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637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육백 삼십 칠번째
어젯밤 썼던 글 내용대로 기력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던 찰나, 앨버트 엘리스의 손가락 한 마디라도 따라간다면 소원이 없을 나에게 그런 그를 깨닫게 했던 고대 로마의 에픽테투스의 가르침이 나를 다시 두들겼다.
사람은 사건 때문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자유로운 노예였던 절름발이 철학자가 현대인들에게 울림있는 목소릴 계속 전하고 있다. 엘리스가 심리치료의 아이디어를 다양한 철학에서 얻었다 밝히며 그중 위의 에픽테투스의 가르침을 언급한다. 곱씹어본다. 사건에 대한 판단때문에. 사건 그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아니하다. 쉽게 말하면 생각을 달리 해야한다라는 결론에 도달 하겠지만 "달리 해야한다"라는 결론에 도출하기까지 과정이 있지 아니하면 이러한 결론은 그냥 흔해빠진 자기계발서적 멘트에 불과할 뿐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럴 때가 바로 훈련의 타이밍이자 보이지 않는 훈련장이다. 나와 당신이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상황에 대한 감정으로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생물인 상황이든 상대방이든 간에 내가 통제 할 수 없는 무언가이며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통제권이 없는 것에 통제를 요구하며 통제권이 있는 곳엔 통제권을 요구하고 있지 아니한다. 이럴 때 우리는 가끔 우리의 통제권을 망각한다.
위대한 스승은 똑같은 사건에 달리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때문에 그러한 통찰을 얻었다. 다른 판단은 두 사람의 반응 또한 다르게 만들었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사건에 대한 판단을 달리 했는데 여전히 반응이 같다는 것. 방금 서술한 바와 같이 과정이 있지 아니하면 결과는 흩어지기 쉬운 연기가 되어버린다. 판단을 달리하는 데 있어 가르침은 단순하지만 그것을 실현해내는 과정은 나의 책임과 진심을 요구한다.
사건때문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때문이라면 그 판단의 주인인 내가 다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끔 훈련되어 있지 아니하면 결국 똑같은 반응에 매번 실수하고 말 것이란 가르침도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흔히 마음 먹기 나름, 생각하기 나름이라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는 데 실전이나 실천은 거의 아무도 하지 않는 위대한 가르침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 진리에 가깝다. 오히려 쉽게 얻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품격은 높아진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21권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2권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