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한 포기도 계획적으로
내 머릿속에서 내가 원하는 텃밭의 이미지는 늘 타샤튜더의 정원과 비슷한 것들이었다. 그 집은 텃밭보다는 화단에 가까웠지만 무질서하게 자라난 화초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규칙, 자유로움에서 느껴지는 흐드러진 아르다움, 진정한 농부의 사람이란 그런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첫날부터 그런 나의 결심은 무너졌다. 땅을 고르고 일단 한 번 구역을 나누고 나자 구역별로 작물을 심어야 한다고 했다. 생육시기도 다르고 관리 방법, 물 주는 양. 뭐 하나 같은게 없다보니 구역별로 나눠놔야 관리도 쉽고 수확도 쉽고 가을이 와 가을 농사를 지을 때도 솎아야 될 양이 작으니 훨씬 쉽다고 이야기했다.
각자가 심고 싶은 작물을 씨앗이나 모종을 구해 다시 만나기로 한 날.
엄마는 초록창에 텃밭 농사 작물이라 치면 어떤 밭에나 크고 있을 법한 작물들의 씨앗을 가져왔다.
당시엔 흔하디 흔한 그 작물들을 보며 신기한 걸 심으라고 엄마를 부추기기도 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심는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한식이 기반인 밥상엔 어디엘 더해도 좋은 재료들이었다.
반면에 초보 농부인 나는 나의 노력을 더한 가치가 창출되는지에 대해 좀 더 집중했던 것 같은데 그 기준은 집앞의 오일장이었고 그곳에서 구할 수 있는 값보다 저렴하면서 나의 노동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범위내의 작물들을 찾아 헤맸다. 작물의 가격, 씨앗의 가격, 나의 노동력의 가치를 셈하면서 나는 시장에서 판매되는 농작물들이 얼마나 헐값에 팔리고 있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는데 흉작이나 가뭄등의 위험요소를 더 계산한다면 정말이지 우리가 매일 사먹는 농작물의 가격은 말할 수도 없을만큼 터무니없었다.
여러 조건들을 조합해 본 결과 결국 나의 첫 농사, 첫 농작물이 될 아이들은 허브류가 주를 이루는 서양식 요리재료가 주를 이뤘다. 루꼴라부터 바질, 래디시, 할라피뇨까지. 다 백화점 수입작물칸을 가지 않으면 구하기 힘든 작물들.
나의 상식선에서 씨를 틔우는 것이 힘이 들 것 같은 아이들은 특별히 모종화분을 구입했다. 아무래도 이미 싹이 튼 화분이니 비교적 키우는 게 쉬울 거라는 계산이 들어 있기도 했다.
딜, 고수, 로즈마리, 스피아민트, 이태리 파슬리.
모종으로 구입한 작물들. 지금 보면 아무 생각없이 닥치는대로 골라 잡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땐 나름 신중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가며 며칠에 걸쳐서 고른 아이들이었다. 이틀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엄마랑 시간을 맞춰 밭에 가 씨앗과 모종을 심었다.
그제야 이 그림같은 아이들이 다 내가 키울 수 있는 작물로 탈바꿈했다. 요리로 된 모습만 본 작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커갈까 생각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신이 났는데 노지의 흙에다가 심고나니 드디어 온전히 내 것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때쯤부터였을까?
왠지 모를 책임감이 생격난 건.
될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농사는 어느새 내 일상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