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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토 Oct 09. 2022

더 문 (2009)

인간성의 역설

'더 문'(영제는 그냥 Moon) 이라는 제목에서 보시다시피 이 영화는 달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달 표면에서 친환경 에너지를 채굴하는 일을 하는 계약직 직원 '샘', 그리고 3년간 홀로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하는 그의 곁을 지키는 로봇 '거티'가 전부인 데다, 배경은 그가 일하고 생활하는 달 표면의 기지가 전부인데요, 우주 영화라 하기에는 얼핏 보잘것없어 보이는 스케일입니다. 그러나 저예산으로 제작된 SF 독립영화 중에서는 숨은 명작으로 여겨지는 작품이지요.

 


저는 이 영화를 이전부터 반전으로 알고 있었어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반전은 이미 스포 당한 상태로 보게 되어 재미가 반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전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뭐 2000년대에만 들어서도 이미 뻔한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반전이기에 그것의 정체를 공개하는 데 시간을 질질 끌었다면 오히려 촌스러운 영화가 되었겠지만 생각보다 초반부에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게 밝혀지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좋겠지만 어느 정도 미리 알고 봐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스포일러 구간으로 빠르게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전에 이 영화의 추천 포인트를 이야기하자면 '손난로 같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요, 열심히 흔들면 서서히 열이 오르는 손난로처럼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미지근한 손난로를 계속해서 흔들듯이 눈앞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집중하다가, 끝난 후에 곱씹어 볼수록 참으로 따뜻한 이야기였구나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 너무 슬프고 감정을 쥐어짤만한 연출이 가능한 상황인데 보여지는 것은 생각보다 드라이하거든요. 도대체 이 손난로는 언제쯤 따뜻해지는 걸까 싶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손이 데일 정도로 뜨거워져 있는 것처럼 돌이켜보면 이렇게 인간적일 수가 없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주인공 샘은 달에서 일하며 계약한 3년을 거의 다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구에 있는 아내와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반복되는 일상을 홀로 힘겹게 버티고 있지요. 얼마 전부터 알 수 없는 두통을 겪는 그는 점점 나빠지는 몸 상태에 환각을 보기도 하고, 그 때문에 손에 화상을 입기도 합니다. 그러다 고장 난 채굴기를 고치러 가는 와중에 사고로 쓰러지게 되지요.

샘이 쓰러져 있는 동안, 원래 샘의 자리에 또 다른 샘이 나타납니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자연히 그가 사고를 당한 샘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곧 거티가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고 믿는 '샘 2'가 사고 현장에서 '샘 1'을 구해 오면서 두 명의 샘이 함께 등장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반전은 샘이 사실 복제인간이라는 것인데요, 원본 샘의 기억을 이식한 복제인간들은 3년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수명을 다해 새로운 클론으로 대체되는 것입니다. 두 명의 샘은 모두 자신이 원본이고 상대방이 클론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그들 모두가 클론이고 같은 비극적 운명을 공유한다는 것이 드러나지요.


그 이후 샘이 어떻게 지구로 귀환하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둘은 함께 돌아가려고 했으나 샘 1의 신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자신의 죽음을 짐작한 그는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샘 2만이 지구로 돌아가 클론을 착취하는 기업의 행태를 폭로하며 희망적으로 끝이 납니다.



줄거리만 보았을 때 이 영화는 크게 특별하지 않습니다. SF에서 복제인간은 단골 소재이고, 복제인간을 통해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우하는 것이 얼마나 참담하고 비극적인지 보여주려는 시도는 많이 있어왔지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수는 있습니다. 달에서 채굴한 에너지로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모습을 한 지구의 뒷면에는 그저 일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너무나도 쉽게 대체될 수 있는, 그럼에도 자신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진 존재라는 헛된 희망을 믿고 있는 수많은 클론들이 있다는 것, 이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달까지 나가지 않아도, 인간을 복제하고 기억을 이식하는 기술이 없다고 해도, 이미 샘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또 바로 우리가 그들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법이 있을까요?


