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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Nov 03. 2022

엄마와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 장례식 이후

[늘 그랬듯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


엄마는 왜 엄마일까요?

나를 낳아서 엄마이지요.

그런데 낳아줘서 엄마라고 하기엔 부족합니다.


다른 것으론 설명 부족한 '엄마'의 존재는

엄마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게 만듭니다.


나는 엄마의 존재가 크게 느껴지는데,

엄마의 존재만으로 큰 안심이 되는데,

그건 엄마가 나를 낳아줬기 때문만으로 그런 건 아니지요.


엄마가 왜 나에게 엄마로서 큰 존재인지 그 이유를 알고 싶진 않습니다.

그냥 엄마는 영원히 이유 없는 존재였으면 합니다.

평생 엄마는 나에게 불가사의하고도 무한한 존재일 테니까요.


그런데 엄마도 엄마가 있겠지요.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무한한 커다람을 느끼며 살아왔겠지요.

엄마가 그런 엄마를 잃는 것은 엄마에게 커다란 무한함이 소멸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엄마에게 엄마의 엄마가 해결되지 않을 이유 없는 존재로 영구히 남는 것일까요.


전 아마 후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결사건으로 남긴 채 끝없이 엄마와 그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을 거란 것을

오늘 새삼 깨달았습니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우는 건 흔치 않았습니다.

(간접적으로 엄마의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를 보고 눈물 지은 적은 많지요.)

엄마가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우는 것을 보는 것도 흔치 않았습니다.

(소리 죽여 우는 것은 많았겠지요.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 모르게 울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 엄마의 흔치 않은 모습을 보아서,

나는 정말로 심장이 아팠습니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의 죽음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나는 외할머니의 소천으로 슬펐지만,

그보다 더 사실은 나도 언젠가 엄마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참 많이 슬펐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일이 될 것이란 것이 와 닿더군요.


엄마는 영원히 엄마의 엄마를 생각하겠지요.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만큼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사랑하겠지요.


그래서 엄마가 슬퍼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외할머니에게 엄마가 슬픔과 눈물이라는 주머니 안에

사랑을 가득가득 담아 올려 보낸 것 같았습니다.


외할머니라는 호칭보다는,

엄마의 엄마라고 하는 편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쉬운 것 같습니다.


엄마를 낳아줘서 엄마의 엄마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엄마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에게 무한한 이유 없음의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의 사랑이 나에게 향할 수 있던 것은 엄마도 그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겠지요.


장례식이 끝나고 엄마를 태우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엄마가 운전을 하는 내 옆에서 울었습니다.

하도 조용히 울어서 나도 눈물이 조금 났지만

엄마의 울음을 모른 척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갑자기 나보고

"현아가 엄마의 딸이라서 엄마는 너무 행복해."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 앞에 다 와서 서로를 꼬옥 끌어 안고

조용히 울었습니다.


엄마의 저 고백은,

엄마의 엄마가 언젠가 엄마에게 해 줬던 말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언젠가 누구에게 저 말을 할 수도 있겠지요.


엄마의 고백이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엄마의 오늘이 유독 슬픈 날인 탓도 있겠지만,

엄마라는 이유 없는 무한함의 존재가 물리적인 시간으로 무한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새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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