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라이즈드(2)

idollized(2)

by 김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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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아, 여기, 여기! 여기 좀 봐줘! 아이 예쁘다!”


옆자리 여자가 연신 연속촬영을 누르며 멤버 이름을 불렀다. 다른 팬이 사인을 받지 않아 앞이 비는 아주 잠깐의 틈을 타서 멤버의 이름을 불러 아이컨택을 부탁하는 옆자리 여자는 꽤 숙련된 찍덕이었다. 효원도 익숙하게 여자의 백사투 렌즈를 향해 아이컨택을 서슴없이 해주며 포즈를 취했다. 나는 옆자리 여자가 효원이를 수백 장 찍는 동안 조명 아래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준우를 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진짜 준우다. 진짜 준우. 살아 움직이는 준우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분홍 맨투맨에 이름표를 붙이고 훌쩍이던 준우는 이제 연습생이 아니었다. 그토록 원하던 아이돌 가수가 된 준우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익숙하게 사인을 해 내고 있었다. 저렇게 얇고 좁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저렇게 가까이에 앉아서 준우를 볼 수 있다니. 심지어 준우와 손깍지도 가능하고 이야기까지 할 수 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팬싸를 오는구나. 정말 은혜로운 현장이 아닐 수 없다.


“21번에서 30번까지 나오실게요.”


사인회 스태프가 통로에 서서 앞줄에 앉은 팬들을 불러냈다. 한 무리의 팬들이 주섬주섬 가사지와 선물들을 들고 나갔다. 나는 왼쪽 손목에 두른 형광색 띠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인생에 뽑기 운이라고는 없는 나의 이번 사인회 순서는 59번이었다. 앞자리에 앉으면 사인회 내내 멤버들과 수시로 대화도 가능하고 사진도 더 많이 찍을 수 있다는데, 애매한 번호였다. 하지만 오늘은 역사적인 첫 사인회에 당첨되어 온 것에 의의가 있었다. 나는 한껏 캠코더의 줌을 당겨 찾아오는 팬 한 명 한 명에게 눈을 맞춰주는 준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준우는 팬이 준 화관을 썼다가, 또 다른 팬이 준 머리핀을 꽂았다가, 또 다른 팬이 준 인형 팔찌를 끼웠다. 그런가 하면 의사 가운도 입었다가, 청진기도 둘렀다가, 제복 모자를 쓰고 장난감 총을 들어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번쩍번쩍거리는 트로트 자켓을 들고 온 팬 덕분에 사인회장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준우는 다양한 표정을 하고 다채로운 포즈를 지어 객석에 있는 팬들에게 사진을 찍을 기회를 주었다. 객석에 앉은 팬들은 그에 화답하듯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꺄악 귀여워! 같은 소리를 냈다. 모두가 팬사인회에 이미 익숙한 듯 저마다의 필요를 채우며 즐기고 있었다. 나는 무어라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마치 바리새인들로 가득한 예루살렘 성전 구석에서 쪼그리고 엎드려 기도하는 세리처럼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준우의 모습을 허둥지둥 캠코더 영상에 담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리 준비한 포스트잇 질문지를 힐끗힐끗 들여다보며 무대에 올라가면 준우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빠른 속도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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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팬레터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해? 무슨 내용을 쓰는 거야?”
“팬레터? 요즘도 그런 걸 쓰나?”
“준우 소속사에서 연습생들은 조공을 안 받는대. 편지만 받는대.”
“엥? 특이하네.”


보이스 프로듀스 출연자들의 각 팬덤에서는 네임드 팬을 필두로 팬들이 총알을 모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습생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광고를 지하철역에 걸거나, 명품 조공으로 물량 공세를 했다. 그러면 마스크로 꽁꽁 싸맨 연습생이 지하철역 광고 앞에서 감격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어 올렸다. 주황색, 흰색의 커다란 명품 쇼핑백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표정으로 인증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준우의 소속사에서는 ‘소속 연습생들을 응원해 주시는 마음은 팬들의 진심 어린 편지로 충분합니다.’ 하는 한 줄의 공지와 함께 홈페이지에 팬레터를 보낼 주소만을 남겨 놓았다.


“그래? 그렇다면 진심과 정성이라도 보내야지.”
팬레터라고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지만, 일단 좋은 말을 써야 할 것 같았다.