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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봄 May 01. 2023

내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건

독서교육을 실천하며 사는 삶

현주야, 너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어? 라고 물었을 때 스스로 답했던 문장들을 기억한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고 이 세상이 좀 더 올곧은 세상이 되도록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글과 문학을 사랑하는 내가 나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실천하고자 한 방법은 바로 글쓰기와 독서교육이었다. 누군가는 내 말을 듣고 임용을 봐서 국어 선생님을 해도 되지 않냐고 물었지만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평생을 정답이 정해져 있는 공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의 답을 말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마음속으로 늘 품고 살아가다가도 어떠한 계기로 인해 세상 밖으로 발현되어 확신으로 이어지는 때가 있다. 내게는 학생들을 처음으로 만난 순간이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늘 머릿속으로만 그려 왔던 학생들을 실제로 만나고 마음이 일렁였던 나의 경험을 상담 선생님에게 공유했을 때, 과거와 현재의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래서 내 지도교수님 같은 분이 되고 싶었으며, 독서교육에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구나. 그리고 앞으로 독서교육은 나의 삶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겠구나.


설렘과 불안을 가지고 준비한 첫 수업은 늘 진정한 나를 찾고자 했던 내게 자긍심을 안겨 줄 정도로 성공적으로 끝이 났지만 한 학생의 말이 수업을 끝나고도 맴돌았다.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어 선생님이 꿈이라던 아이. 자신의 얘기를 하며 울컥하는 목소리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해져 온다. 공부만 하면서 살아가다 보니 좋아하는 것과 인간관계, 삶의 낙을 포기했다던 아이는 중학교 첫 시험을 망쳤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남과 비교하게 되고 자존감도 깎였으며, 시험을 망쳤더니 꿈을 포기해야 될 것 같고 더 이상 살 이유도 없는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


책을 읽고 가볍게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깊은 고민을 꺼낸 아이의 말을 듣고 짧은 순간에 어떤 말을 해 줘야 될까 고민했다. 동시에 생각이 들었다. 시험이 뭐라고 저 아이의 삶과 행복을 앗아가는 걸까. 고민 끝에 진심 어린 위로와 조언을 건네고 자리는 마무리되었지만 아이의 말은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 나 역시도 그랬듯이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다짐을 했다. 내가 저 아이의 삶을 책임져 줄 수는 없겠지만 이 수업에서만큼은 편안하고 쉬어 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자.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시간을 만들어 주자.


나 역시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청소년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 시기에 공부도 중요하지만 꼭 공부만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고, 나를 찾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청소년 시기는 자아를 형성하고 나를 찾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어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런 역할의 부재로 인해 채워지지 못한 나의 결핍은 오랜 기간 내 마음을 힘들게 했고, 스물여섯이 된 지금 이제서야 조금씩 내 모습을 찾아가고 단단해지는 중이었다.


스물여섯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세상에 모르겠는 것들이 너무 많고,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생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필요한 나는 첫 수업을 끝낸 다음날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다. 첫 수업의 여파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상기된 채 내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불현듯 수업이 끝나고도 신경이 쓰였던 그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 주시던 선생님께서는 그 아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을 던지셨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의 학창시절에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의지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상대라기보다는 강압적인 존재에 가까웠다.


나는 규율이 정해져 있고 통제적인 학교라는 곳에 적응을 하지 못해 매순간이 힘든 학생이었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은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 의문이었으며 숨 막히고 갑갑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선생님들과 매년 불화가 있었다. 이미 고일 대로 고여 버린 사립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를 문제아로 봤으며 강제로 야간 자율학습을 시켜 아침부터 밤까지 나를 학교라는 곳에 가둬 뒀었다. 의도가 어찌 됐건 선생님이란 존재로부터 폭력까지 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어쩌면 그 순간부터 선생님이란 존재를 신뢰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 주시던 상담 선생님께서는 내게 폭력을 가한 선생님을 비판했고, 어쩌면 그래서 더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곰곰이 생각했다. 숨 막히던 학창시절을 견디고 겨우 대학에 들어왔지만 생각과는 다른 공부에 혼란스럽던 때, 내게는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존경하게 된 교수님이 있었다. 책과 글을 주제로 매번 글쓰기 수업과 토론 수업을 진행하시는 분이셨다. 교수님께서는 온화하지만 강단이 있으셨고, 학생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학생들의 노력을 기반으로 성적을 주셨다. 늘 따뜻한 시선과 미소로 학생들을 보듬어 주신 분이었기에 혼란스러웠던 나는 그분 덕분에 스승의 따뜻함과 은혜를 경험하고, 인생의 기로에서 좋은 선택을 할 수가 있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20대 초반까지도 후기 청소년기로 보기 때문에 그분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국어교육이 아닌 독서교육을 더 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이 맞았다. 나는 그분을 만난 후로 늘 생각했다. 나도 교수님과 같은 따스함을 가진 선생님이 되어 나처럼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학생들에게 갈피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내가 가진 따스함으로 학생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전하고 싶다. 동시에 존경하는 교수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아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 독서교육 대학원에 진학을 하기로 결심을 했었다. 그렇게 상담을 받는 동안 묻어 두고 지냈던 과거와 현재가 맞물렸고, 내가 왜 그렇게 독서교육을 하고 싶어 했는지 내 삶에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독서교육을 실천하며 산다면 지금으로부터 십 년 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나는 나를 진심으로 아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의 중심이 타인이 아닌, 내게 맞춰져 있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그런 다음 자기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선한 마음과 에너지를 독서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쓰고 싶다. 청소년기 혼란스럽고 불안정했던 마음은 내가 겪어 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학생들의 마음을 잘 알고 좋은 선생님이 되어 줄 수 있었다. 나의 첫 수업 시간에 선생님을 꿈꾸는 그 아이에게 해 준 말도 같았다. 많이 힘들겠지만 이 감정을 충분히 느끼면 내가 겪었던 아픔과 힘듦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으니 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그 길을 응원하겠다고. 그 말이 아이에게 위로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듯 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걸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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