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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31. 2022

엔지니어의 은퇴---기술이 낙엽처럼 되지 않게

엔지니어의 은퇴---기술이 낙엽처럼 되지 않게

1999

 

54년 간 샐러리맨을 하면서 훌륭한 기술자도 많이 만났고, 회사를 떠나가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한 인생의 은퇴나 퇴사는 아까운 기술이 낙엽처럼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큰 일을 많이 

하신 선배님들의 별세 소식이 잦은 요즘, 80을 넘기신 선배님들을 뵐 때마다 이 분이 하시는 추

억담을 녹음해서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소중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든 지식과 지혜를 좀 글자로 남기기를 바란다. 

 

1999.10.18 최OO 부장 퇴사

(이 글은 한전 전력연구원 근무 중에, 인트라넷 ‘KEPRI 광장’에 올렸던 것으로, 탁월한 기술을 가졌던 ‘최OO’ 여성 부장의 퇴직이 안타까워서 쓴 글입니다)


푸르름을 뽐내던 잎들이 낙엽되어 흩날리는 연구원의 정원을 쓸쓸히 바라보며 우리들이 가진 기술이 마치 저 낙엽처럼 떨어지는 것 같은 애처로운 마음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몇 년 전 어느 사업소에서의 일.

변압기유를 정기검사(한전 전력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변압기 내부 이상’으로 판정을 받으니, 발전소에서는 그 동안 멀쩡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이를 믿지 못하겠다는 뜻도 있었고, 사안이 워낙 큰 사안인지라, 그 기름을 납품한 정유회사에도 샘플을 보내는 한 편, 전력연구원에 2차 확인용 정밀분석을 의뢰하게 되었지요.

정유회사에서는 ‘이상 없음’으로 판정이 왔는데, 전력연구원은 역시 ‘No’였다. 

발전소 간부들은 고심 끝에 수십억 원의 손해를 각오하고 발전소를 정지하여 변압기를 분해 점검했더니, 잘못했더라면 수백억 손해를 입을 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력연구원의 분석능력에 찬탄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지요.

그 기술을 가진 ‘최 부장’이 지난번 한시퇴직으로 전력연구원을 떠난 가운데, 어떤 기술이 앞으로 우리 연구원의 자존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또한 지금은 남이 나에게 해주는 평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평가도 중요합니다. 자기 기술에 대한 애착이 필요한 때입니다. 스스로 우월감에 빠질 사람은 없으리라 믿으면서, 자기를 사랑하듯 자기 기술을 사랑하자고 외칩니다. 


이 글을 인트라넷에 올리고 며칠인가 지났을 때 한 통의 사외 전화를 받았다. 최부장으로부터 고맙다고. 

행복하게 사실 겁니다 암요.


암묵지를 형식지로 바꾸다

유능한 엔지니어의 은퇴는 그가 가진 기술의 단절을 의미한다---저 낙엽처럼 기술이 낙엽되지 않도록 나는 형식지(型式知) 만들기에 애를 무척 썼다. 결국 내가 2년 간의 전력연구원을 떠나기 전에 원내 발전분야 각 전문가들을 찾아가 부탁하여 『기초기술』과 『전문기술』 책을 편집했다. 


 최 부장 은퇴가 있던 그 무렵, 불과 10여일 전 어느 발전소의 일.

보일러에서 멀쩡한 보일러 튜브가 터졌고, 발전소를 정지했고, 보통 3일 정도 철야작업을 하면 복구하는데, 용접기술이 받침되지 못하여, 그 3일은 내로라하는 기술자들을 불러 ‘Try & Error’만 반복하다가, 급기야 제작사의 용접 이론가를 불러 여러가지 장치도 하고 시험을 반복한 끝에 용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 학자들의 가이드대로 용접사가 작업을 했는데, 드디어 한 포인트를 용접했으나, 무려 4시간이 소요되었다. 포인트 수가 많은데….

발전소 정비담당부서에서 그 발전소를 건설하던 당시에 그 튜브를 용접한 용접사를 수배할 수 있었고, 먼 곳 어느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그와 통화가 가능해졌다.

“현장에서 무엇 무엇을 준비해 둬야 합니까?”

“아무 것도 준비할 필요 없어요. 단지 한 포인트 용접하는데 10만원만 주세요”.

그것이 통화의 끝이었고, 대여섯 시간 자동차로 달려온 그 사람은 불과 40분만에 한 포인트를 용접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했길래 탁 해치우는가? 용접용 편의 장치나 용접 이론도 그에게는 별로 필요하지 않거나 혹은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다는 건가?  알 수는 없지만 참으로 존중해야 할 기능적 기술이다.

 그 사람에게 기술을 글로 쓰든지, 가르쳐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국내 발전 엔지니어 시장

어느 민간회사에 근무하던 때. 일이 너무 힘든 나머지 한 엔지니어는 “나 더 이상 못 하겠다”고 집에 가버렸다. 일을 계속하기 싫으면 퇴직한다는 이 배짱(?)이 생긴 것은 일이 너무 감당하기 어려워 그랬겠지만, 장래에 대한 기대를 그 회사에 맡기지 않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공기업에서는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국내 시장에는 많은 구직자가 있기 때문에, 어떤 민간회사도 쉽게 발전 엔지니어를 구할 수 있는 편리함은 있다. 그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한전이나 한전기술 및 기타 관련기업 조기 퇴직자, 두산중공업, 지역난방공사나 건설회사 등에서 일하던 경력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는 한 몫을 하는 사람들로서, 이런 저런 사연 때문에 조기 퇴직했다가 다시 직업을 찾고,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그 프로젝트 끝나면 퇴사처리 되고, 다시 다른 현장을 찾는다. 

그가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부장이냐 과장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민간에서 일하는 방식은 대부분 팀제이기 대문에 팀 내부에서 직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민간기업에게 이들을 위한 연수원 교육같은 기본교육은 거의 필요 없다. 경력직은 이미 기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부르고, 쓸 만큼 썼으면 나가도 별 아쉬움이 없다. 심지어는 아주 귀한 기술적 그리고 행정적 경험을 했거나, 남다른 역량을 지닌 사람에게도 미련이 없어 보인다.

그저 컴퓨터만 반납하면 된다. 그 컴퓨터에는 어떤 소중한 정보가 들어있는지, 누가 검사를 하여 소중한 자료는 공유하는지 안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것이 기술이 낙엽처럼 떨어져 가을비에 젖는 광경과 겹쳐서 떠오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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