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학교 시민교육에서 크릭보고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12월 연구소 윤형순
이 글은 크릭보고서 학습과 영국 시민교육 전문가 김원석 박사님의 강의 후 작성한 것입니다.
12월연구소 시민교육 세미나 시즌1의 3회차는 크릭보고서(Crick’s Report)가 발간된 배경과 구성된 내용을 중심으로 영국의 시민교육을 살펴보았다. 4회차에서는 김원석 교수님과 함께 크릭보고서 전후를 중심으로 영국에서 시민교육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후 영국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 변화에 따라 어떠한 변화를 거쳐 왔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다음은 2회차에 걸쳐 영국의 시민교육과 관련된 자료들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질문들이다.
첫째, 크릭 보고서(Crick’s Report)에서 강조하는 시민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둘째, 시민교육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밖에 없는가?
셋째, 시민교육이 실질적으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가?
넷째, 모두를 위한, 그리고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교육은 가능한가?
‘크릭 보고서(Crick’s Report)에서 강조하는 시민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영국은 역사·문화적으로 자유주의 사상과 귀족 중심 사회 구조 때문에 엘리트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국가가 주도하여 교육에 관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시민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870년대 선거권이 확대되면서였다. 이후 1930년대 전체주의의 도전에 맞서 1934년 시민교육협회를 만드는 등 시민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선거 연령이 하향되고 졸업 연령이 상향되면서, 학교 안에서 충분히 정치적 존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인문학 교육과정 프로젝트 추진, 탐구 기반 학습, 논쟁적 주제를 다루는 교육과정 운영 등 자료들을 방대하게 제작한다. 1969년 버나드 크릭이 정치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일상적인 언어로 일상적인 정치 참여’를 돕는 이론적 도구를 제공하려는 노력들을 펼친다. 영국에서 ‘불만의 겨울’이라고 불리는 1970년 후반은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불만이나 불안을 폭력적 방식으로 폭발시키는 시기였다. 이에 따라 서로 다른 필요나 요구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단순히 좋은 시민, 참여 시민을 넘어서 ‘적극적 시민(active citizen)’을 더욱 강조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아이러니하게 적극적 시민에 대한 언급은 보수당에서 먼저 사용하였는데, 그 맥락을 들여다보면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자유가 책임을 수반함을 강조하면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불만들을 개인들에게 책임 지우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적극적 시민성’의 개념이 1997년 총선 이후 변화하는데, 토니 블레어는 교육을 통해 사회 변화, 공동체 정신, 공동체 회복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교육개혁 백서를 출간을 기획하였고, 지도교수였던 버나드 크릭에게 자문을 맡도록 부탁한다. 크릭보고서의 기획 배경에는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가 팽배해짐에 따른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 의식과 함께 교육을 통해 이러한 위기의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은 현재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크릭 보고서 전후의 영국의 맥락을 이해하고 우리 안의 해결 방안을 논의할 이유는 충분하다.
