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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문 Jan 01. 2024

인권 조례는 죄가 없다

인권 조례는 죄가 없다

 

어린이의 심장

 

그 날 의과대 강의는 ‘아이의 심장’이라는 특별한 주제였습니다. 교수는 어린 남자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교수는 어린 아이가 웃통을 벗고 몸이 투사되는 영상 장치 뒤에 서도록 했습니다. 수강생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숨을 죽이며 지켜봤습니다. 


“ 자 이제 불을 꺼주세요”


스크린 뒤의 영상에는 아주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습니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 이 영상을 앞으로 절대 잊지 마세요.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기 전에, 어떤 벌이든 내리기 전에, 겁먹은 아이의 심장을 떠올리세요”



교수의 이름은 폴란드의 의사이자 교육자인 야누스 코르차크로 그가 만든 어린이 권리장전은  유엔 어린이 권리선언(1959)과 유엔 어린이 권리협약(1989)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코르차크가 이 독특한 수업을 통해 깨닫기 원하는 바는 약자인 어린이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중이었습니다.


 

약자를 위한 권리 선언


코르차크의 어린이 권리장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성인과 동등한 존중을 받아야 하며 그들의 의견과 감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어린이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형성하고 표현할 권리가 있으며, 자기 자신을 돌보고 책임져야 합니다. 어린이는 안전하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 안전해야 합니다. 어린이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 교육은 그들의 발달과 능력을 존중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린이는 놀이와 유머를 통해 창의성을 키우고 즐겁게 성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코르차크는 이 주장은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1959년의 어린이 권리선언은 어린이에게 특별한 보호, 안전한 환경, 양육과 교육의 권리를 부여하여 성장과 발전을 보장하는 국제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으며 1989년 어린이 권리협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린이 권리협약은 어린이의 권리를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해 만든 유엔의 국제 협약입니다. 이는 전세계에서 어린이에 대한 보호가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으며 어린이의 복지를 증진하고 권리를 강화히기 위한 국제적 표준으로 국제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1991년 이 협약에 가입하여 이 기준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학생 인권 조례의 등장과 퇴장 요구

 

“우리의 알몸을 드러내는 기분이에요. 몰래 뒤지는 것은 더 나빠요. 남의 가방을 왜 뒤져요? 그런건 완전히 사생활 침해, 인권 침해 아니에요?” 


2000년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책 중 한 학생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책 제목처럼 2000년대 초반은 민주화 이후 인권의 전진이 교문에서 멈춰 있는 상태였습니다. 체벌은 여전히 일상적인 것이었고, 가위로 머리가 잘리고, 동의 없는 소지품 검사가 이루어지는 등 학생들은 단순한 복종의 대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닫혀 있는 교문을 연 것이 학생 인권 조례입니다.  격렬한 찬반 끝에 경기도를 시작으로 유엔 어린이 권리 협약을 모태로 한 학생 인권조례가 제정 및 확산되었습니다. 인권 조례는 강제성은 없지만 학생을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데 한 몫 했으며 관행적으로 학교 현장에 존재했던 인권 침해에 이의를 제기하고 여론을 환기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학생 체벌 허용이 당시에는 격렬한 논쟁이었지만 지금은 체벌 금지가 상식으로 자리잡은 것을 보면 인권 조례가 학생 인권을 앞당기는 데 기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이초 사태로 교권 침해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교권 강화에 대한 요구가 있었지만 무시되어 왔었습니다. 서이초 사태와 그 이후 교사들의 집단적 분노는 교권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권 강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법적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되어 시행되거나 시행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공교롭게 학생 인권 조례가 교권 약화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핵심은 학생 인권 조례로 교사를 무시하는 풍토가 생겼고 이때문에 교권이 약화되었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그 논리를 밀어붙여 12월 15일 충청남도 의회에서 학생 인권 조례 페지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당일 의사록을 들여다보면 폐지의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우리의 인권 조례가 권리만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뉴욕의 k-12 학생의 인권과 책임 헌장처럼 책임 서술이 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학생의 권리만 서술되어 있다보니 교사의 권리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체적 법규 내용과 관련한 반대 이유 중 하나는 학생의 성적 지향을 존중하는 것이 정상적 결혼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인권 조례


K-12의 헌장 내용에 성적 지향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볼 때 인권 조례 를 반대하는 주장은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하여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권리와 의무가 같이 기술되어야 한다는 이의 제기는 교권의 추가 너무 기울어져 있는 현실에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에 대한 권리 선언은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선언이므로 꼭 의무와 병기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프랑스 인권 선언, 유엔 인권 선언, 어린이 권리 협약은 모든 이들에 대한 것이지만 또한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한 이들에 대한 인권 선언입니다. 우리의 교실을 한 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헌법적 가치의 관점에서, 시민 사회의 관점에서, 그리고 시민 교육의 관점에서 학생의 인권은 어디에 와 있을까요? 1930년대에 코르차크가 강조했던 어린이의 권리를 우리의 교실에서 충분히 누리고 있을까요? 권리와 의무의 균형은 이 지점에서 논의되고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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