사랑하는 가족과의 행복한 삶은 거짓이었고 앞으로도 진실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샘의 절망 앞에서 달에 뜬 지구는 너무나도 푸르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샘의 클론들이 보이는 태도, 로봇 거티의 태도, 그들 사이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 샘이 대면하게 될 때, 그들은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대로 상대방의 존재에 기겁하거나 혐오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서로를 떨떠름해하고 불편해하지만, 클론의 존재를 가뿐히 받아들이죠. 상대방이 클론이고 자신은 원본 샘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믿음이 얼마 안 가 깨지는 데도 특별히 심각한 정신적 혼란을 겪지 않습니다. 자신이 단 하나의 존재가 아니고, 삶이 송두리째 거짓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도요.



'샘 1'은 3년 전 자신의 모습을 꼭 닮은 '샘 2'에게서 감정적 위안을 받으려 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몸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가지만, 나와 같은 추억을 가지고 나와 같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상대방이 곁에 있기에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모습을 보이지요.


'샘 2'는 클론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진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에 좌절하고 끔찍한 운명을 한탄하기보다는 지구로 귀환하여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합니다. 그리고 결국 성공해내지요. 그가 그러한 낙관적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운명과 맞서 싸워야 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가 아닌, 곁의 또 다른 자신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샘 1'은 비록 지구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또 다른 샘이 탄 우주선이 지구로 향하는 것을 보며 편안히 눈을 감았죠. 그들은 목적을 위해 생산된 클론이었지만 그들 사이의 유대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었고, 그 인간적이고 따뜻한 관계 속에서 희망이 싹틀 수 있었습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등장인물이 인공지능 로봇 '거티'인데요, 거티야말로 샘이 지구로 돌아가는 데 정말 큰 공을 한 존재입니다. 영화에서 여러 번 거티는 순수한 마음에서 샘을 돕습니다. 에너지를 채굴하는 회사와 그 회사로부터 프로그램된 로봇인 거티의 입장에서 샘이 클론이라는 사실, 더 많은 클론들이 있다는 사실, 지구와의 통신 위성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작동을 막아 두었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비밀이 되어야 하지요. 하지만 거티는 샘을 돕고 싶다는 동기에서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 조력자가 되기를 선택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프로그램에 완전히 반하는 선택이더라도요. (필자는 거티가 이렇게 착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역시 기계는 기계일 뿐이라고 여겼던 걸까요. 끝까지 의심한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더군요..�)


우리 거티 착해요



로봇과 복제인간, 감정과 자아를 가지고 있으나 그럼에도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여겨지는 존재들, 그들은 만들어진 대로의 자신이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하는 삶을 사는 진짜 자신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반면 지구에 있는 실제 인간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효율과 이익만을 따지는 기계와도 같지요. 인간성의 역설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클론과 기계, 그리고 인간성은 찾아볼 수 없는 인간들, 대체 인간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프로그래밍된 존재가 아니야. 우리는 사람이야.



제가 SF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래서인 것 같습니다. 똑같은 '인간성의 상실'을 표현하기 위해 리얼리즘적인 작품은 인간들이 서로 헐뜯고, 깔아뭉개고, 소외되는 비극만을 보여줄 수 있다면 SF는 과학적 상상력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를 돌아볼 수 있게 하지요. 훨씬 더 부드럽고, 희망적이고, 따뜻한 방식으로요. (누가 SF는 딱딱하다고 그랬느냐...)



1시간 30분짜리 짧은 영화니까 한 번쯤 보기를 추천드립니다. 감독이 박찬욱 감독의 팬이고 한국을 좋아해서 영화에 한국어나 한글이 종종 등장해요. (예를 들어 주인공이 생활하는 기지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또한 배우 샘 록웰의 1인 2역 연기가 대단합니다. 배우 한 명이서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사실 SF영화 중에서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꼽을 수는 없겠지만 글이 길어지는 것 봐서 꽤 깊은 감명을 받긴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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