크릭보고서의 첫 문장은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에 대한 교육이 학교 생활이나 국민 생활 전체 입장에서 볼 때 아주 중요하다.’로 시작한다. 때문에 시민교육은 민간 단체에만 맡겨 둘 수 없고, 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며, 따라서 시민교육이 학교 정규 과정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시민교육에 대한 정의와 시민교육이 법정 교과목으로 선정되어야 하는 구체적 이유, 시민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와 원칙, 목표, 지역공동체와 지방 자치 단체의 역할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시민교육이 정규교과로 채택되어야 한다는 대담한 제안을 함에도 불고하고 국가의 구체적인 개입 보다는 학교의 자율을 강조하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크릭 보고서의 도입 부분에 시민교육을 정의하기 이전에 교육과 정치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다. 교육이란 ‘시민이 속한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교육’이다. 또 정치란 ‘다른 가치와 이해가 서로 타협하고 보편적 기준의 중재를 거치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정의한 시민교육은 ‘균형 감각을 갖춘 교육과정을 만들어 학생들의 도덕적·문화적·정신적·육체적 성장을 도모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다. 즉, 시민교육은 ‘시민성’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 ‘사회 참여’, ‘정치 문해’라는 시민교육의 세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이 세가지 요소들은 학년별로 구체적 학습 목표로 제시되어 있다. 그 중 인상 깊게 남았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초등 1-2학년(KS1)에서 중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면서 발생하는 감정과 행위에 대한 판단·존경·무시·질문·비평·토론·동의·관점·견해·비교·대조 등의 개념 이해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었는데, 시민교육에서 감정을 다루고 있는 것과 행위에 대한 다양한 태도에 대한 개념을 상세히 다루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초등 3-6학년(KS2)에서는 경제 제도에 대한 이해, 불가피하게 이루어졌던 선택들과 그 선택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쳤던 영향에 대한 이해 등을 다루는 부분이 있었는데, 정치 사회적 영역 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까지 포괄하고 있었다. 중등 7-9학년(KS3)에서는 주요 정당 및 압력 단체의 이념과 목적 이해를 다루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민감한 주제를 가르칠 때의 주의 사항’과 연결된다.
크릭 보고서의 많은 부분이 ‘민감한 주제를 가르칠 때의 주의 사항’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을 첨예하게 대립되는 성인들의 주제로부터 보호하고자 해선 안 된다.’
‘민감한 주제란 그날 그날의 중요한 이슈다.’
‘윤리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주제들은 학생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고, 민주 사회에 일정 부분 참여하는 일이기도 하므로, 학생들은 이런 주제들을 다룰 의무가 있다.’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고, 그런 민감한 주제를 다루지 않을 경우 학생들의 지식에 큰 결함이 생기며, 결국 성인으로 삶을 준비하는 것에 실패하고 만다.’
‘교육철학에도 문제가 생긴다. 교사들은 기껏 지식과 기술의 전달자로 전락하고, 아무리 훌륭한 기술을 가르친다 해도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 되어 버린다.’
‘교육이란 다른 생각이 부딪치는 과정이다.‘
학생들이 한 사회의 성인으로서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감한 주제에 노출되고, 그것을 다루는 경험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타인의 의견, 믿음, 관심사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능력, 의견을 형성하고 주장하는데 증거를 사용하고, 진리 탐구에 최우선 가치를 두며,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태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서 객관적으로 여러 가지 의견을 참작하며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제시한다. 한편,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 교사는 중립적 사회자로서의 자세, 균형적 접근, 논쟁의 자극제로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
크릭보고서의 이러한 내용은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에서의 강압 금지와 논쟁성 유지, 그리고 실질적 행동을 통한 사회 참여라는 3원칙과 그 결을 같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대립 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화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것이 ‘인간성 형성’ 과정이라는 빌둥(bildung)의 의미와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 다룬 서로 다른 세 나라, 즉 덴마크, 독일, 영국의 교육과 시민교육의 공통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들에 대한 옳고 그름 혹은 좋고 나쁨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나 경계를 긋는 것이 아니라, 논쟁적 상황, 갈등 상황, 대립 상황에서 내가 놓인 특수한 조건과 나를 둘러싼 외부 세계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그 상황에서 어떠한 결정하고 행동할 것인가를 찾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종합하면 ‘시민성’은 교육을 통해 우리가 속한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가 보편적 기준에 의해 타협하고 중재되는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며, 나와 우리를 위해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발현된다고 볼 수 있다.
‘시민교육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밖에 없는가?’
영국의 학교 시민교육은 크릭보고서 이후로 구분된다. 권순정(2019) 연구는 영국의 시민교육을 태동기(1960년대~1980년대), 성장기(1990년대~2000년대 초), 침체기(2010년 이후~현재)로 구분하기도 한다.
