어 말해 보면 결국 국립 국어연구원의 표준어 인정 원칙과 기준들이 그 시절 그만큼 유연하지 못했다는 해석 밖에는 될 수 없다.
언어는 인간이 만든다. 언어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태초에 모든 것들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
니다. 언어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용, 변용되는 것이며 생성, 성장, 소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간의 말인 언어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아무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굳이 잘 못 되었다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고쳐 쓰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도무지 그들의 규칙을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다.
2020.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