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65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육십 오번째
한국 중국 일본 무기사의 그 마지막 시간. 이제 일본 차례다. 일본인들은 정말 칼을 잘 다루었을 까? 그리고 칼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을까? 일본하면 사무라이가 떠오르고 허리띠에 교차한 칼집 두개를 흔히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긴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짧은 칼.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사무라이는 무사 계급, 즉 귀족에 속했던지라 전장에서 소수의 사무라이들은 주 병종이 아니였다.
농민들로 구성된 아시가루라고 하는 병사들이 야리라고 하는 기나긴 창을 들고 혹은 조총을 들고 싸우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중세 일본의 병사들의 모습이였으며 이들 중에도 칼을 휘두르는 자도 있었지만 농민이 자체적으로 칼로 무장한다는 것은 희귀한 케이스였다. 전세계 만국 공통으로 일본 또한 창으로 군집을 이룬 병사들이 적을 상대했고 그 사이사이 사무라이들이 농민병을 지휘하거나 사령관을 보좌 내지는 경호하는 역할로 고용되었다.
그런데 일본하면 왜 칼일까? 보편적인 상황에서 창을 더 많이 다루었지만 넓게 보자하면 백병전, 적의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하며 창칼을 부딪히며 싸우는 근접전이 많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는 맞을 것이다. 그 중에 정예들만이 다룰 수 있었던 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대중 매체에서 접한 일본 사무라이의 이미지로 칼만을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들을 한다.
한편 일본인들은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현대인의 인식과 다르게 한국과 중국 못지않게 엄청 활용했다! 화궁(유미)라 불리는 일본식 활은 일본인의 체구만큼 기다란 장궁이었다. 대나무 또는 나무를 켜켜이 쌓여 단단하게 만들었으나 그 위력이 제한적이라 크기를 키울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사무라이의 기원은 말을 타고 활을 쏘았던 기마 궁사에서 유래한다.
전국시대(센고쿠)는 150년간 이어졌고 이전까지 잘만 사용하던 활이 밀려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대규모 집단전이 일어났고 크고 작은 전투가 적어도 수년 간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되자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훈련할 시간도 부족해지고 농민병들을 급히 투입시킬 일이 많았는데 활은 당시 조선처럼 궁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시스템에 비교적 오랜 기간 연습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무기였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점차 도태되었다.
어제 다루어본 중국의 축소버전처럼 오랜 기간 전쟁을 수행해야 할 자원을 아끼면서 당시 경제 그 자체인 농지를 가꾸어 쌀을 생산하던 인력을 차출하는 시스템은 빨리빨리 돌아가야 했다. 이후 전국시대가 끝나면서 활의 입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왜냐하면 전국시대 초기부터 서쪽의 영주들이 포르투갈 상인들을 만나 신무기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모여서 발사하면 되는 사용하기도 쉬운 무기였고 무엇보다 갑옷도 한 방!이었다. 바로 조총이 등장한 것이다.
965화 오늘의 해석 : 마지막으로 일본, 검을 잘 다룬 건 맞으나 보편적이지는 아니하고 대부분 농민병들이 집단으로 모여 창과 조총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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