크릭보고서 이전을 태동기로 볼 수 있는데, 민주주의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 시민으로서 순응하고 복종하는 법을 길러내고자 한다는 ‘소극적 시민(passive citizen)’ 모델을 제시한다. 덕목(virtues)을 강조하고 주입하는 수단이자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 등을 시민교육으로 간주하였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정치적 문해(political literacy)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미래의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는 “적극적 시민(active citizen)” 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크릭보고서 발간 전후인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는 시민교육 성장기로 ‘시민’과 ‘시민성’에 대한 담론이 공론화되었으며, 공동체와 정치 참여, 다양성과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0년 총선 이후 현재까지 시민교육의 침체기로 보수당이 재집권하게 되면서 영국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던 영국 중심의 가치들이 재건되기 시작하였고,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개인주의가 더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인성교육을 통해 좋은 인성을 가진 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시민교육의 목표로 제시한다.
이렇게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한 시민 교육은 ‘다양성이 공존하면서 민주적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선 개인을 시민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입장’과 ‘공동체를 우선 순위에 두고 그 안에서의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는 입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권순정(2019) 연구는 분석한다. 즉 공동의 참여를 강조하는 것과 개인의 책임을 우선시하는 방향의 갈등(Weinberg, and Flinders, 2018)인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최근 6~7년 사이의 한국의 학교 민주시민교육이 놓인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교육부는 2018년 12월 자율, 존중, 연대라는 3가지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포용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성숙한 민주시민 양성’, ‘민주시민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이념의 회복’, ‘교육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통한 교육혁신 필요’라는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수립(교육부, 2019)했고, 시도교육청에서는 이에 맞추어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 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펼쳤었다. 그리고 2022년 6월 총선 이후 ‘인성문화교육과’가 ‘민주시민교육과’ 자리를 대신하면서 ‘시민성’ 보다는 ‘인성’을 강조하는 상황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처럼 국가 정치 상황에 따라 시민교육의 필요성이 제안되고 적극적으로 실천되던 부분이 또 다른 지향점을 제시하는 정치 사회의 변화로 인해 축소되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교육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위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반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대립 양상에 대한 해법으로 심성보(2018) 연구에서는 ‘사람다움’과 ‘시민다움’의 조화를 통한 민주적 시민교육을 모색해야 함을 주장한다. ‘시민다움’은 ‘사람다움’의 연장선에서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영국의 크릭보고서는 진보와 보수의 소모적 이념 대립을 극복하는데 있어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진보과 보수를 넘어선 제3의 민주적 시민교육은 인성 개념이 시민성 개념으로까지 확장하는 발산적 태도를 취해야 하고, 역으로 시민성은 인성을 바탕에 까는 포용적 태도를 취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핵심에는 민주적 시민교육이라는 것이 인성교육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람다움’을 강조하는 인성교육은 보이텔스바흐 협약에서 강조하는 원칙과 같이 강압이나 교화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에 있다. 더 나아가 크릭보고서에서 제시하는 교육의 개념과 같이 인성교육 역시 세상에 대한 이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교육 행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려온다. 아이들만의 자율적인 세계가 존재하며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힘을 학생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해방적 교육’으로 주입된 기준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여 공동체 의식과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보호하고 도울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적인 삶이 때로는 갈등하기도 하지만 분리될 수 없기에, 인간으로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 가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학교란 공간이 이러한 경험이 가능한 안전한 공간으로서 존재할 필요가 있다. 안전하다는 것은 현실 세계의 민감한 주제, 논쟁적 주제에서 보호받는다는 의미보다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하여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인성과 시민성, 즉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로의 통합성을 함께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시민교육이 실질적으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가?’
