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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 Jan 02. 2019

뜻밖의 선물



얕은 경사가 진 텃밭에서 가장 큰 문제는 농사에 꼭 필요한 물의 수급이었다. 50~100평 여 되는 부지의 땅이 세 군데 정도 나눠져 있었고 이 곳에서 사용되는 물의 대다수는 물탱크에 의존한다. 그런데 그 물탱크라고 하는 곳의 물을 채우는 일이 구청에서 관할하는 일이라 뜻대로 물이 차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했다. 구민복지에 신경을 쓰느라 바쁜 구청에선 도시민들의 한가로운 텃밭 관리에 인력을 차출하길 꺼려하는 것 같았다. 


대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농수로의 물을 사용하거나 인근의 개울가에 가서 물을 생수통이나 조리개에 담아오는 거였는데 농수로는 비가 온 직후가 아니면 보통은 이끼가 자생할 정도로 얕게 물이 겨우 흐를 정도라 쓰임이 일정치 않았다. 


개울가는 밭에서 떨어져 있으니 가는 길이 멀고 다른 이의 논둑길을 걸어 가야해서 이동이 조금 힘들긴 했으나 다른 방법에 비해 개울가에서 물을 뜨는 일은 쉬우니 편의를 떠나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팔공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차갑고 맑은 물이 굽이치는 개울을 따라 둥근 자갈을 넘어 유속을 달리하며 흘러가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갈증이 가실만큼 시원하고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개울의 가장자리엔 가지각색의 나무와 풀들이 자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물을 뜨는 잠깐 동안 땀을 식히고 맑은 공기를 마시기에도 좋았다. 가죽나무는 개울가 옆의 많은 나무들 중 하나였다.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으나 특유의 독특한 향이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가죽나무, 또는 참죽나무. 새순이 뿜어내는 향은 개울가에 물을 뜨러갈 때마다 나를 사로잡았다. 어릴 때 먹던 가죽나물의 향과 독특하고 부드러운 맛. 한 날은 물을 뜨러 개울가로 내려갔다가 점퍼 주머니에 잎이 여린 어린가죽나무의 순을 따왔다. 딱히 어떻게 해 먹었겠다 계획은 없었으나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만 먹어도 맛있으리란 생각때문이었다. 






점퍼 주머니에 담아 온 가죽 나물은 집에 오자마자 개끗히 씻어 채반에 물을 빼내고 튀김옷을 준비한다. 튀김에 얼음 조각을 몇 넣으면 바삭바삭한 튀김이 된다는 건 어떤 요리책에나 다 나올만큼 흔한 팁이니 얼음도 꺼내고 튀김가루를 꺼내 아주 차가운 반죽물을 만든다.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사는 자취인생이니 기름은 구이용보다 조금만 더. 튀김을 할 때면 언제나 생각하는 게 필요한 만큼 다 튀기고 남는 기름을 키친타올 5장으로 다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머리 속으로 그 정도의 계산을 생각하고 있다면 필요한 기름양이 어느정도 정해진다. 튀김기나 튀김용 냄비가 없으니 오목한 궁중냄비로 작은 것을 준비한다. 튀김가루를 묻히고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내면 끝. 별다른 요리라 할 것도 없이 계절에 잘 맞는 맛있는 가죽튀김이 완성된다. 간은 초밥용 간장에 와사비를 조금 곁들이면 부족한 느낌이 다 채워지는 것 같아진다. 





향 좋은 여린 가죽을 기림에 튀기면 그 부드러움이 한층 배가 되는데 이때의 기분은 마치 봄을 뜨겁고 바삭하게 데워 입 안 가득 채워넣는 것만 같다. 내가 심은 씨앗은 아직 싹이 트지 않았고 모종은 내 것이라 불릴게 하나도 없는데도 텃밭에선 얻는 것들이 생겨났다. 




작은 텃밭, 열 평 남짓한 이 곳에서 나는 것들이 모두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내 밭에서 얻는 게 모두가 아니었다. 


자연이 내게 주는 것들, 한 발 뗄 때마다 내 손에 주어지는 것들이 모두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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