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아 Oct 13. 2022

삶은 계란이다

노량진ver.

  삶은 계란이다.
  부분 동의한다. 24살의 이현아에게 삶은 계란이었다.

   2017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현아는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몸만 커버린 그녀는 뭔가를 스스로 해내기엔 벅찬, 아직 미성숙한 어른이었지만, 그 바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표류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해내고 싶었다. 그 무언가가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섣부른 도전 정신만큼은 충만한, 몸만 큰, 머리는 덜 큰 그녀는 선장도 없고 길도 없는 막막한 가운데 스스로에게 취준생이라는 명찰을 달고 노량진이라는 기묘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실제로 노량진은 비 오는 날이면 정말로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곳이었다.

  이현아는 지금도 눈만 감으면 노량진 그 골목이 눈에 선하다. 담배 연기, 맨발에 슬리퍼, 회색 추리닝... 사실상 그곳의 모든 이들은 개미와 같았지만, 그 개미의 종류도 크기도 천차만별이었고 이현아는 거기서 나름의 상류층 개미였다. 그녀의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가난하진 않았고, 당신의 딸에게 최선의 환경을 제공했다. 개중 가장 깨끗한 건물, 1.5룸, 매달 보내주는 정성스러운 반찬들. 그러나 이현아는 당시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은 수험생으로 모든 속세의 유혹에서 벗어나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는, 아무도 시키지도 바라지도 않은 신념이었다. 그 신념 때문에 지갑에 돈이 많아도, 길거리 음식의 냄새가 아무리 유혹적이어도 그녀는 묵묵히 집으로 가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신체 사이즈로 인해, 그녀는 하루 세 끼 밥을 다 챙겨 먹어도 종종 허기짐에 시달렸다.

  그때 그녀는 계란이 좋은 간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문득 떠올리고는 바로 실천했다. 삶은 계란은 완전 식품이라고 어린 시절부터 세뇌되었기 때문에, 몸에 좋은 계란을 최소한의 가공만을 거쳐 많이 섭취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 한 번 삶을 때 10알. 그리고 삶은 것은 냉장 보관하였다. 어느 날은 한 알을 먹고, 또 어느 날은 두 알을 먹었다. 배가 유독 고픈 날에는 세 알을 먹었는데, 그 와중에 노른자에는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했던 것이 떠올라 그 세 알 중 하나는 노른자를 빼고 먹기도 했다.

  그때 이현아는 삶은 계란은 대체 며칠 이내에 소비해야 알맞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번 삶아 놓은 계란은 무조건 5일 이내에 다 먹어야겠다는 자신만의 규칙을 세웠다. 10개를 5일 이내에 섭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주기적으로 냄비에 계란을 삶는 것은 또 하나의 의무적인 집안일이 되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원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자취방에 들어와 청소와 빨래 널기를 한 뒤 계란을 삶는 것은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든 수험생에게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란 간식은 간편했고, 사치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에도 부합하는 음식이었기에 그녀는 주기적으로 계란을 삶았고, 이는 곧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규칙은 변질되는 법. 삶은 계란을 5일 이내에 소비해야 한다는 규칙은 어느 순간 5일에 한 번씩은 무조건 계란을 삶아야 한다는 규칙으로 변질되었고, 사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잘못될 것도 없지만, 기이한 노량진의 삶의 패턴 속에서 그녀는 그녀 자신이 세운, 그러나 변질된 그 규칙을 변태같이 지켜 내는 의미 없는 의무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5일마다 10개씩 계란을 삶아대니, 30개짜리 계란 한 판을 사면 1인 가구임에도 불구하고 3 주면 그 한 판이 다 소비되었고, 거의 매일 계란을 먹었기에 팔꿈치, 옷소매, 필통 속같이 뜬금없는 곳에 계란 껍질이 붙어있기도 했다. 심지어 잠자다가 옷 속에 뭔가 거슬리는 느낌이 들어 브라 속을 들춰보니, 그 안에 계란 껍질 쪼가리가 들러붙어 있기도 했다. 이현아는 점점 계란에 시달라고 있었다. 정말로 그녀의 삶은 계란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계란을 삶은지 5일차가 되는 날에 다 먹지 못한 계란이 있는 날에는 밥 대신 계란만 한 번에 다량으로 먹기도 했다. 그렇게 계란을 먹어대니 살은 점점 빠졌고, 그녀 몸에서 더 많은 계란 껍질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본 후 충격적인 점수를 마주하고 그녀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몸에 힘이 없고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으며 어지럽기까지 했다. 걷는 도중 지나가게 된 어느 식당의 더러운 유리창을 통해 그녀는 그녀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고, 얼굴 살이 쏙 빠져 광대가 툭 튀어나온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자 문득 크게 서러워졌다. 그 길로 이현아는 자취방으로 빠른 걸음을 해 돌아갔고, 평소 먹고 싶었으나 참았던, 신념에 어긋나는 배달 음식인 엽기 떡볶이를 시켰다. 잠시후 뜨거운 기운을 담아 음식이 도착했고, 떡볶이 포장을 풀어내는 순간 그 음식의 냄새는 그녀에게 설렘, 낯섬, 흥분, 그리고 약간의 죄책감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때 그녀의 뇌리에 스치는 한 생각. 아 계란... 냉장고에 몇 개 남았더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녀를 기다리는 말간 계란 다섯 알. 이현아는 아무 생각 없이 계란 다섯 개를 전부 까 떡볶이 안에 우르르 쏟아 넣었고, 다시 아무 생각 없이 계란을 먼저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네 개째의 계란을 먹었을 때, 그녀는 배가 터질 듯이 불렀다. 그녀는 무표정으로 남은 떡볶이를 쳐다보았고, 이윽고 한없이 우울하고도 우울한 기분에 잡아먹혀 버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