영국의 학교 시민교육 맥락에서 시민교육의 초점은 집합적 정치교육에서 개인적 인성교육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져 있는 상황이고, 국가가 교육에 개입을 최소화하고 학교와 교사의 자율에 맡기는 상황에서 사립학교(public school)와 국공립학교(academy, grammar school) 간 시민교육에서의 질적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크릭보고서 발간 이후 2007년 교육과기술위원회에서 시민교육 정책을 평가한 결과에서도 ‘최소개입접근’에 대한 재검토를 제안하는 것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크릭보고서의 시민교육의 4번째 기둥으로 제시하는데 ‘정체성과 다양성-영국에서 함께 살아가기’라는 구체적인 요소를 제시한다. 이렇게 시민교육의 질적으로 도약시키고자 했던 시도는 2010년 총선 이후 기초지식에 대한 강조(back to basic), 영국다움에 대한 강조(정체성 강조, 영국적 가치 중시), 디지털 문해력 강조로 옮겨가면서 시민교육의 중요성과 그 효과는 쇠퇴하게 된다. 특히 정치적 문해력, 정치적 참여에 있어서 그 강조점이 약화 된 것이다. 시민교육의 쇠퇴는 선택 과목이 된 시민교육이 학생들에게 덜 선택받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시민교육의 기회는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은 국공립학교(academy, grammar school) 아이들에게 더 잘 활용되게 된다. 즉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시민교육에서의 불평등 현상, 소위 엘리트 중심의 시민교육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엘리트 중심의 시민교육은 결국 정치 권력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는 엘리트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에서 민주주의를 역행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민교육이 실질적으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은 민주주의가 본래의 의미대로 작동하도록 하는데 중요하다. 크릭보고서가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를 교육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로 했던 배경에서 작성되었고, 모두를 위한 의무교육으로 시민교육을 강조했고 정치적 참여를 강조했던 것은 현재 한국 사회 맥락에서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모두를 위한, 그리고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교육은 가능한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시민교육과 엘리트 중심의 시민교육은 시민교육이 정치적 수단이나 국가의 목적에 의해 이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교육은 시민교육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시민교육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모두를 위한 시민교육’으로 정리해 보면 어떨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이번 세미나에서 논의하고 있는 노르딕 빌둥과 보이텔스바흐 합의, 그리고 크릭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정치 교육을 위한 정초적인 최소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과 같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권과 시민교육에 관한 개념 또는 담론은 고정불 변의 객체가 아니라 사회·경제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맞게 진화하고 재정립되는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정미, 2024)인 것이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특정 정당의 이데올로기나 이익을 위해 시민교육이 좌지우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 사회의 특수성과 맥락을 고려한 숙의 과정을 통해 시민교육의 방향 설정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노르딕 빌둥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덴마크의 포크 빌둥(folk bildung)은 개인의 빌둥과 문화/민족의 성숙 과정인 공동체적 빌둥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 평민의 성숙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러한 관점에서 평민들의 삶을 위한 교육 철학을 정립한 그룬트비는 성찰과 상호작용에 의한 교육, 대화와 관계를 중시하는 공동체 생활과 삶을 배우는 교육을 강조한다. 포크 빌둥에서 특히 눈여겨 볼 것은 누구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깨어나고 펼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교육은 이러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 모두를 위한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뢰의 관계 속에서 개인적 삶과 공동체적 삶을 통합해 가는 시민성을 형성하고 책임 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민주주의-교육-시민성은 본래 한 몸이라고 보여지며,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를 형성해 가는 존재로서의 개인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인 ‘사람’을 중심에 두고 민주주의-교육-시민성을 연결해 내는 것이 모두를 위한 시민교육의 지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12월연구소에서 기획하고 있는 한국형 크릭보고서(시민교육 제안서)를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교육과 시민성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며 그 지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지속적으로 이어져나가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권순정. (2019). 영국 국가 정치 상황에 따른 시민교육 핵심개념 분석. 비교교육연구, 29(1), 1-28.
심성보. (2018) 「사람다움과 시민다움의 조화를 통한 ‘민주적’시민교육의 모색」
이정미. (2024) 프랑스 시민교육의 시대적 변천과 쟁점 -공화국의 시민에서 세계시민까지-시민교육연구, 제56권 1호 149~177.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번역, 크릭보고서_학교 시민교육과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